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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은영 May 16. 2019

51. 기록(2)

요즘 내가 천천히 읽고 있는 책이 있다.  <나에게 돌아오는 시간>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다. 저자인 아버지가 아들을 키우며 느낀 감정들과 경험들을 진솔하게 풀어낸 이야기라 아껴가며 읽고 있다. 

오늘 아침에 읽은 대목도 아주 인상 깊었다. 초등학생이었던 아들과 처음 떠난 둘만의 여행이 어느새 정기적인 행사가 된 이야기였다. 아들이 고3이 될 때까지 총 12번에 걸쳐 부자지간의 여행을 이어갔는데, 아버지는 여행을 다니며 아들에게 여정을 메모하게 했고, 여행 후에는 여행기를 남기라고 조언했단다. 한번은 나홀로 도보여행을 떠나는 아들이 캠코더가 필요하다고 하길래 이유를 물어보니 여행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고 대답했단다. 

결국 아버지도 아들도, 여행마다 늘 기록을 남겼고, 그 기록이 모여 <최효찬의 아들을 위한 성장여행>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아들이 그 동안 남긴 기록들도 집필에 큰 도움을 주었기에, 아들의 이름도 공동저자로 올라 갔단다. 

아침에 우리 아이가 열심히 문제집을 풀길래 이유를 물었더니, 오늘 학교에서 사회 시험을 본다고 했다. 
나는 아이가 3학년이 되었을 때, 공부는 물론 생활도 책임감을 가지라고 당부했다. 언제까지 엄마가 옆에서 챙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본인 공부에 자발성과 책임이 필요하다 싶어서였다. 다행히 아이는 학교 진도에 맞춰 문제집을 푸는 일을 어려워하지 않았다.

아이는 문제집을 다 풀고 공책을 꺼내 중얼중얼 암기하기 시작했다. 무슨 공책인가 싶어 들여다보니, 수업시간에 한 노트필기라고 했다. 3학년때부터 듬성듬성 노트 필기를 시도하더니, 이제는 수업시간마다 열심히 적는 모양이었다. 반 친구들도 필기를 하느냐 물으니 자기 혼자만 한단다. 아이는 필기를 해보니 기억에도 오래남고, 무엇보다 스스로가 대견하다고 했다.

최효찬님과 아들의 기록, 그리고 우리 아이가 하는 필기는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풍경도, 선생님의 설명도 글로 적히는 순간, 흘러가버리지 않고 그대로 멈춰선다. 다시 들여다보면 몰랐던 깨달음을 주고, 기억을 되살려 생생한 현장감을 주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이제 아이와 여행을 갈 때마다 나도, 아이도 기록을 해야겠다. 소설가 김영하님처럼 새수첩 하나를 들고 가는 건 어떨까?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내친 김에 티켓도 붙여서 우리만의 여행책을 완성하면 좋겠다. 그럼 여행의 의미가 그대로 책으로 남아 오랫동안 기억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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