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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WATCHA Aug 18. 2020

이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워킹 데드



풍랑을 상대해보지 못한 선원은 결코 유능해질 수 없다 

그럴듯한 말이지만 얼마나 많은 선원이 감당이 안 되는 풍랑으로 목숨을 잃었겠는가. 더구나 대부분은 평범한 인생들일 테니 적당한 어려움에 적당한 노하우가 쌓여가는 것으로 만족했을 터 바다는 언제나, 어디서나 인간에게 매정하고 찬란한 영광은 낭만주의 소설에나 등장할 법이다.


결국 사람은 사람에 의지해서 산다. 사람은 언제나 무리를 이루는데 우리는 그것을 사회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시스템은 그것의 수준 여하와는 상관없이 합리적이라 믿어지고, 수용되며 당시의 생활 방식을 정의한다. 인류 역사상 시스템은 두 가지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무너졌다. 


첫 번째는 내적인 모순이다. 귀족들이 사회자원을 몽땅 차지하고 있으면서 평민들이 가진 최후의 것까지 내놓으라고 할 때 갈등은 시작된다. 반대로 평민들에게 많은 것이 주어지면 그들은 귀족들의 더 많은 것에 이의를 제기하게 되고 역시 갈등은 시작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극단적인 처지이다. 세상은 언제나 찬연한 부익부 빈익빈. 어지간한 격차로는 시스템을 뒤흔드는 갈등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귀족과 평민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불리해야만 하며 그러한 구조로 사회가 격렬하게 삐걱거려야 한다. 


두 번째는 외적인 요소이다. 전쟁, 질병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사람들끼리의 다툼이건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의 창궐이건 한 번 발생하면 문자 그대로 재앙이 벌어진다. 쉽사리 복구될 수도 없으며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살아남은 자들은 심각한 정신적 내상을 입는다. 6.25 전쟁은 포로 송환 문제를 두고 거의 2년간 공방을 벌이면서 시간을 소비했다. 


1차 세계 대전 때는 참호를 뚫을 만한 무기가 없었기 때문에 한 번의 전투에서 수십만 명의 보병이 전사했고 참호를 뚫기 위해 탱크, 비행기, 독가스 같은 신형무기가 개발되자 이번에는 신무기로 인하여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죽었다. 도대체 2차 세계 대전과 유태인 홀로코스트는 무슨 관련이 있었을까. 독일은 소련이라는 늪에 빠졌고 드넓은 전선을 유지하든 생산력을 유지하든 전쟁 막바지까지 끝없는 노동력 부족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혐오는 현실이 되었고 나치는 가공할 대량학살을 일으켰다.


사실 질병에 의한 타격, 그것이 흑사병이 되었든 천연두가 되었든 이 또한 문명의 발전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질병에 대한 항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이들에게 빠른 속도로 전파가 되려면 그만큼의 교통 혁명 혹은 각양의 제반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는데 칭기즈칸이 이끌던 몽골족의 대원정 혹은 대항해시대라는 전무후무한 무역항로의 개척은 전염병이 얼마큼 치명적인가를 역사 가운데 기어코 입증해 내었다.


워킹데드의 주인공은 결국 인간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다양하다. 유능하지만 계산이 빠른 사람, 책임감이 있지만 특별한 능력은 없는 사람, 쉽게 믿고 쉽게 결정하고 쉽게 흥분하는 사람. 그중에서도 빼어난 능력을 가진 이가 있고, 몇몇이 의기투합하여 상황을 주도하면 그곳에서 적당한 공동체가 만들어지며 집단은 기능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연결되어 있다. 남자와 여자는 언제든 서로를 매력적으로 느끼고, 때로는 친구의 아내와 아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도 한다. 안 되는 것을 알지만 기어코 저질러야 직성이 풀리기도 하고, 한 편에선 극히 헌신적인데 다른 한 편에서는 서슴지 않고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위험하고 문제는 언제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다.


이미 시즌 10까지 나온, 10년을 이어온 좀비물의 걸작 워킹데드는 결국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1960년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시절부터 좀비물은 사회문제를 안고 시작한 멋진 장르의 영화이다. 시체들은 느리게 걸어 다니지만 기존의 사회 질서를 무너뜨렸고 충분히 느리게 걸어 다니는 관계로 사람들에게 공포심과 배신감과 온갖 위험한 생각의 여지를 허락한다. 그러므로 물려 죽는 사람만큼 죽고 죽이는 비극적인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영화 <28일 후>가 빠르고 무서운 좀비를 몰고 나와 좀비물의 부활을 알렸다면 워킹데드는 드라마 시즌제라는 방식을 통해 좀비물의 정통성을 회복하고 다시 사람들의 문제를 고발하였다. 모든 시즌이 화제가 되었지만, 지금의 사정에서는 시즌 4가 적당할 듯. 밖에는 좀비가 우글거리는데 공동체 내에서 치명적인 전염병이 발생했으니 말이다. 



워킹 데드, 지금 보러 갈까요?


심용환 / 역사학자, 작가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이자 성공회대 외래교수입니다. <단박에 한국사>, <헌법의 상상력> 등 깊이와 재미를 고루 갖춘 작품을 쏟아내고 있죠. <KBS 역사저널 그날>, <MBC 타박타박 세계사>, <굿모닝FM 김제동입니다>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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