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의 끝은 출산이 아니었음을
배가 부풀어올라 숨을 쉬기도 힘들고 식사는 더욱 힘든 그녀는 엉거주춤 소파에 앉아 가죽 소파를 윤이 나게 닦기 시작했다. 집은 조용하고 햇살이 잘 들어왔고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2악장이 잘 관리된 오랜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배에서 제법 힘차게 발을 차대는 녀석 때문에 온몸이 뻐근하지만 그 귀여운 몸짓에 자애로운 미소가 흘러나왔다.
'요 작은 녀석이 이렇게 조용한 집에 활기를 가져오겠지~'
출산 경험이 없는 그녀는 고통의 크기를 짐작만 할 뿐이지만 두려운 마음이 점점 커져나갔다. 임신 기간 동안 발과 얼굴이 퉁퉁 붓고 호흡도 힘들었지만 출산만 하면 이 모든 고통이 사라지리라.
앞으로 이 집에 행복을 가져다줄 아기를 생각하며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육아서를 보니 신생아는 하루에 20시간 잔다고 되어있었다. 좋은 아기 냄새가 나는 작은 생명이 평화롭게 잠이 들면 나는 그 옆에서 독서를 하리라. 그 아름다운 광경을 상상하며 그녀는 병원에 갈 짐에 책을 한 권 넣었다.
D-day, 얘기치 못하게 양수가 흘러 그녀와 남편은 허둥지둥 병원으로 나섰다. 병원에 도착하자 분만 준비가 시작되었고 불규칙한 진통에 그녀는 정신을 놓기 일쑤였다. 길고 지루한 진통 끝에 탈진한 그녀는 거의 의식이 반쯤 나간 상태로 아이를 만났다. 아이는 너무 신비롭고 놀라운 생명이었다. 아이를 안아보고 마지막 처치를 마친 후 홀로 어두운 분만실에서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병원의 배려였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큰 고통은 지나가고 새 생명을 얻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로 기억할 것이다.
병실에 올라가니 자정이 넘은 시각에 미역국 백반이 뜨끈하게 지급되었다. 입맛이 하나도 없었지만 첫 수유를 잘하려면 먹어야 한다고 해서 까칠한 입속으로 뜨거운 미역국을 밀어 넣었다. 흥분한 상태라 쉽게 잠이 들지 않았고 새벽에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깊은 잠에서 그녀는 전화벨 소리를 들었다. 너무나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아이의 첫 수유를 하라는 콜이었다. 새벽 4시 30분이었다. 그래도 아기를 만난다는 반가움에 머리를 잘 다듬고 수유실로 내려갔다.
간호사가 건네주는 아기는 너무 예뻤다. 몇 시간 동안 부기가 빠져서 이목구비가 좀 더 또렷해졌다. 머리는 까맣고 눈은 맑았다. 아기를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이에게 처음 젖을 물리는 느낌도 아주 강렬했다. 그 작은 아기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혼자 잘 먹는 것이 너무 신통했다.
다시 병실에 올라오니 곧 미역국 백반이 들어왔다. 이제는 정말 허기가 몰려와 밥을 말아 두 수저를 떴을 즈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아기가 젖이 모자라는지 계속 우네요. 다시 오세요~"
뜨거운 모성으로 배고픔을 뒤로하고 다시 수유를 하고 올라왔다. 밥은 이미 다 식고 불어 있었다. 그 미지근한 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한 시간이나 겨우 누웠을까… 수유콜을 받고 다시 내려갔다. 아기는 여전히 예쁘고 사랑스러웠지만 출산의 상처가 아물지 전이라 아직 몸도 성치 않은 그녀였다.
아기를 자정 즈음에 낳았으니 하루 입원을 하고 다음 날 아침에 쫓기듯 퇴원을 하고 집에 오니 집은 더 이상 안락한 집이 아니었다. 20 시간을 잔다는 신생아는 자면서 먹고 자면서 배변을 했으니 아기를 돌보는 엄마는 잠을 잘 수 없었다. 모유를 하루에 열 번은 먹는 아기 때문에 몸조리는커녕 식사도 수면도 제 때 할 수 없었다. 아기는 작고 귀여운 흡혈귀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인류가 지속되었다고? 이걸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다고?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나의 계획은 아기가 자면 우아하게 독서를 하는 거였다고! 그제야 출산 가방에 싸가지고 펼쳐보지도 못 한 책이 생각났다.
가방에서 툭 떨어진 책은 아무 데서나 펼쳐졌고 마침 펼쳐든 곳에서 나의 의문이 풀렸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여전히 내게는 두려움이다. 내가 눈을 감는 그날까지 이 두려움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초보 엄마들에게 위로한다. 어린 소녀일 때부터 우리는 조금씩 두려움에 준비를 해왔으니, 미안해하지도, 마음을 조급하게 먹지도 말라고..'
그 책을 진즉에 보았더라면 이렇게 멘탈이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 책은 바로 …
<곤란할 땐 옆집 언니>
*아무나 작가인 세상에 저를 세상과 가까이 닿게 해 준 제 첫 책입니다. 전자책은 꾸준히 나가는데 종이책은 자꾸 반품이 들어온답니다. 곧 중쇄를 찍을 것 같더니만 이렇게 애를 태우네요. 사이드웨이 사장님 좀 살려주세요~ 모르는 분들이 저를 아는 체하시며 책을 재밌게 읽었다고 하십니다. 책을 읽은 분들은 많은데 다들 돌려보시나요. 책 사주세요, 책 좀 사주세요~
*전자책 인세는 베이비 박스에 기부했습니다. 종이책 사주세요~
※ 『곤란할 땐, 옆집 언니』 서점 링크
예스24: https://url.kr/on59ht
교보문고: https://url.kr/jqmchp
영풍문고: https://url.kr/fgyb6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