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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쌤 Dec 22. 2023

감동적인 공연은 관객이 함께 완성한다.

비킹구르 울라프손의 리사이틀에 다녀왔다. 

그의 연주는 음반으로 처음 들었는데 천재 피아니스트들의 홍수 속에서 그는 특징이 뚜렷했다. 17세기 프랑스 작곡가 라모의 곡이 현대 작곡가의 곡으로 들리는 해석과 음색이 신선했다. 그가 연주하는 바흐는 새롭고 투명했고 드뷔시도 비킹구르만의 느낌이 가득했다. 이번에 출시한 새 앨범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연주하러 내한공연을 한다니 당연히 갈 수밖에 없었다. 그가 연주하는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어떨지, 음원으로는 이미 들었지만 실연이 너무나 궁금했다. 그가 그저 리코딩 피아니스트는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TwqBVt2Clw


고양시에 위치한 아람누리 음악당은 1,400여 석의 공연장으로 강남에 위치한 예술의 전당과 롯데콘서트홀에 거리감을  느끼는 서울시민과 경기도민들에게 좋은 선택지이다. 빠른 예매를 놓쳤기에 예술의 전당에 좌석이 많이 빠진 상태라 아람누리를 찾았지만 좋은 선택이었다. 


공연 20분 전에 입장해서 착석했는데 이미 많은 관객들이 입장해 있었고 아주 조용했다. 안내원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관객들을 살폈는데 아주 세심하게 안내했다. 

이 날 연주할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80분 동안 인터미션 없이 진행되는 공연으로 중간에 퇴장하면 입장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안내를 안내직원들이 미성년자가 있는 좌석마다 다니며 조용하게 안내를 했다. 아이들이 퇴장하면 부모들도 집중이 안 될 테니 아주 세심한 배려였고, 내 앞 좌석에 앉은 초등 남학생은 안내를 받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공연이 임박하자 직원들은 복도를 다니며 다시 한번 주의사항을 안내했고 공연 중간에 박수는 없이 커튼콜 때만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고 상기시켜 줬다. 


공연 시작 5분 전엔 원래 기침 소리, 부스럭 거리는 소리, 대화하는 소리가 들리기 마련인데 직원들의 안내 덕분인지 공연장 내는 이제까지 본 적 없는 정숙함이 있었다. 


비킹구르 울라프손이 등장하고 아리아가 시작되자 공기의 흐름이 달라졌다. 연주자에게 집중하는 관객들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음색은 청명하고 아름다웠다. 변주가 시작되고 사이사이 기침도 하련만 공연장은 모두가 연주자만을 집중하는 듯했다. 


변주가 거듭될수록 음악은 깊어지고 밝아졌다 침잠하고 다시 맑아지며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페달 사용이 많아서 눈에 띄었지만 얇게 살짝 밟아 바흐의 느낌을 잃지 않으며 비킹구르만의 음색을 만들어 내는 것이 경이로웠다. 해석에 대한 부분은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겠으나 이런 음색을 실연으로 듣는 것만으로도 아주 좋았다. 

변주곡의 중후반으로 갈수록 관객들 집중력은 흐트러지기 마련인데 조용히 잠에 든 분들도 조금 보였지만 모든 관객들이 같은 마음으로 연주에 집중해 감상하는 모습 또한 연주의 일부분으로 느껴졌다. 


그 유명한 아리아로 시작해서 아리아로 끝을 맺는 80분 간의 여정은 마침내 끝이 났다. 연주 시작에서 들었던 아리아와 긴 여행을 끝내고 다시 들은 아리아는 그 느낌이 너무나 달랐다. 

피아니스트는 건반 가까이 얼굴을 묻었고 그 아름다운 잔향이 마법처럼 심장을 어루만지고 객석을 맴돌다 사라졌다. 그가 얼굴을 들고 힘을 뺀 팔을 피아노 의자 아래로 내리고 숨을 들이쉬자 그제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런 관객들은 소중하다. 연주도 좋았지만 관람객들 때문에 더 감동받았다.

사진: 남샘


연주가 너무 좋았기에 앙코르를 기대했지만 커튼콜을 받고 등장한 연주자는 이렇게 말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하나로 완결이 되는 것이고 마지막에 연주한 아리아가 앙코르인 셈이다. 이 곡을 연주하고 쇼팽의 마주르카를 앙코르로 할 수는 없다. 완결이 되었으니 오늘 앙코르는 할 수 없음을 이해해 달라.


너무나 설득되는 말이라 관객들은 큰 박수로 화답했다. 라모의 곡을 앙코르로 내심 기대했던 나는 아쉬운 맘을 뜨거운 박수로 대신했다. 바흐의 원대한 계획은 여러 연주자들에게 면면히 내려오고 있고 비킹구르 울라프손의 견해를 현장에서 관객들과 함께 공감하며 전해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오늘 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음악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계획 아래 있고, 비킹구르 울라프손은 그 계획의 대리자이다. -윤무진(음악칼럼니스트)

https://youtu.be/hMGIncslU6g?si=FwEpyKq7R3S22C9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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