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글쓰기를 멈추었다. 누가 시켜서 쓰는 글도 아니었기에 멈추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전업작가가 아니기에 이런 게으름을 마음껏 피울 수 있었다. 학교 선생을 그만둔 이후 5년간 최소 일주일에 한 편씩은 뭔가를 써서 이런저런 플랫폼에 글을 올렸는데 그 일을 몇 달을 쉬었다. 쉰 것도 아니고 그만둔 것도 아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음악회를 다녀와서 느낀 감동이나 아쉬움을 글로도 많이 표현했는데 멋진 공연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아도 그것이 머릿속에 정리되어 글로 술술 나오던 길이 막혀버린 느낌이었다.
'나 하나 더 말을 보태서 뭐 하나, 누가 내 글을 궁금해하겠어..'
공연 보고 받았던 감동이 흩어져 버렸다.
최근에 악보를 분석해서 보고서를 쓸 일이 생겼는데, 2분 30초짜리 가곡 하나 가지고 나는 끙끙대기 시작했다. 예전엔 심포니 총보를 보고 음원 없이 악보만으로 멜로디와 악기 소리를 상상하며 머릿속에서 음을 만들어 읽었는데, 이젠 유튜브에 저 멀리 아프리카 소수 민족의 음악까지 들을 수 있으니 이런 작업 과정을 간단하게 생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악보는 달랐다. 검색의 달인인 나도 찾을 수 없었고 누군가 연주한 흔적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악보를 보고 상상한 후에 직접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불러보는 수밖에 없다.
책상에 앉아 가만히 악보를 들여다보았다. 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진다. 이제 피아노 앞에서 확인해 보자. 작곡자가 제시한 빠르기, 아다지오에 맞춰 느리고도 열정적으로 피아노 반주를 시작했다. 메트로놈에 맞춰 쳐보니 내가 상상한 것보다 더 느렸지만 곡에는 차가운 분노와 열정이 숨어있었다.
하지만 분석은 느낌을 쓰는 것이 아니다.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마디 하나하나와 가사를 뜯어 해부하기 시작했다.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하고 부분을 들여다보고 어떤 논리로 곡을 끌어나가는지 분석을 시작했는데 글로 쓰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들었다.
표면적인 분석, 하나 마나 한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분량은 겨우 맞췄는데 맘에 들지 않았다. 시간을 두고 곰곰이 악보를 보며 작곡자의 말을 들어보았다. 일주일 간 하나도 쓰지 못하면서 생각만 했다. 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스트레스만 받았다. 결과물은 없이 스트레스만 받으며 마감 날짜가 점점 다가왔다.
주말에 쓰지 뭐, 일요일 오후부터 써야지, 월요일 아침에 써야지, 화요일 퇴근 후에 써야지.... 까지 미루며 끙끙대다 다시 종이 악보로 눈을 돌렸다. 그제야 작곡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피아노 반주와 노래가 악상이 다른 부분도 있었고(그전엔 눈에 안 보였음) 멜로디의 진행을 보며 가사를 붙여보니 더 느낌이 잘 왔다.
그렇게 시작한 분석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글이 술술 써졌다.
글은 쓰는 것이 아니고 '생각 끝에 터져 나오는 것을 받아 적는다' 라는 경험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쓰고 싶은 대상이 있으면 그 대상을 바로 쓰려고 덤비지 말자.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자. 인물이든 주변 상황이든 간에 애정을 갖고 천천히 생각해 보자. 스트레스는 거들 뿐이다.
오랜 생각이 차곡차곡 안으로 쌓이면 마침내 밖으로 쏟아지는 순간이 온다. 나의 글쓰기는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