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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즈하루 Jun 10. 2019

재즈를 잊은 그대에게 #1

다시 재즈로 돌아갈 수 있을까

#1 다시 재즈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재즈를 잊고 산 지 꽤 오래다. 2003년부터 재즈 잡지를 만들었지만 2015년 아이를 낳고 3개월의 출산휴가와 1년의 육아휴직을 끝으로 일을 그만두었다. 그 즈음 재즈 잡지 기자 됐다며 큰 맘 먹고 샀던 소니 DVD 플레이어와 와피데일 스피커, 결혼 선물로 받았던 2구 진공관 앰프를 모두 치워버렸다. 이사와 결혼 때도 버리지 않았던 책과 음반은 중고 매장에 팔았는데, 2백 만원 정도 나왔다. 책이 훨씬 많았지만 헐값이었다. 4천원 씩 쳐주는 미개봉 시디가 돈이 됐다. 퇴사하기 몇 해 전부터 축제나 행사 때 싸게 산 앨범이 주로 미개봉이었다. 꼭 들어야 할 음반이어서, 유명한 뮤지션이어서, 사 놓고 산 줄도 몰랐다. 


대단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니다. 둘이선 그럭저럭 살 만 했던 공간이 셋이 되며 좁게 느껴졌고 가장 먼저 책과 음반이 정리 대상이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며 교복과 교과서를 버렸던 것처럼 그렇게 정리했을 뿐이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과정은 문자 그대로 시원섭섭했다. 아쉬운 마음도 들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재즈가 재미없고, 지겹고, 그리고 두려웠다. 들어야 할 것은 많았고, 들리지 않는 것은 더 많았다. 


재즈를 졸업하고 시작된 육아는 재즈는커녕 삶의 열정마저 사라지게 할 만큼 힘들고 우울했다. 그리고 재즈에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라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여전히 나는 터치 몇 번이면 재생되는 핸드폰 속 재즈도 듣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야 스쳐가는 멜로디에 재즈를 기억했다. 재즈를 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글은 더 이상 열정이 남아있지 않은 내가 재즈를 다시 들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다시 재즈로 돌아갔습니다, 라는 결말을 쓰고 싶다. 재즈 애호가로 말이다.   





그녀는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재즈를 알아가면서 줄리 런던이나 다이애나 크롤을 좋아했다. 엘라 피츠제럴드, 빌리 홀리데이, 사라 본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그녀들을 흠모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마지막까지 나와 재즈를 이어주었던 것은 나윤선과 노마 윈스턴의 노래였다. 


나윤선을 처음 본 것은 2003년 6월 국립극장 앞에서 무료로 열렸던 토요문화광장에서였다. 초여름의 나른한 해가 지고 있었고 밝게 웃으며 무대에 오른 그녀는 아름다웠다. 당시를 생각하다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떠올랐다. 나(와타나베)는 하쓰미를 기억한다. “압도적인 석양 속에서 나는 문득 하쓰미를 생각해냈다. 그리고 그때 그녀가 일으킨 내 마음의 소용돌이가 과연 무엇이었던가를 이해했다. 그것은 채워질 수 없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채워질 수 없을 소년기의 동경과도 같은 것이었다.” 주인공과 꼭 같은 나이가 된 나는 이어지는 글에 한참을 머물렀다. 내가 재즈에 대해 느꼈던 감정은 이런 것이었을까. “나는 그러한 타오르는 순진무구한 동경을 벌써 까마득한 옛날에 어딘가에 놓고 잊어버려 왔기에, 그러한 것이 한때 내 속에 존재했다는 것조차도 오랫동안 생각해 내지 못한 채 살아온 것이다.” 


마지막으로 잡은 손은 노마 윈스턴이었다. 스탠더드 곡 ‘Every Time We Say Good’을 가장 좋아했고, ‘Cucurucucu Paloma’는 영화 [그녀에게]를 좋아하는 나에게 불러주는 노래 같았다. 인터뷰 때마다 식상하지만 빠지지 않는 게 좋아하는 혹은 영향 받은 뮤지션에 대한 질문인데, 국내 뮤지션 인터뷰를 하다가 귀동냥으로 노마 윈스턴을 알게 되었다. 농담처럼 공연 보려면 영국이라도 가야하나 했는데 우연처럼 2013년 ECM 페스티벌로 내한했고,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노마 윈스턴의 노래는 생생하고 아름다운 삶을 그려내고 있었다. 나 역시 나이가 들어 그 삶을 닮고 싶었다. 그것은 노래 이전에 그녀와 내가 나누는 아름다운 대화였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오랜만에 행복했다. 


서두에서 나는 재즈가 두렵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느라 여유도 정신도 없었지만, 재즈 기자를 그만 둔 후에는 애증(愛憎)의 손을 털고 재즈와 먼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 내 인생에는 재즈로 빛나는 순간들이 있었다. 내 삶을 풍요롭게 해주었던 재즈의 기억이었다.    


노년의 재즈 애호가가 되고 싶다


여기까지 글을 읽은 독자를 배신할 생각은 없지만, 진공관과 스피커는 친척에게 빌려주었고 시디는 100장쯤 들어가는 시디장 하나에 남겨두었다. 클래식, 가요, 동요, 재즈가 섞여있지만 재즈는 박스세트가 대부분이라 그 수가 훨씬 많다. 10년 혹은 20년 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는 다시 재즈로 돌아가려 한다. 돈을 모아 제법 괜찮은 시스템도 갖추고 싶다. 고단한 하루를 마친 저녁, 조도를 낮춘 거실이나 주방에서 재즈를 듣는 것은 오래 전부터 내가 그려온 그림이었다. 내가 스스로 덧씌운 재즈의 무게는 아직 벗지 못했지만 여전히 그 상상에 설렌다. 나는, 노년의 재즈 애호가가 되고 싶다. 


(재즈피플 2017년 9월호, 최종수정 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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