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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은영 May 08. 2019

37. 증발하는 사람들

책임감에 관하여

삶이 괴롭고 힘들다는 지인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딱 증발해 버리면 좋겠다. 죽으면 과정도 고통스럽고, 남겨진 사람들도 힘들거잖아. 그러니까 이대로 딱 증발하면 깔끔할 것 같아."
어쩌면 그녀처럼 불가능한 '증발'을 꿈꾸는 이들이 많을런지 모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불가능한 일이기에 그저 상상으로 그치고 만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실제 매년 '증발하는 사람들'이 많단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방송 중 <하룻밤 사이에 증발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바 있다. 말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취재한 것이었다. 

가족과 친구,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밤 사이 사라진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잡혀간 것도 아니고, 그저 자의로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증발하기 전에 새로운 집과 직장, 신분까지 만들어주는 업체에 의뢰를 한단다. 업체는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의 사례비를 받고 완전히 다른 삶을 살도록 도와준다. 

그러니까 어제까지 분명히 존재했던 내 가족이 밤 사이에 증발해 버리는 것이다. 새로운 신분으로 다른 곳에서 살아가기에 그들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증발의 이유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 혹은 '수치심 때문에'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누구나 고통이 있지만,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간다. 그건 바로 가족과 친구에 대한 '책임감'이 아닐까?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실제 증발한 사람을 수소문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피치못할 사정으로 새로운 신분을 얻어 살아가고 있다고 밝히며,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런가하면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증발해버린 아내도 인터뷰를 했다. 드러난 이유는 전혀 없었고, 그저 도박 같은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까 혼자 추측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아이와 함께 내내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럼 증발한 사람들이 모두 전국 곳곳에 꽁꽁 숨어 버린걸까?
그들 중 많은 이들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이를 수습할 인원으로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왜 굳이 증발해서 위험천만한 일을 하고 있는걸까? 

마지막엔 그곳에서 죽은 무연고자들을 거두어 장례를 치뤄주는 스님이 등장했다. 본인과 일면식도 없는 이의 마지막을 지켜주는 스님의 얼굴에 쓸쓸함이 한가득 묻어났다.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울먹거림이 귓가에 오래 남았다. 떠난 이는 개인적인 명예는 지켰을런지 몰라도, 가족들에게는 치유되지 못할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증발하고 싶어도, 증발하지 말자. 증발하고 싶을 때마다 어린왕자의 여우가 했던 말을 생각하자.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하게 되는거야. 너는 나에게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거고, 나도 너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유일한 존재가 되는거야.'
우리의 가족과 친구들, 지인들 모두 우리에게 의미있는 존재란 걸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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