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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에 대하여 25

빈소의 낭만

by Moon

빈소에서 나온 한 사람이 휴게실에서 아는 무리를 찾았다. 끼어 앉으면서 속삭이듯 말했다.

“어르신이 저렇게까지 밝게 웃으신 적이 있었나? 난 상상도 못 한 모습이야.”

다들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르신을 만나 본 이라면 아무래도 영정 사진 속 처음 보는 어르신의 미소에 눈길이 끌렸을 게다. 그렇다고 그 이야기가 그 탁자에 오래 머무른 건 아니었다. 그래, 그렇게 웃으시니 보기 좋네, 가족들하고는 잘 웃으셨나 보네, 그러면 됐지, 화목한 가정이긴 했으니까... 각자의 소감이 잠깐 맴돌다 이내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 무리에 있던 A는 바뀐 화제에 끼어들지 않았다. 상상도 못 한 모습이라고 누군가 말을 하긴 했지만 A에게는 장롱 속 나프탈렌 향처럼 슬며시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주일 예배 시간이었다. 그때 어르신과 A가 다녔던 교회는 작은 펜션 방 하나를 예배 처소로 쓰고 있었다. 50명 정도 되는 인원이 좁다랗게 끼어 앉아 주일 아침을 보냈는데, 그때 A는 어르신의 뒷줄에 앉아 있었다. 바로 뒤는 아니고 살짝 대각선 옆이었다. A 기준에서 강대상을 바라보면 어르신의 뒤와 옆얼굴이 보였다. 그때 교회에서 모두는 한 선교사의 설교를 듣고 있었는데, 그 선교사는 워낙 잘 알려진 달변가라 처음부터 청중의 귀를 휘어잡았다. 분명히 성경을 깊이 있게 풀어내고 계셨는데 중간중간 재치 있는 유머를 섞어 회중은 ‘아멘’과 ‘깔깔’을 섞어가며 뒤집어지기를 반복했다.


A도 똑같았다. 감동도 받고 웃기도 하다가 그 어르신을 보게 됐다. 쳐다본 건 아니고, 강대상 쪽을 보다가 시선이 그 어르신의 뺨에 닿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뺨의 굴곡이 평소와 달랐다. 어르신의 뺨은 늘 평평했고, 수직으로 곧게 떨어졌다. 표정이 거의 일정하셨다는 건데, 그날은 눈꼬리에서부터 주름이 져 평평한 것과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수직으로 곧게 떨어지는 뺨의 길이도 평소보다 길었다. 그러니까, 입을 크게 벌리고 웃으시느라 눈꼬리가 접히고 턱이 아래로 더 길게 떨어진 것이다. 이런 관찰은 0.5초 만에 일어난 것으로, 당시 A는 ‘저렇게 즐겁게 웃으시기도 하시는구나’하는 생각을 잠시 했을 뿐 마음에 메모를 남겼다거나 깊은 인상을 받은 건 아니었다. 어르신도 다시 평소 표정으로 돌아가셨다.


하지만 그 후 A가 가끔 유튜브로 그 선교사의 설교를 찾아 들을 때마다, 특히 좌중이 소리 내 웃는 부분이 나올 때마다, 그 어르신의 웃는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 웃음소리 속에 그 어르신의 소리 없는 ‘허허’가 섞여 있는 듯했다. 어떤 과자를 먹으면, 어렸을 때 그 과자를 먹으며 봤던 TV 만화가 자동으로 떠오르는 것처럼, 어떤 노래를 들으면, 그 노래를 처음 들었던 거리의 풍경이 잠시 나만의 영상처럼 펼쳐지는 것처럼, 이제 그 선교사의 유머코드에도 어르신의 달라진 뺨의 굴곡이 그려졌다. A는 그럴 때마다 사람이 사람을 간직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많은지도 모르겠다고 혼자 생각했다.


어르신의 영정 사진은 정면에서 찍은 것이었다. A가 그날 우연히 보고 은밀히 간직했던 각도와 달랐기에, A도 사진 속 어르신의 모습이 적잖이 낯설었다. 그렇다고 상상도 못 할 모습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 했던 기하학의 기억을 떠올려 정면샷과 측면샷을 머릿속에서 잘 합치면 될 일이었다. 그 선교사의 영상을 볼 때마다 떠오르던 파편 같았던 기억이, 그 영정 사진으로 인해 좀 더 입체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A는 여기 이 장례식장에서 어르신의 웃는 ‘두상’ 전체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자기뿐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가족들 빼고.


