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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봉 아랫녘에 어린 봄기운

by 무량화


간밤까지도 눈비 오락가락하는 날씨라 새벽 해맞이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성산일출봉까지는 시간 반이나 소요되는 거리다.

7시 36분 일출을 보려면 다섯 시부터 서둘러야 되므로 그냥 잠이나 자기로 했다.

딸내미 전화로 잠에서 깨어나 보니 바삐 움직이는 구름 사이로 해가 언뜻 나타났다.

새해 인사 차 전화를 건 딸, 지난해 잠시 제주에 왔을 적이다.

영실 윗세오름도 올랐고 산방산에도 갔지만 제주에서 성산이 기운 가장 뛰어나다며 두 번이나 올랐었다.

그 생각이 나서 을사년 첫날이니 성산일출봉에 다녀와야겠노라고 했다.

정오 무렵 동쪽으로 길을 잡았는데 한라산은 중턱까지 안개인지 구름인지에 갇혀 있었다.

성산 일출봉 분화구에 봄기운이 얼마만큼 스며들었을까도 마침 궁금했던 터.

관광 홍보물 사진처럼 초록물감 쏟아부은 듯한 분화구는 오월에나 만나겠지만 정초엔 어떨지 보고 싶었다.

천연보호구역인 성산 일출봉은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곳이다.

여전히 청푸른 바다 수반 위에 한덩이 준수한 수석으로 앉아있는 일출봉.

날씨는 그다지 흐리지 않았지만 무거운 구름층 어지러웠으며 바람도 어수선히 불어재꼈다.

시계가 과히 좋은 편이 아니라서 전망은 탁 트이지 않았지만 발치에 있는 성산항만은 윤곽 그린 듯 선연했다.

가까운 식산봉은 대체로 분명하나 한라산은 아슴하고 바다 건너 우도는 그런대로 또렷하게 보였다.

이처럼 한번씩 뒤돌아 발아래 풍광들 조망해 보며 쉬멍 놀멍 층계를 올라갔다.

높이 182 미터라도 경사도가 있어 약간 숨이 찰 정도라, 시간 셈할 필요없다 보니 시나브로 올랐다.

드디어 도착한 산정, 사방에서 몰려드는 해풍 어찌나 거센지 날아갈 지경이라 난간을 꽉 잡았다.

눈앞에 빙 둘러 펼쳐진 바다는 청보석처럼 물빛 고왔다.

운두 높은 접시처럼 둥글넓적한 화구 가장자리 돌아가며 솟구친 바위들로 이 빠진 그릇 같은 굼부리.

예상했던 대로 아직은 묵은 풀이 많아 굼부리 색감은 선명하지가 않았다.

양(陽) 기운 가득한 성산일출봉 정상에서 바다 향해 가만가만 심호흡 거듭하며 좋은 기운 듬뿍 가슴에 담았다.

푸르른 새 풀잎 윤기 더해지는 삼월에 다시 와보기로 하고 계단을 내려섰다.



일출봉에서 내려와 광치기해변을 따라 모래벌을 천천히 걸었다.

연두색 초록색 해조류가 누룩빌레 같은 바위 전면에 깔려 미끄러웠다.

성산을 배경으로 한 그 정경을 말 탄 승마체험 가족이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모래 둔덕을 넘어 차도를 건넜다.

아까 차를 타고 오다가 스친 유채꽃 단지로 가기 위해서였다.

밭담 새카만 현무암과 대비 이룬 샛노랑 꽃물결 하늘대는 여긴 어느새 봄이 한창이었다.

다만 하늘 뒤덮은 구름장 불온해 보이는 데다 강풍 여간 세찬 게 아니라서 그만 서귀포행 버스에 올랐다.

기왕 나선 길, 어느결에 하늘 청명해졌기에 유채꽃도 만났으니 이번엔 중간에 내려 동백꽃을 보고 가기로 했다.

위미리에서 하차해 차도 옆에 바짝 붙은 수목원 둘 중 한 곳으로 들어갔다.

요즘은 낙화한 동백꽃잎이 바닥에 연분홍 주단을 깔아 놓았기에 이 또한 꽃 이상으로 환영받는 풍경.

한 곳은 볼고롱동백으로 애기동백나무를 인공미 대신 자연 그대로 키우는 데 입장료 3천 원이다.

다른 한 곳은 동백수목원으로 조경에 공을 들여 해마다 전지를 해가며 다듬는 대신 입장료 8천 원을 받는다.

자연미와 조경미 둘 중 어느 것을 선호/선택하느냐는 취향의 문제다.

애기동백 꽃잎 즈려밟으며 하냥 꽃길 걸으면서 모쪼록 올 한 해 꽃길만 걷게 되기를 조용히 기원 올려 보길.

여기서 한 가지 더 추천할 곳은 위미리 동백나무 군락지다.

백 미터 정도 차도 따라 직진해 일식집 골목으로 접어들어 3백 미터쯤만 가면 토종동백꽃을 볼 수 있다.

꽃잎 낱낱이 흩날리는 애기동백꽃과 달리 송이째 뚝 떨어지는 '진짜 동백나무'가 숲을 이뤄 장관이다.

수령 백 년도 더 넘은 거대한 재래종 동백나무 육백여 그루가 숲을 이뤄 제주 천연기념물 제39호로 지정됐다.

동백꽃 만나러 위미리에 오면 반드시 배알 차 찾는 명소로 올레길 5코스가 지나는 길목이다.

https://g.co/kgs/XFQGHJd 동백나무 군락지는 다음 편으로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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