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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30. 2024

난타는 아무나 하나

문화센터의 난타(亂打) 교실에  등록했었어요.

각 학교 동아리고 복지센터고 취미강좌가 개설된 곳마다 난타반이 끼어있더라구요.

오래전에 난타 공연을 한번 봤는데요.

셰프 모자를 쓴 공연자들이 주방용구를 죽 늘어놓고 도마 위의 양배추며 오이며 양파를   
신나게 아작 내면서 냄비 양동이 프라이팬 등을 두드려대는 행위예술이었어요.

한바탕 시끌벅적 두들기는 공연 내내 관중들도 혼연일체가 되어 무척 유쾌한 시간을 즐겼지요.

난타공연 자체가 대사는 거의 없이 몸동작과 연주만으로 시청각을 강하게 자극하는 비언어적 퍼포먼스잖아요.

문득, 박달나무 다듬잇돌 위에다 푸새질 한 이불홑청 착착 개켜 얹어 놓고 밤 이슥토록 다듬이질하던 젊은 시절 엄마모습이 떠오르더라구요.

 언제이고 기회 닿을 리 없으니 다듬이질은 못 해볼망정 난타로 대신 시늉이라도 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차, 길을 가다가 우연히 학기 난타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안내글을 보곤
지체 없이 곧바로 초급반 신청하고는 석 달 치 수강료를 냈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난타는 자유롭게 마구잡이로 두드리기만 하면 되겠지, 했는데요.

사기접시 힘껏 내던져 와장창 깨부수듯 속 시원하게 스트레스 해소는 제대로 되겠다 싶었답니다.

막연하지만 북이나 장구 같을 걸 신나게 막 두들겨대면 어깨 들썩여질 것도 같았고
기분도 한바탕 달아오를 테니 꽤 흥미롭겠다 싶었지요.

 명칭 그러하듯 권투시합의 난타전처럼 사정없이 맘껏 두드려대는 게 난타라고만 여겼지 뭡니까.

  따라서 음치 몸치 같은 건 상관없을 줄 알았어요.

원래 콩나물대가리 높낮이 헤아릴 줄도 모르고 몸동작이라면 국민체조 밖에 못하는 위인.

막상 기초반 첫 수업시간에 들어가니 아차 싶더라니까요.

멋대로 솟구치는 흥이나 신명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알아챈 거지요.

 스틱(북채) 잡는 법이며 타법 연습부터 북과 테를 강약 엎다운 조절하며 치기, 까지는 그나마 괜찮았어요.  

두 번째 시간, 트위스트 가락이 교실을 휘덮자 낯선 분위기가 오글거리며 쑥스럽기도 하고 어색해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구요.  

초등학교적 학예회 때나 해본 무용인데 장작개비같이 뻣뻣한 사람이 가로 늦게 동작이 나오겠나요.


대학 때 한창 유행한 트위스트도 춰본 적 없는 위인이라 스포츠댄스조차 거들떠도 안 본 자신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청강생으로 난타가 어떤 건지 대충 간이라도 봐볼걸....

공연 구경외엔 난타에 대한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다 보니 북만 치는 게 아니라 박자를 타면서 스텝을 밟아야 한다는 걸 까맣게 몰랐던 거였지요.

사물놀이 리듬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도 난타교실에 입문해서야 비로소 알았으니까요.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취미활동으로 택한 난타교실이 의외로 너무 이질적이라 오히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거 있죠.

더구나 이건 내 취향이 전혀 아니란 판단이 대뜸 서더라구요.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놀이, 뜻에 맞는 취미만 찾아 익혀도 시원찮을 판에 시간 축내가며 구태여 내게 어울리지도 않는 짓 어거지로 배울 필요야 없겠지요.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못하고 잣죽도 저 싫으면 마다하거늘 적성에 안 맞는 걸 억지춘형으로 할 까닭이 있나요.

  두 시간 동안 다듬이 방망이질만 하다가 미련 없이 그만두기로 하고 조용히 교실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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