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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30. 2024

하영 올레 폭우 뚫고 걷기

아침 여덟 시 무렵에 전화가 왔어요.

휴일인데 이 시각에 웬 전화? 싶었지요.

서귀포 시청 서포터즈 분의 전화였어요.

연락받았느냐며 오늘 하영 올레 걷기 행사가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겁니다.

이리 폭우가 쏟아지는 데요?

창밖을 내다보니 장대비가 뿌옇게 내리고 있더라고요.

좍좍 쏟아지는 빗줄기에 더해 간헐적으로 천둥소리도 들렸어요.

즉각 나온 답변, 전 참석 안 하는 걸로....

통화를 끝낸 뒤 불현듯 든 생각인즉, 폭우 헤치며 걷는 묘미도 각별하겠다 싶더군요.

곧장 전화를 걸어 "저도 참여합니다"로 정정했지요.

몇 년 전, 산티아고 걸으며 여러 차례 판초를 걸쳤던 생각이 나기도 해서였지요.

스페인의 오월은 느닷없이 쏟아지는 소낙비도 잦았지만 자주 안개비 습습이 젖어들곤 했거든요.

그래도 빗속 걸어가며 만났던 이웃들과는 너나없이 밝은 미소 지으며 올라(Hola)~인사 나눴더랬지요.

시청사까지는 오 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라 시간은 넉넉했습니다.

일단 태풍 덕에 만포장으로 느슨하게 풀어놓은 심신부터 추슬렀네요.

폰의 배터리 상태를 우선 확인했는데 겨우 30%, 서둘러 충전기를 꽂아뒀고요.

비옷을 챙긴 다음 생수와 간식거리 약간을 배낭에 넣었습니다.

물에 젖을 각오하고 운동화에 반바지 차림으로 우산을 쓰고서 오 분 전에 거리로 나섰지요.

어제에 이어 오늘 아침에도 제주엔 호우경보가 발령돼 외출 자제하라 일렀건만 아랑곳하지 않고서요.

잰걸음으로 청사 앞에 도착하니 예상외로 많은 올레객들 벌써 붐비더라고요.


참가 접수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하영 올레 1주년 기념행사에 동참했습니다.

출발신호와 함께 하영 올레 3코스 팀에 합류, 폭풍우 속으로 용감히 걸어 나갔어요.

초속 20미터 급 태풍이 둘씩이나 가세해 마구잡이로 몰고 온 비바람 맞서서요.

한바탕 거칠게 몰아치는 비바람 수준이 아니라 한동안 그 기세 눅어질 거 같지 않더라고요.

우산살 휘어지게 폭우 왕창 쏟아붓지요, 우산쯤 가소롭다는 듯 강풍은 산지사방에서 휘몰아치지요, 금세 옷이 젖었고요.

세차게 쏟아지는 빗물이 튀어 운동화도 금세  축축해지더군요.

주택가를 지나자마자 층계를 따라 급류 져 내리는 흙탕물을 만나 일행은 잠깐 주춤했더랬어요.

우회로가 있나 찾아보다가 눈 질끈 감고 그냥 계단으로 내려가자며 쏟아지는 물길에 신발을 푹 담가버렸네요.

어차피 언제 젖어도 젖을 터라 까짓 거! 하는 심정으로요.

한참 전 여름 자이언 캐년에서 버진 리버 물길 따라 걷는 트레킹에 나섰다가 저체온증으로 식겁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어요.

자연 앞에선 한없이 겸손해야지 자칫 시건방 떨었다가는 아차 순간에 사고를 당하겠더라고요.

고개 흔들어 이런저런 상념들 떨치고는 일행 뒤를 바짝 따라갔네요.

폭우도 폭우지만 집어삼킬듯한 물소리가 너무 겁났거든요.

실제 바로 길 아래로 솜반천이 콸콸거리며 사납게 흘러내렸습니다.

하아~ 요것 봐라!

