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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영주십경의 하나인 산방산

by 무량화

지난주 수요일 열 시.

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을 걷자고 산방산 앞에서 김선생과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다.

도착해 보니 20분이나 일렀다.

서쪽 멀리 신창에서 오는 친구라 좀 늦어진다는 연락이 왔다.

그새 절에 다녀올 테니 신경 쓰지 말고 느긋이 오라 했다.

산방굴사 부처님을 뵈오러 올라갔다.

산 전체가 암벽으로 이루어진 산방산 서남쪽 해발 150m쯤에는 영주 10경의 하나인 산방굴사가 있다.

방(동굴방)이 있는 산이라서 산방, 그 산방에 부처님을 모셨기에 산방굴사(山房窟寺)로 불리는 절이다.

고려 말 혜일 법사가 이곳 굴 안에 불상을 모셔두고 정진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초의 선사도 대정으로 귀양 온 추사를 찾아와 교유하며 이 굴에서 수도했다고 한다.

지금도 석불 한 분 모신 이곳은 불자들에게 영험한 기도처로 소문나 있는 명찰이다.

산방산 들머리, 초입에 불사 장엄하게 한 여러 절이 정좌해 있다.


산에 오르는 길목 좌우로 단청도 화려하게 단장하고 기다리나 여느 때처럼 화강암 계단 척척 디뎌가며 계속 위로 전진 또 전진.


숨 가쁘게 오르노라면 여울지는 새소리가 마음 차분히 다스려주고 숲 터널 이어져 그늘 청량한 데다 푸른 해풍 시원히 분다.


산방굴에 오르는 동안 한번씩 뒤돌아서 아랫녘 조망해 보면 감탄사가 절로 터진다.


천연기념물 제376호인 산방산 중에서도 절경 이룬 명승지를 두루 아우른 전망터인 이곳.


바로 눈앞 산방연대를 비롯해 용머리해안에서부터 금모래해변, 바다에 뜬 형제섬과 사계해안, 송악산과 가파도 마라도까지.

가파른 층계라 심호흡하며 꼬닥꼬닥 오르다 보면 이마 위 산방굴사, 거진 다 왔다.

암석지대의 낙석 사고를 방지하고자 튼튼한 쇠그물망이 둘러쳐져 있으나 위험지역에서는 각자 조심을!

산방굴사 동굴 안 천정 한복판에서는 수정 같은 석간수가 똑똑 떨어지는데 이 천장수는 산방덕이의 눈물이라 불리는 귀한 약수다.

아주 오랜 옛적에 산방굴에서 태어난 산방덕이는 인간 세계로 내려왔다가 화순 마을의 착실한 고성목이라는 총각을 만나 맺어졌다.

그 마을 사또가 산방덕이의 미모에 혹해 고성목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멀리 귀양 보냈다.

남편 잃은 산방덕이는 세상에 환멸을 느껴 산방굴사로 돌아와 산방산 여신이 되었다.

바위로 화한 여신 산방덕이는 그리운 이 생각하며 매일 눈물로 지새웠다고.

눈물이 약수샘을 이뤘는데 사철 마르지 않는 이 물을 마시면 소망하는 바가 이루어진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 한 토막.

길이 10m, 너비와 높이가 각각 5m 되는 이 자연 동굴은 대한민국 명승 제77호로 지정되었다.

서쪽 향한 암벽에 사각형 입구 선명한 산방굴

지난겨울, 낙엽 져 휘날리는 잎새들 스산한 오후에 산방굴사에 올랐었다.

그날 온종일 송악산 섯알 오름 학살 터를 비롯해 진지동굴과 알뜨르 비행장 및 무밭 여기저기 엎드린 격납고를 둘러본 연후였다.

일제 강점기엔 제주인들 강제 동원돼 바위 굴을 뚫고 활주로 닦고 격납고 만들었으며, 해방 후에는 비극의 4.3 사태 현장의 하나였던 곳.

따라서 기분은 잿빛 납추 매단 듯 심연 아래로 묵직이 가라앉을 수밖에.

산방굴사에서 내려다본 하계는 아스라했다.

바다 오른쪽으로 낮에 다녀온 송악산이 길게 누워있었다.

그 터에서 참담하게 벌어졌던 고통스러운 역사의 아픔을 부처님은 왜 그냥 외면만 하셨을까.

대자대비 부처님께서 가엷은 중생의 슬픔에 동참하지 않으실 리 결코 없었으련만.

그랬다, 부처님 시선 방향은 남쪽 바다가 아니라 정확히 송악산이었다.

산 아래서 관측해 보면 동굴 위치 자체가 서쪽으로 비스듬 뚫려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저 아래 고해 넘나드는 하많은 중생사, 한달음에 내달려가 건져주고 싶은 애통지심 오죽했으리.

더 많을 희생 그 정도로나마 막아준 손길이 바로 산방굴사 부처님 가피 아니었을까.

크나큰 섭리 분명 작용했으리라 믿는다.

부처님 무량 세월 닦으신 기도 공덕 틀림없이 중생에게로 회향하셨으리라고.

용머리 해안에서 본 산방산
사계해안에서 본 산방산

산 자체가 하나의 용암 덩어리로 이루어져 장대한 수석 작품을 보는 듯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산방산.

평야지대라는 푸른 수반 위에 우뚝 솟은 산방산은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산세가 영 다르다.


용머리해안에서, 화순 쪽에서, 덕수리 탄산온천 방향에서, 사계해변에서, 각각 산방산을 볼 때마다 사방 형태가 전혀 달라 어리둥절할 정도다.

사방 어디나 가파르게 비탈진 기암절벽 바위마다 수직 돌기둥 형태의 주상절리대에 소나무와 잡목 어우러졌다.

암벽등반가는 물론이고 누구라도 산정에 올라가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산방산이다.

한라산 이남의 전망터로 그 이상 훌륭한 곳은 없지 싶기 때문이다

현재 산방산 정상은 출입이 통제돼 오를 수 없다.

희귀 식물 훼손이 잦은 데다 안전사고 위험도 높아서이다.

암벽 식물은 천연기념물 386호로도 지정되었는데 제주에서 유일한 석회양목을 비롯해 석곡, 지네발란, 풍란 등이 자생하고 있단다.

높이 395m의 산방산은 신생대 제3기에 해중에서 마그마가 분출하면서 주변부와 함께 서서히 융기하여 현재와 같은 산 모양을 이루었다 한다.

종 형태의 조면암질 용암의 연대측정 결과 약 80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설에 따르면 제주를 만든 선문대할망이 한라산 정상 봉우리를 뽑아 던져 산방산이 되었다고 하는데.

백록담은 암봉이 뽑힌 자리로, 산방산과 백록담의 둘레가 얼추 비슷하며 두 곳 다 끈끈한 점성이 강한 조면암질이라서일까.

그러나 한라산과 산방산은 결정적으로 생성 시기가 다르다고 하니 선문대할망 설화는 전설일 따름이다.

산방산 남쪽 기슭에는 산방사 외에 광명사, 보문사가 비좁은 터에 자리 비집고 들어서 있다.

조촐한 산사 분위기이기보다 불상 거창하고 휘황한 치장으로 군림하듯 서있어 어쩐지 시정의 거대 교회를 보는 기분이다.

부처님 오롯이 모신 산방굴사 하나만으로도 산방산은 충분하련만 여러 사찰의 난립을 행정당국에서는 어이해 수수방관하였는지?


수려한 귀태에 흠집이 난 거 같아 볼 적마다 안타까운 심사. 궁시렁대며 계단 내려오자 김선생 그녀가 건너편에서 양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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