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왓챠 WATCHA Aug 14. 2020

믿나요, 사람을?

메기(2018)



혹시... 설마...

나는 자주 의심의 구덩이에 빠지는 편이다.


연애를 할 땐 상대의 마음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했고 늦은 밤 연락이 안 되는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바로 의심의 촉을 세웠다. 물론 대개의 경우 나의 과도한 의심이었지만. 그럼에도 사소한 거짓말이 밝혀지면 그래 역시 나의 의심의 이유가 있었다고, 의심이 과했던 나를 합리화했다.


연애뿐 아니었다. 일상에서도 종종 의심의 구덩이에 빠지곤 하는데 그 능력을 그나마 긍정적으로 발휘했던 시간은 짧게나마 일간지 기자 생활을 했던 시간이다. 일단 의심부터 해보는 태도가 기자로선 필요한 덕목이니만큼 그나마 의심 능력을 발휘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특히 사람을 의심하는 일은 모두에게 참 피곤한 일이다. 


영화 ‘메기’의 초반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의심의 구덩이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한번 의심의 구덩이에 빠지면 그 구덩이를 계속 파고 또 파게 되는데 파면 팔수록 빠져나오기가 더 힘들어진다. 저 사람이 설마...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모든 행동과 말들이 상상을 더하고 더해 걷잡을 수 없어진다. 빨리 확인을 하면 될 텐데, 의심이 진실이 되는 게 무서워서 의심만 할 뿐 확인을 피하기도 한다. 


영화 ‘메기’는 다양한 주제를 여러 방식으로 얽혀 놓은 영화다. 그럼에도 한 가지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면 ‘믿음과 의심’이다. 


마리아 사랑병원에서 연인 간의 사랑 장면을 담은 은밀한 엑스레이 사진이 병원 동상에 걸린다. 주인공 간호사 윤영은 엑스레이에 찍힌 커플을 자신과 남친인 것 같다는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서 사직까지 고민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는 의문을 던진다. 사람들은 이 불법 촬영을 누가 했냐 보다는 누가 찍혔냐에만 관심이 있지 않냐며. 


엑스레이 소동 이후 공교롭게 윤영 외엔 출근을 하지 않는데, 사람들이 일부러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의심하는 부원장 경진과 사람들을 믿는다는 윤영. 이들은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결근한 직원의 집까지 방문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여러 경험들로 사람을 믿지 않는 경진. “내가 개를 고양이라고 우겨도 믿을 사람은 믿고 떠들 사람은 떠든다”는 모토를 갖고 있지만 결근한 직원이 거짓말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윤영과 함께 다시 사람을 믿기로 결심한다.


윤영의 남친 성원은 반지를 잃어버리고 자신의 후배를 의심하지만 그게 오해였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하고, 사람을 믿고 싶다는 윤영도 성원이 과거에 데이트 폭력 가해자일 수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되는데...


사실 이 영화는 사건 하나의 흐름을 따라가는 기존 영화들과 다르게 사건의 흐름이 중요하지 않다. ‘믿음과 의심’이라는 큰 주제에 맞춰서 영화 속 주인공들이 믿음과 의심을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다.


영화의 화자는 병원 어항 속 ‘메기’다. 메기의 목소리 연기를 배우 천우희가 했다는 사실도 재밌다. 메기 시점의 내레이션이나 영화 속 색감, 재개발, 싱크홀 등을 다루는 방식이 발랄하고 매력적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유독 파란 색감의 옷을 자주 입고 프라이탁 가방을 메고 나오는 것조차 화면의 이미지를 고려한 선택이라 느껴졌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엔 혼란이 올 수도 있다.  

그래서 의심을 하지 말자는 걸까, 하자는 걸까? 

사람을 믿자는 걸까,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까?


영화의 중반부까지는 의심이 정말 의심이었다는 게 드러나면서 ‘그래, 사람을 믿어야지 함부로 의심하거나 단정 짓지 말자’ 하는 마음을 먹게 한다면-

영화의 후반부에선 ‘의심이 사실일 경우도 있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에 잠기게 된다. 


사람을 마냥 믿자고 하기엔 우리는 ‘기생충’에서 ‘믿음의 벨트’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확인했다. 못 믿을 세상이라 오히려 ‘믿을 만한’ 사람의 소개를 통해서만 새 사람을 받는다는 ‘믿음의 벨트’가 얼마나 끔찍하게 끊어질 수 있는지를 이미 봤다. 실제로 우리는 믿었던 유명인의 믿지 못할 뒷모습을 지금도 뉴스를 통해 꾸준히 보게 된다. ‘저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닌데’라는 믿음이 얼마나 피해자에게 폭력적인가. 


그렇다고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기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너무 많다. 내가 의심 때문에 숱하게 애인에게 사과를 하고 연애의 위기를 맞았던 것처럼. 


결국 다시 저 문구를 꺼내 본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의심이 진실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의심이 시작되면 신속하게 빠져나오는 것. 얼른 확인하고 빠져나와야 한다. 때론 의심이 진실이 됐을 때 그걸 받아들일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온다. 무섭다고 구덩이를 더 파지 말고 용기 있게 구덩이를 탈출할 수 있기를.  



메기, 지금 보러 갈까요?


최유빈 / KBS 라디오 PD


매일 음악을 듣는 게 일입니다. 0시부터 2시까지 심야 라디오 '설레는 밤'을 연출하고 있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