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조성진, 임윤찬이 될 수는 없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음악을 업으로 삼아 음대에 진학하고자 하는 많은 학생들을 만났다. 재능이 특출난 학생부터 평범하지만 노력하는 학생, 노력은 하지 않지만 음악을 즐기는 학생 등 여러 유형의 학생들을 가르쳤다. 학부모님들과 상담을 하면서도 사실 재능이 뛰어나고 열정이 있는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세우며 진로를 다른 쪽으로 바꾸기를 은근히 피력했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공부하고 원하는 학교에 진학을 했어도 내 장래가 투명하지 않았기에 나를 기준으로 삼아 그보다 못 한 학생들은 굳이 음악을 업으로 삼지 않았으면 하는 염려가 있었다.
그때 만난 한 여학생은 수줍음이 많고 내향적이었으며 말소리도 작아서 거의 들리지 않았다. 피아노를 아주 열심히 쳤는데 뛰어난 재능은 없었고 그저 성실히 연습을 하는 학생이었다. 당연히 다른 재능 있는 학생들에 비해 발전도 크지 않았고 학과 성적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 여학생이 피아노를 전공하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정말 놀랐다. 무대에 적합한 학생도 아니었고 끼도 많이 부족했다. 그런데 좋아하는 마음, 그 하나로 음대에 진학하려고 한다고 했다. 어머님과 상담을 해보고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사실 성적도 좋지 않고 음악석도 별로 없어 좋은 학교 진학은 어렵다고 말씀을 드리니 그 어머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리는 큰 욕심 없어요.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4년제 아닌 전문대라도 좋아요. 이제 중학생이 되는 거니 시간은 좀 있고 그동안 서서히 쌓아서 2년제라도 졸업하면 그걸로 족합니다. 아이가 비뚤어지지 않고 자기 좋아하는 것을 하고 졸업하고 변두리에 작은 피아노 교습소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음악이 좋아서 공부를 시작했지만 항상 좋은 학교에 진학해서 엘리트 코스를 밟으려는 생각이 어느 순간 나를 지배해 왔다. 그저 피아노를 치며 멜로디를 즐기고 화성학을 공부하며 기뻐하고 이어폰 하나로 음악과 나만 남는 순간이 어느새 없어져버렸는데 그 아이는 그 순간을 즐기고 부모도 아이를 지지하고 있었다.
모두가 조성진, 임윤찬이 될 수 없다. 클래식 음악부터 영상음악, 국악, 팝에서 고속도로 뽕짝까지 다양한 음악이 생산되고 있으며 누군가는 향유한다. 하이엔드의 음악만이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정제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뽕짝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는 이도 있다.
그 상담 이후로 내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비뚤어져 나가기 쉬운 청소년기에 본인이 좋아해서 매달릴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결과에 상관없이 응원하고 지지할 수 있게 되었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기천만원에서 수십억 대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있지만 길거리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의 그림도 소위 이발소 그림도 필요하다. 시장은 이렇게 다양하고 수요도 있다.
내가 즐겨하는 SNS에서 아무나 책을 내는 '대인스타작가연'의 시대를 비난하는 발언들이 쏟아졌다. 모두가 글을 쓰며 모두가 작가가 되어 함량미달의 책을 내는 것을 비난한다. 일견 맞는 말이지만 그 '함량미달'의 책은 누가 판단할 것인가. 딸랑 책 하나 내서 친분으로 팔아먹는 것에 대한 비난도 들을만하지만 그렇게 시장에서 자연스레 퇴출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 함량미달로 보이는 책 중에 일부는 베스트셀러에 올라 잘 팔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시장을 잘못 읽은 것이다.
책이 넘쳐나고 작가가 넘쳐나는 시대가 피곤하다고들 한다. 책을 고르다 지친다고 한다. 그러나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취사선택은 우리가 스스로 해야지 남이 먼저 선별하게 할 수는 없다. 뉴스와 정보가 쏟아지는 현재를 살면서 선택은 내가 하고 판단도 내가 하는 것이다.
고도로 정제되고 수준 높은 글을 쓰는 작가들의 글도 감동을 주지만 칠순을 지나 이제야 한글을 깨친 할머니들이 꾹꾹 눌러쓴 눈물겨운 인생 이야기도 더할 나위 없는 감동을 준다.
책을 낼 자격은 누가 부여하는가, 그 수준은 누가 판단하는가.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자격은 누가 부여하는가. 그림을 그리는 자격은 누가 부여하는가.
아마추어의 예술과 프로의 예술은 엄연히 다르지만 예술을 즐기고 창작할 수 있는 자격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그것이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