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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 군락지에 여울지는 동박새 소리

by 무량화


화사하기로 치자면 애기동백, 단아하기로는 토종동백 따를 수 없다.

하여 스스럼없이, 토종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룬 서귀포 위미마을 안동네로 들어갔다.

여기야말로 진국, 진짜 찐인 토종 동백나무가 빙 둘러선 명품 숲이다.

나지막한 돌담 두르고 그 아래 활짝 핀 털머위 꽃길도 아름차게 가꿔놓았다.

키대로 자란 동백 거목, 서로 어깨 결며 어우러진 길이 둥그렇게 이어졌다.

북향길 칠칠한 동백은 시침 뚝 떼고 침묵 모드로 무뚝뚝하기만 하다.

동쪽으로 돌수록 붉은 기운 더러 드러났다.

토종 동백꽃이다.

윤기 자르르한 녹엽에 붉은 홑겹꽃이라지만 자세히 보면 석장씩 이중 구조를 띤 재래종 동백꽃송이.

단아하고 정숙한 자태의 토종동백에 비해 꽃송이 소담스런 외래종 카멜리아는 열정적이고 육감적이다.

제주도 동백 명소로는 휴애리 상효원 같은 자연공원, 카멜리아힐 마노르블랑 같은 카페도 있다.

그러나 교통 편하면서도 살뜰스런 규모로 가꾼 명실상부한 동백꽃 명소는 거의 서귀포 남원에 포진해 있다.

그외 소소한 동백원이 인근 여기저기에 숱한 서귀포다.

저만치서 우뚝, 눈 쌓인 한라산 소식 하마 들었던가.

기름기 잘잘 흐르는 동백 잎새 사이로 붉은 꽃잎 살몃 연 단정한 자태의 꽃송이 곱다.

아직은 철 이르다며 반쯤만 번 송이도 있고, 입 야무치게 오므린 꽃봉오리는 겨우 새끼손톱 크기로 새침을 떨기도 한다.

성급하게 무슨 동백 타령이냐고, 여태 이월달도 아니 왔다며 짐짓 딴전 부린다.

문인수 시인은 버얼써 동백 지는 까닭을 설파했으니 한번 들어보자.

"뚝, 뚝, 뚝 듣는 동백의 대가리들.

선혈의 천둥

난타가 지나간다."



차도 쪽에는 토종 동백보다 애기동백이 주종을 이뤘다.

꽃이 한창일 때는 나무 전체가 한 덩어리 꽃묶음처럼 보일 정도다.

둥글게 잘 전지 된 동백나무들이 녹의홍상 새 신부처럼 다소곳 시립한 채 우리를 맞아준다.

거기에 원삼 갖춰 입고 연지곤지 찍은 다음 족두리를 쓰면 신부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랬다, 진녹색과 꽃분홍의 조화는 완벽했다.

오방색처럼 차분하니 기품 있다거나 핫핑크 또는 민트블루처럼 성향 솔직담백하지는 않지만.

애기동백은 이름대로 천진스러우나 하염없이 지는 양태만은 더없이 처연스럽다.

개화 소식 보다 더 멋스러운 낙화, 진홍색 꽃잎들의 군무는 화려하기까지 하고.

하긴 만개한 꽃보다 더 장관이기로는 꽃잎 낙화되어 나무 아래 둥글게 깔려있을 적이다.

꽃잎이 난분분 휘날려 떨어진다고?

그럴 리가?

서귀포 와서 처음 동백꽃 보러 가는 길에, 낙화 정경이 멋지다는 말을 듣자 의아했다.

통상 동백은 통째로 툭! 지는 꽃이다.

처연하다거나 비감스럽다면 모를까 멋지다는 표현은 낯설밖에.

양광모 시인이 읊었듯,

"이별은 동백꽃 모가지째 떨어지듯이 하잔께

말하였더니 그 여자 눈물만 송이송이 떨어뜨리며

이제 막 땅에 떨어진 동백꽃 하나 주워들더니

참, 징하요, 말하는 것이더라"


동백나무 군락지를 감싼 돌담이 트인 공간.

안을 들여다보니 거긴 조성된 지 오래지 않은 애기동백나무 숲, 다문다문 연분홍 진다홍 애기동백꽃 환하게 피었다.

발치에는 샛노란 야국 소담스레 깔았고.

지난해만 해도 잡초 덤불 져 누웠더니만, 붉은 꽃길 아래 노란색 국화꽃을 깔아 두기로 한 발상이 미쁘다.

큰길가 수목원들의 약진에 자극받았던가, 안내문에 동백숲 전체 조경 마무리 단계라 Coming doon~ 곧 개봉박두!

슬그머니 취해버린 것은 야국 향인가, 주객 전도된 모양새 같아 돌담 가로 나와 토종동백 요리조리 찍어댔다.

키 큰 동백나무 품에 깃든 채 재재거리는 새는 연둣빛 깃털도 고운 동박새일까?

여울져 흐르는 새소리조차 야국 내음 스민 듯 향그러워 잠시 그 자리에 붙박인 듯 서있었다.

....모가지째 툭 떨어져

이래 뵈도 나도 한때는 꽃이었노라.

땅 위에 반듯이 누워 큰소리치며

사나흘쯤 더 뜨거운 숨을 몰아쉬다...

어느 시인은 떨어진 동백꽃에 이처럼 생명을 넣어주기도 하던데.

차마 사진 한 장 얻자고 송이채 떨어져 누운 동백꽃 돌담 위에 얹는 '인위적 연출'까지는 못하겠더라는.

석양 무렵, 길어진 그림자 이끌고 성큼성큼 돌아오는 길.

온화한 해양성 기후대라 당도 특히 높은 귤맛을 자랑하는 남원읍 위미리.

먼데 한라산 봉긋하고 위미마을 집집마다 감귤 샛노랗게 휘늘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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