여태껏 보아온 순하디 순한 솜반천이 적군처럼 험상스레 표정 바꿔버렸더군요.

솜반천이 연외천에 스며들어 흙담소나무길로 접어들고도 한참 동안 계곡은 이어졌습니다.

이즈음이야말로 진짜 폭우 다운 세찬 빗줄기 기운차게 온 산천을 난타해댔지 싶어요.

동영상은 그렇다 쳐도 폰으로 찍은 사진상으로도 빗금 그으며 내리는 비 가닥가닥이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퍼부어대는 강우량만큼 동시에 옆 계곡의 물도 엄청나게 불어났습니다.

하영 올레 3코스는 7.5km 거리로 특징이라면 주로 하천을 끼고 걷는 마을 옛길인 셈이지요.  

서귀포 원도심인 서홍동과 동홍동의 연외천과 동홍천을 아우르는 정스런 구간이 되겠는데요.

출발은 서귀포 시청 제1청사에서 시작해 솜반천 탐방로~흙담소나무길~변시지 그림정원~지장샘~면형의 집~산지물

물놀이장~동홍천 힐링길 따라 원자리로 되돌아온답니다.

우리 일행 대부분이 걸어본 길이긴 해도 우중이라 무조건 하영 올레 리본 따라 걸었듯 누구라도 리본 보고 걸으면 무난한 이 길.

아름다운 마을 숲으로 지정된 바 있는 흙담소나무길의 정취 느껴볼 겨를 없이 이 구간에서도 엄청 쏟아지는 비 만났고요.

차도가 보이는 변시지 그림정원에 이르러서야 비도 수굿해지고 하천길 잠시 벗어난 듯싶더군요.

여기부터는 마을 안, 서홍 8경의 하나인 수령 170년생 먼나무도 보고 옛 홍로현 터를 비롯 지장샘까지 비교적 편한 길이었지요.

면형의 집 수도원에 들러 제주 최초의 감귤나무인 온주밀감나무 고사목 작품 일별한 뒤 곧장 산지물 물놀이장으로 이동했어요.

하영 올레길 구간구간마다 안전요원이 배치돼 길 안내를 도왔는데 산지물 소(沼)는 호우경보에 따라 임시 폐쇄됐다는군요.

계곡에 걸린 다리 위에 서서 여울져 흘러가는 물 구경하노라니 어릴 적 사라호 태풍 때 큰 내가 범람하던 광경이 떠오르데요.

벌건 황톳물 넘실대는 사이로 돼지며 황소가 둥둥 떠내려오면 어른들은 안타까워 안타까워 손만 내저었지요.

그때 물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똑똑이 보았네요.

치수관리가 잘 된 지금은 물을 적재적소에 배분해 이처럼 아이들 물놀이장도 만들지만 반세기 이전엔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요.

산지물이 정방폭포에 이르는 동안 거치게 되는 동홍천 힐링길은 사실 하천수 지저분해 꺼리던 길인데 오늘은 다르더군요.

오수는 폭우로 싹 씻겨 내려갔을 테고 개천 주변도 깨끗하게 세척이 돼 앞으로는 상쾌한 힐링 길이 되겠더만요.

반면 생활 오수며 공장에서 나오는 갖가지 오수 등 결국 마지막에 이르는 종착지는 바다, 해양환경 문제가 그리 심각하다는데.

이쯤에서, 해봐야 소용없는 생각의 꼬리 자르고 걷는데만 열중하기로 했지요.

빗길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던 도반들 발길이 여유로워졌다 싶더니 어느새 시청이 목전에 나타났습니다.

하영 올레 3코스 7.5km를 아홉 시부터 걷기 시작해 되돌아오니 겨우 정오, 빗속에서도 세 시간 정도 걸린 거리였답니다.

어언 하영 올레 일주년을 맞은 오늘, 올레길 인근의  지역민들 축하드리고요.

기념행사 연락 주신 서포터즈 분 덕택에 우중 산책 아주 신나게 잘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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