영상 입체화 작업을 마친 A가 탁자의 현실로 되돌아왔을 때 지인들은 어르신 따님의 운전면허를 얘기하고 있었다. 수십 년 전, 따님이 막 면허를 따고 도로 연수를 할 때, 어르신이 직접 지휘봉을 드셨단다. A는 어르신의 웃는 모습이 아니라, 그 시절 아직 핸들이 삐뚤빼뚤한 어린 딸의 옆자리에 앉아 이리저리 운전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어르신의 젊은 시절이 더 상상하기 힘들었다. 지금처럼 무표정하게 필요한 것만 탁탁 짚으셨을까? A의 부모님이 그러셨듯, 결국 한쪽이 답답하다며 화를 내고 차 밖으로 나가면서 연수 과정이 종료됐을까? 표정이 한결같으셨던 어르신을 기억한다면, 이런 ‘파국’을 상상하는 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A는 방금의 기하학 작업을 통해 어르신의 웃는 두상을 간직한 자다. 오히려 어르신의 화내는 모습이 더 그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A 자신도 딸을 가진 아빠다.


A는 그 좁았던 예배당의 또 다른 광경들을 떠올렸다. 표정 없는 아버지 옆에 늘 웃는 낯으로 손잡고 앉아 있던 따님을 기억했다. 늘 딸 편에서 말을 먼저 걸고 대답을 기다려야 했던, 여느 부녀간 대화처럼 한쪽이 더 많이 재잘거리는 그런 모습이긴 했지만 속도가 좀 느렸던, 그 평범한 듯 평범치 않았던 소통이 생각났다. 딸의 끊임없는 말 걺을 무시하지 않았던 어르신의 대응에 ‘그래도 대답은 다 해 주시네’하고 중얼거렸던 A 스스로의 말까지도 기억의 먼지를 털고 모습을 드러냈을 때, A는 수십 년 전 그 차 안의 광경이 보이는 듯했다. 기어 넣고 엑셀 1cm 밟으면서 핸들 살짝 비틀고, 동시에 깜빡이 내릴 때마다(아마 이 모든 과정이 삐걱삐걱 댔을 테다, 가끔 순서도 바뀌고) 묻고 또 묻는 따님과, 조수석에 앉아 그 딸 대신 엄격한 진땀 흘리며 놓치지 않고 하나하나 대응하시는 어르신이 순간 보였다.


A는 마치 그 현장 뒷좌석에 앉아 관람하는 듯 어르신의 옆얼굴을 떠올렸는데, 그날 예배당에서처럼 뺨의 굴곡이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어떤 때는 다급히 소리도 치셨다가, 어떤 때는 그래, 그래, 하고 마지못해 수긍하시다가, 또 다음 순간 뭔가를 지시하시느라 바쁘셨다. 쩔쩔매시고 계셨던 건데, 그럼에도 당신 딸이 어느 순간 도로로 나가 순적히 달리기 시작하자, 곧바로 그 웃는 두상을 되찾으셨다. 그 광경 속에서 A는 ‘우리 딸, 운전 잘하네’하는 소리도 들리는 듯했는데, 그건 A가 나중에 자기 딸에게 해줄 말을 미리 연습한 건지, 실제 어르신이 그런 격려를 했을 법해서 떠올린 건지는 확실치 않았다. 다만 어르신이 표현을 하셨든 안 하셨든, 그 말이 그분 삶 어딘가에는 있었을 거라고 A는 확신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해 줄 말을 간직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많으니까. 침묵을 택하더라도, 그 말 자체가 마음속에서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탁자에 있던 사람들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다음 장례 일정을 묻고 확인했다. 각자의 행선지에 대한 정보도 잠시 주고받았다. A는 이제 면허 딴 지 수십 년이 지났을 따님께 인사하며, 평소 어려워만 했던 어르신을 이제야 좀 알게 된 것 같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그 내용을 표현하거나 설명하기가 난감했다. 그래서 침묵을 택했다. 사람이 사람을 간직하는 방법이 많음을, 그걸 일일이 다 밝혀내지 않아도 그 앎 자체가 마음속에서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걸 상기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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