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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쌤 Sep 27. 2023

싸구려 커피, 눅눅한 장판과 쇼팽 즉흥환상곡

드라마 무빙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싸구려 와인을 머그컵에 담아 노트북 앞에 앉는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다. 일도 살림도 끝나고 오롯이 나 혼자 즐기는 그 시간, 드라마 무빙을 열었다. 


 아무 밑천 없이 몸으로 때우며 각자 살아가는 장주원과 황지희. 

남자는 초능력자로 어떤 부상을 당해도 바로 회복이 되기에 조직에서 주먹질을 하며 살아가지만 믿던 사람에게 환멸을 느껴 자동차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 자해공갈단으로 먹고산다. 여자는 배달 커피를 쟁반에 받쳐 나르며 티켓을 끊는 손님에게 커피도 팔고 몸을 팔아 생계를 이어 나간다.

모텔에서 장기 숙박 중인 주원과 그 모텔 손님들에게 커피를 배달하는 지희는 서로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지만 조금씩 서로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장주원은 조직에서 배신을 당하며 바다에 던져진 기억으로 길치가 되어 버리고 추운 겨울밤, 이제는 집이 되어버린 모텔을 찾아 헤매다 길을 잃고 만다. 


"아저씨, 괜찮아요?"


배달을 끝내고 가던 지희가 스쿠터를 멈추고 장주원에게 괜찮냐고 묻자, 자동차에 치이고 칼에 찔려도 울지 않던 그는 무장해제가 되어 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린다. 그런 그를 스쿠터에 태우고 모텔로 데려다주는 지희. 


용감하고도 든든하게 주원을 뒤에 태우고 운전하던 지희를 회상하며 주원은 눅눅하고 끈적이는 모텔 장판 바닥에서 자꾸만 웃는다. 좋아하는 무협 소설을 읽어도 레슬링 프로그램을 시청해도 온통 머릿속에는 지희 생각뿐이다. 그때 흐르는 음악은 바로 쇼팽의 즉흥환상곡 올림다단조, 작품 번호 66을 모티브로 해 신디사이저로 느낌을 완전히 바꿔버린 달파란의 쇼팽 즉흥환상곡이 흐른다.

먼저 원곡을 감상해보자. 바쁜 분들은 1분 40초부터 들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Gy5UHK4EeM8


이 우아한 곡이 이 고단하고 힘겨운 커플에게 어울리기 쉽지 않다.

이들이 살아가는 곳은 붉은 조명이 어른거리는 도시의 뒷골목이다. 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곡의 멜로디를 달파란 음악감독은 이렇게 바꿨다. 사실 11화 도입부에 나오는 장면이 참 좋은데 가져올 방법이 없다. 지희를 만나기 위해 주원은 다방으로 배달 커피를 시킨다. 차례로 배달 온 세 명의 여인에게 받은 쓴 커피를 원샷하고는 마침내 지희를 만나게 된다. 지희를 만나서 주원은 커피에 설탕을 세 스푼 넣어달라고 한다. 달달한 커피로 그들만의 데이트가 시작된다. 배달을 마치고 돌아서는 지희는 모텔 현관에 주원이 가지런히 정리해놓은 자신의 구두를 보고 마음이 조금 열린다.


다시 음악으로 돌아가 지희를 찾아 다방에 커피를 마시러 온 주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먼지가 뿌옇게 앉은 알록달록한 다방에 흐르는 쇼팽 즉흥환상곡의 주제는 뽕삘이 흐르는 트로트 그 자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m8AOScDo3o


 이 힙하고도 싸구려 감성이 넘치는 곡을 사랑하는 지희를 잃은 주원의 통곡 장면에서 템포를 늦추고 악기 구성을 바꿔 이렇게 다른 감성으로 풀어낸다. 이쯤 되면 원곡을 다시 듣고 싶어질 지경이다. 하나의 멜로디로 이렇게 다양한 사람의 감정을 풀어낼 수 있다니.


https://www.youtube.com/watch?v=u_jXYElGzqk


작곡자인 쇼팽이 감탄할 지경이다. 편곡의 힘은 놀랍다. 이 고상하고도 우아한 멜로디가 갖는 힘은 이렇게나 크다. 무빙에 여러 등장인물이 나오지만 이 커플을 추억하게 하는 힘은 음악이 가장 컸다.


내게 쇼팽의 즉흥환상곡은 하나로만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원곡을 뛰어넘는 편곡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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