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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즈하루 Dec 04. 2019

온 세계가 버드였다면

하루키로 읽는 재즈 6

온 세계가 버드였다면 

찰리 파커  


온 세계가 버드였다면. 1955년 3월 12일. 뉴욕의 한 호텔에 쓰러져있던 찰리 파커는 동료 연주자들에게 발견되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다. 재즈계는 버드의 부활에 깊은 경의를 표하며 추종 세력을 만들어냈고 급기야 온 세계는 버드로 가득해진다. 버드의 천재성과 속주만이 최고의 음악으로 평가되는 세상. 버드의 영감에 도달하기 위해 마약과 섹스에 탐닉하는 세상. 연주자들은 만성적인 어깨 결림과 치통으로 고생하게 되고 반(反) 버드 세력은 지하에서 스윙을 연주하며 낭만에 취한다. 아마도 온 세계가 버드였다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베이시스트 빌 크로우는 <재즈 우화>에서 찰리 파커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온갖 종류의 자극적이고, 환각적이고, 마취적이고, 최면적이고, 도취적인 것들을 한껏 호흡하고, 빨아들이고, 들이마신” 연주자라고 설명한다. 그의 실체든 음악이든, 버드를 아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표현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속에서도 버드는 혼돈을 의미한다. 환상적이지만 위태롭다. 맹렬하다. 단편 <춤추는 난쟁이>에서 난쟁이는 꿈속에 나타나 ‘나’에게 춤을 추자고 말한다. ‘나’는 피곤해서 거절하지만 난쟁이는 휴대용 플레이어에 레코드를 걸고 혼자 춤을 춘다. 난쟁이는 일단 건 레코드는 그냥 내버려두었기에 (애호가라면 치를 떨겠지만!) 재킷과 판이 뒤죽박죽이다. 지금은 [기타 음악 명곡집]에 들어 있던 찰리 파커 레코드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찰리 파커의 맹렬히 빠른 음표를 몸에 빨아들이면서 난쟁이는 질풍과도 같이” 춤을 춘다.

 

장편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1985)의 열일곱 번째 장 제목은 ‘세계의 끝, 찰리 파커, 시한 폭탄’. 계산사로 일하는 ‘나’는 비밀스러운 임무를 부여받고 박사의 연구실에 갔다가 핑크색 옷만 입은 손녀딸을 만난다. 호기심 많은 그녀는 알토 색소폰은 불 수 있는지, 찰리 파커의 레코드를 가지고 있는지 묻는다. 갑자기 쫓기는 신세가 되어 혼란스러운 이 상황에 찰리 파커라니. ‘나’는 체념한 듯 말한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도저히 찾을 수 있는 상태도 아니고, 게다가 스테레오도 부서져 버렸으니까, 어차피 들을 수도 없어.”


이 소설은 하루키 초기 대표작으로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세계의 끝’이라는 두 세계가 교차하는 판타지다. 35년 전 작품이지만 오컬트적인 세계관, 흥미롭고 속도감 있는 이야기는 하루키 입문용으로도 권할 만하다. 작품에 대한 평도 좋아서 21회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을 수상했다. 스키터 데이비스가 부른 ‘세계의 끝(The End Of The World)’이 소설의 모티프가 되며, 음악은 혼란스러운 상황 또는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BGM으로 사용된다. 그중에서도 재즈는 과거의 기억이다. 옛날 재즈를 좋아하느냐는 도서관 여자의 물음에 “고등학생 시절에는 재즈 다방에서 이런 음악만 듣고 있었지.”라며 MJQ의 [Vendome], 케니 버렐의 [Stormy Monday]와 듀크 엘링턴의 [The Popular Duke Ellington]을 듣는다. 엘링턴 악단의 로렌스 브라운의 ‘Do Nothing Till You Hear From Me’와 조니 호지스의 ‘Sophisticated Lady’도 휘파람으로 따라 부르곤 한다. 


‘버드=비밥’이 공식화되어 있지만 찰리 파커의 모든 음악이 그런 건 아니다. 하루키 두 번째 소설 <1973년의 핀볼>에는 “찰리 파커의 ‘Just Friends’를 들으면서 <철새는 언제 자는가?>라는 항목을 번역하기 시작했다.”는 문장이 등장한다. 1949년과 50년에 걸쳐 녹음한 현악 앨범 [Charlie Parker With Strings]의 첫 곡이다. 찰리 파커가 현악이라니. 다들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버드는 클래식, 특히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나 에드가 바레즈 같은 당대 음악가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노먼 그랜츠의 진두지휘 아래 미치 밀러를 비롯한 현악 연주자들이 모였고 피아노 스탄 프리드맨, 베이스 레이 브라운, 드럼 버디 리치가 함께 했다. 이 앨범에서 버드는 가볍고 우아한 춤을 춘다. 그것이 환호가 아닌 비난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타임머신이 있다면   


재즈가 가장 재즈다웠던 때를 꼽으라면 1940~60년대일 것이다. 우리는 당시 공기 중에 떠다니던 소리의 일부를 재생(再生)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재즈 애호가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기로 가는 꿈을 꾸곤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집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에서 타임머신이 있다면 1954년 뉴욕으로 날아가 클리포드 브라운 & 맥스 로치 퀸텟의 라이브를 원 없이 듣는 게 소원이라고 썼다. 당시 그들의 연주가 뛰어나기도 했지만 찰리 파커나 빌리 홀리데이 같은 연주자들은 약물로 인해 연주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과연...’하고 깊게 공감했다.   


버드가 오래 살았더라면 재즈계는 바뀌었을까. 버드가 더 살았다면 좋은 음질의 뛰어난 연주와 솔로를 많이 남겼을 것이다. 어쩌면 자기 파괴적인 삶에서 벗어나지 못해 50년대 이후 재즈계에 적응하지 못한 채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루키는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서 “재즈 뮤지션이라고 하면, 모두들 마약을 먹거나, 반 정도는 성격 파탄자들이었소. 하지만 이따금 뒤로 까무러칠 만큼 굉장한 연주를 들을 수 있었어”라고 말한다. 그리고 복잡한 심경을 대변하듯 덧붙인다. “온 세계가 찰리 파커로 충만돼야만 하는 게 아니니까.”  (재즈피플 2019년 11월호)

 

Charlie Parker 

[Charlie Parker with Strings : The Master Takes] Mercury / 1950

Charlie Parker (as), Mitch Miller (oboe), Bronislaw Gimpel, Max Hollander, Milton Lomask (violins), Frank Brieff (viola), Frank Miller (cello), Myor Rosen (harp), Stan Freeman (piano), Ray Brown (bass), Buddy Rich (ds), Jimmy Carroll (arr/ con)     


1. Just Friends

2. Everything Happens to Me

3. April in Paris 

4. Summertime 

5. I Didn't Know What Time It Was 

6. If I Should Lose You 

7. Dancing In The Dark

8. Out Of Nowhere

9. Laura

10. East Of The Sun (And West Of The Moon)

11. They Can't Take That Away From Me

12. Easy To Love

13. I'm In The Mood For Love

14. I'll Remember April...     


https://youtu.be/DmRkZeGF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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