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세스 이코노미(오바라 가즈히로 지음)>를 읽고
어떤 제품을 만들던지, 어떤 일을 하던지 아웃풋(결과물)은 언제나 중요했다. 그런데 지금은 과정, 즉 프로세스도 중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보급으로 아웃풋은 상향 평준화가 되어가고 있는 시대에서 사람들은 아웃풋,결과물의 차이보다는 생산자의 얼굴을 공개하거나 일이 만들어지는 제작과정을 공유하는 일에 더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프로세스'가 중요해졌다. 아웃풋 이코노미가 일정 규모에 도달한 까닭에 이제 차별화할 부분은 프로세스밖에 없기 때문이다.패션업계의 최신 트렌드 중 하나인 '지속가능한 패션'도 같은 맥락이다.(프로세스 이코노미 p.10)
이는 비단 모금의 영역에도 적용될 수 있는 흐름이며 내가 몸담고 있는 '고액모금'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 모금의 영역에서도 우리는 늘 결과물이 중요했다. 후원자님께는 완벽하게 만들어진 제안서를 갖고 찾아갔으며 후원자님이 만들어낸 결과를 짠하고 멋지게 보여드리기 바빴다. 사업적인 프로세스는 공유할 지언정 우리의 모금과정은 우리 스스로 완벽하게 짜서 아웃풋에 기여하고자 노력해오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우리의 모금(고액모금)에는 어떻게 프로세스 이코노미를 적용시킬 수 있을까?
1.우리의 모금캠페인에 후원자를 참여시킨다. 사실 이러한 시도들은 대중모금에서는 종종 시도되었던 방식이다. 후원자들이 직접 모금을 하기도 했고, 후원자들이 이벤트 등에 직접 참여하여 주도성을 갖게 했으며 보람과 의미를 느끼게끔 했다.초고액후원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맞춤형 기금'을 조성하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그렇다면 고액모금에서 후원자와 프로세스를 공유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우선은 병원과 대학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캐피탈캠페인'이 떠올랐다. 이 캠페인은 일정기간 집중해서 고액을 모금하는 것으로 기관과 함께 기관의 충성된 잠재후원자, 기존의 고액후원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캠페인이다. 캠페인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후원자의 생각과 의견을 여쭙는 것부터 시작한다. 우리 기관이 이러한 것을 계획하고 있고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여쭤본다. 그 동안 기관이, 직원이 혼자 그린 그림을 가지고 일방적인 소통을 했다면 쌍방향 소통을 통한 프로세스를 공유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후원자는 이 프로젝트에 대한 오너십을 갖게 되고 '세컨드 크리에이터'가 될 수도 있으며 이들이 모여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기도 하는 등 선순환을 갖게 된다.
*세컨드 크리에이터 :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공개하면 이를 응원하는 세컨드 크리에이터가 나타난다. 제품이 완성되면, 그들은 별도의 요청이 없어도 알아서 홍보에 앞장선다.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새로운 동료가 생기고 입소문이 퍼지면서 크리에이터들의 모임은 하나의 커뮤니티로써 활성화된다.마침내 이러한 흐름에 함께 하고 싶다는 일반인들도 늘어나면서 커다란 유행이 시작되는 것이다.(p.107)
2.그렇다면 (고액)후원자는 어떤 프로세스에 공감하고 참여하게 되는 것일까? 모금에서 프로세스 이코노미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책은 여러 사례를 통해 설명해주고 있지만 내게 가장 와닿은 것은 마음을 사로잡는 시그니처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과 'why'가 공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기관의 시그니처 스토리가 무엇인지, 우리는 왜 이런 캠페인을 하려고 하는 지로 후원자를 또는 우리와 함께 할 자원봉사자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한다. 그것은 우리가 하려는,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사업'의 영역일 수 있고, 기관의 '비전'일 수도 있으며 고액모금가,직원의 '가치관'과 '철학'에도 표현될 수 있다.
-'시그니처 스토리'란 기업이나 서비스를 대표하는 상징적이고 특징적인 이야기를 의미한다. 이를 강력하게 내세우면 브랜드는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스토리를 가진 사람은 창업자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직원이나 거래처, 고객이 가진 이야기가 더 감동적인 경우도 많다. 중요한 것은 그 스토리가 브랜드의 가치관 및 철학과 일치하느냐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것은 오직 '진짜'뿐이다.따라서 브랜드에 대해 말할 때는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축적된 진짜 이야기를 찾아내서 가공해야 한다.(p.78-79)
-프로세스 이코노미라고 해서 단순히 상품의 제작과정만 공개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프로세스를 공개할 때는 내 안에 있는 '왜' 즉 이일을 하는 이유와 철학, 그리고 가치관을 남김없이 드러내야한다.(p.117)
-고객들이 전문적인 기술이나 작품의 우열을 판가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고민과 철학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새로운 고객과 팬을 확보하기 위해서 프로세스 이코노미를 활용할 때 반드시 '왜'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이다.(p.122)
3.이러한 프로세스를 공유하면서 우리가 결국 얻고자 하는 것은 1번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커뮤니티의 형성'이다. 프로세스의 공유를 통해 함께 하는 사람들(후원자,자원봉사자)이 늘어나게 되고 그들의 헌신을 통해서 우리의 모금은 더 확장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커뮤니티를 지배하는 자가 승리한다'라고 표현하였다) 특별히 홍보에 힘쓰지 않아도 이 프로젝트에 헌신되어 있는 몇 사람들만 찾게 된다면 이 모금이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느냐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설 수 있다. 여기에 헌신되어 있는 고액후원자,자원봉사자 한 명, 한 명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강력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고액모금의 잠재가능성이며 우리가 고액모금에 집중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프로세스를 숨기지 않고 공개하면 동료를 모을 수 있다.프로세스 공개는 개미가 페로몬을 분비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다.과정을 보여주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개미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전문가들도 찾아온다. 그러면 10층짜리 건물에서 보물찾기를 하면서도 6층 부엌에 있는 설탕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새의 눈이 있어도 찾을 수 없는 희귀한 설탕을 모두가 무작위로 움직이며 열정적으로 떠돌아디니는 동안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p.218)
최근에 한 기업의 대표로 계시는 후원자님을 만나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예전에는 대화가 프로젝트성 사업에 포커싱된 내용이었다면 이번에는 우리 기관이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 지, 우리 사회에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지 등에 대한 열린 주제를 갖고 대화를 하게 되었다. 이제 후원자님이 주신 조언들을 기관의 방향성에, 사업에 녹이면서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 지는 결국 우리 직원들의 몫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 가운데 당면하게 될 어려움과 성공의 프로세스를 촘촘히 후원자와 공유하다보면 함께 만든 아웃풋의 가치는 어마어마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의 정답을 갖고 퍼즐조각을 맞추며 살아왔다. 정답이 하나뿐이므로 다른 사람보다 빨리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이제는 무엇이 완성될 지 모른 채 레고블록을 쌓아 올리는 방식이 더 어울리는 시대가 왔다.(p.224-225)
프로세스가 어떻게 (고액)모금 시장에서 제대로 된 무기가 될 수 있을까? 잡힐 듯 말 듯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방법이 우리에게 지금보다 훨씬 두근거리는 미래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거다. 어쩌면 프로세스가 답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