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성원 May 16. 2019

감동을 주는 치약 뚜껑

 인간은 늘 합리적인 결정만을 내리지는 않습니다. 이는 행동경제학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인데요,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며,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믿는 경제학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예외적인 현상을 분석하는 근거가 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미국에서 부도 위기에 처한 스키장이 있었습니다. 이 스키장은 손님 몰이를 위해 평일 스키장 시즌 이용권을 6장 묶음으로, 시즌 전체에 40% 할인된 가격으로 파는 이벤트를 실시했는데 이 이벤트가 꽤나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거래 효용(실제 상품 가격과 소비자 마음속의 가격 차이)이 큰 거래이기 때문이죠. 게다가 소비자는 이용권 구입에 쓴 돈이 매몰 비용이고, 스키장에 가는 것은 공짜로 즐기는 즐거움이 되기 때문에 이용권을 다 쓰지 못해도 불만을 갖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렇듯 가장 합리적인(합리적이어야 할) 경제학에서도 본능에 만족감을 주는 선택을 하는데, 흥미와 미감을 느끼는 순간에 우리가 합리성을 따져가며 감흥을 느낄까요? 어제는 소음으로만 들렸던 노래가 오늘은 눈물을 흘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심오하고 입체적인 의미가 담긴 유명 작가의 조각상에서는 찾지 못한 감동을, 양치하다 우연히 본 치약 뚜껑에서 느낄 수도 있는 법입니다.


  인간은 이렇게나 예측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기계가 아니고, 동물도 아닙니다. 주어진 입력값에 의해서만 느끼고 행동하지 않습니다. 저는 인간이 ‘인간’만의 특별한 존엄성을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전두엽에서 인간의 이성이 나온다는 학설을 믿지 않습니다. 어떠한 시스템이 살아 있는 유기체냐, 혹은 죽은 무기체냐를 결정하는 요소는 그 조직체의 패턴이 스스로 만들어지는(Self-Making) 네트워크냐 아니면 외부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냐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인간은 내부적이거나 외부적인 영향에 의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만들고 바꿔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인간은 명백히 살아있는 유기체이므로 인간의 취향을 정량화하여 예측 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성급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뭔가를 바라고 하는 겁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