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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May 30. 2017

3. 죽음이 무섭지 않게 된 이유

꾸미의 야매 텃밭 일기


연초에 이랑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꽤 고생했다.

작물이 햇빛을 받는 방향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물길도 바꾸는 것이다.

이랑을 바꾸기 위해 주변 밭의 이랑 방향도 살피고, 농장 대표님께도 조언을 구했다.

나 혼자만 바꾼겠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였다. 


작년에 삽질 몇 번 하고 앓아누웠던 나였기에

다시 삽을 잡기까지는 큰 결심이 필요했다. 

(어떻게 하면 허리가 아프지 않게 삽질을 할 수 있을까?)


삽질을 잘못하면 발목, 허리 등이 크게 다칠 수 있는데 

잔머리를 쓴다고 나는 무릎으로 기다시피 질질 삽질을 해 이랑을 바꾸었다.


삽 길이와 키가 비슷하다. 



 

(좌) 바꾸기 전, (우) 바꾼 후 사진


무릎으로 기면서 삽질을 하니 흙과 뒹굴 수밖에 없었다. 

몇 시간의 사투 끝에 나는 흙 범벅이 되어 있었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니, 하늘은 어느덧 주황색으로 변해있었다. 

한 숨 몰아쉬며 쓰다듬듯 땅을 만지고 있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 나도 죽으면 이런 흙이 되겠구나.'


그때 느꼈다.

생각보다 죽음이 쓸모없진 않을 거라고.


어렸을 땐 죽는다는 게 무서웠다.

20대 후반에서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추억이 많아질수록

그들을 잊어버리고 아무 생각도 못하게 될 죽음이 무서웠다.

깜깜한 땅 속으로 묻히게 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텐데.

그 생각을 하면 괜스레 무서워져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곤 했다.


하지만 흙과 더불어 살아가며 

죽음이 생각보다 무섭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텃밭에서 나는 수많은 생명들의 탄생과 죽음을 목격했다.

죽은 벌레를 집으로 끌고 가는 개미. 

화려하게 꽃을 피우다, 씨앗이 생기며 말라죽는 작물. 

작물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명목으로 뽑히는 잡초들. 

텃밭 생물들의 죽음은 또 다른 생의 탄생을 돕는다. 


특히 나는 잡초라 불리는 풀들의 죽음에 덕을 많이 보는 사람이다. 

무성히 자란 잡초들은 작물이 자라는 공간이 아닌 이상 그대로 내버려 둔다. 

잘라내거나 뽑은 뒤 작물 주변 위에 깔아 두면 훌륭한 멀칭 재료가 된다. 

이를 '풀 멀칭'이라 부른다. 

땅이 건조하는 것을 막아주고, 풀이 나는 걸 억제해 주기도 한다. 

더 좋은 것은 이것들이 썩어서 영양분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우리 밭에서는 죽은 풀과 작물을 모아두는 '퇴비장'이 있다.


밭에서 나온 것들만 넣어주세요. 내 밭의 좋은 거름이 됩니다. 라고 적어져 있다.


최근 나는 그곳에서 주섬주섬 퇴비를 모아 땅 위에 이불을 깔아주었다. 


겨울에 일부러 치워두었는데, 다시 주서왔다. 머리가 나쁘니 몸이 고생이다.



퇴비의 보호를 받는 한련화.
풀멀칭 덕분에 땅이 건조하지 않아 잘 자라는 바질.



햇볕이 쨍쨍 비추어도 땅이 촉촉하다. 

풀의 죽음이 텃밭 작물의 성장을 돕는다. 


 풀멀칭 안 흙은 촉촉하고 부드럽다. 다음 작물을 심으면 뿌리 내리기에 큰 도움이 된다.
풀멀칭 전 땅. 봄에도 쩍쩍 갈라진다. 만져보면 돌 처럼 단단하다.


"자연농의 논밭에는 그 풀들로 이루어진 부엽토 층이 생긴다.
풀만이 아니다. 벌레와 소동물의 주검도 거기에 쌓인다.
가와구치는 그 층을 '주검의 층'이라 표한다. "
- 가와구치 요시카츠의 자연농 교실 중에서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영원하지 않기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흙 위 생명들의 죽음처럼, 

죽음 자체로 쓸모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건물 바닥이 아닌, 흙을 밟고서야 

나는 죽음이 무섭지 않게 되었다.


오늘도 배울 것이 없을까?

괜히 텃밭을 서성거리며 또 다른 깨달음을 찾는다.

이것이 바로 도시농부의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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