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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은영 Jun 21. 2019

지극한 몰입을 경험해 본 적 있나요?

몰입의즐거움

“머릿속으로 내가 바라는 것을 생생하게 그리면 온몸의 세포가 그 목적을 달성하는 방향으로 조절된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강력하게 원하면 몰입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몰입을 통해 목적에 도달하게 된다.

화학자 케큘러는 벤젠 구조의 비밀을 풀기 위해 밤낮으로 벤젠 생각만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이상한 꿈을 꾸었다. 뱀이 자기 꼬리를 물고 빙빙 돌고 있는 꿈이었다. 그는 잠에서 깨자마자 그 뱀이 돌고 있는 모습을 닮은 고리 형태의 화학구조를 떠올렸다. 그것이 바로 벤젠 구조의 비밀이었다.

황농문 교수님이 쓰신 <몰입>이라는 책에 몰입으로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뉴턴은 한 가지 문제에 몰입하면 다른 것은 모두 잊었다고 한다. 식사시간에도 생각을 멈추지 않아 고양이가 대신 밥을 먹었고, 밤을 꼬박 세우고도 자신이 잠을 안 잤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했다. 뿐만 아니라 최소 30분은 불러야 식사를 하러 겨우 나왔고, 저녁 식사로 차려진 음식을 다음날 아침으로 먹은 적도 있었다.
이런 극적인 몰입 때문에 그는 사람들과 거의 교류하지 않았고, 혼자 산책이나 운동을 하며 여가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괴짜 물리학자 파인만의 몰입도 흥미롭다.
그는 첫 번째 아내와 사별하고 메리 루라는 여성과 재혼했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은 곧 파경을 맞이했다. 둘의 성향이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메리 루가 사교와 파티를 즐기는 사람이었던 반면, 파인만은 혼자 연구에만 몰입했다.
법정에서 메리 루가 진술한 바에 따르면 파인만의 유일한 취미는 봉고 연주였다고 한다.
“드럼 소리가 지독하게 시끄러웠죠. 게다가 깨자마자 머릿속으로 미적분 문제들을 풀기 시작한답니다. 차를 몰면서도, 거실에 앉아서도, 밤에 침대에 누워서도 미적분을 했죠.”
그녀의 진술에 대한 파인만의 항변은 이러했다.
“물리는 나의 유일한 취미입니다. 그것은 나의 일이자 오락이기도 하죠. 내 노트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나는 항상 물리에 관한 문제를 생각합니다.
 
몰입은 지극한 즐거움이다. 이런 몰입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 축복받은 일임에 틀림없다. 나 또한 아주 가끔 지극한 몰입을 경험하는데, 그럴 때마다 정신적인 ‘충만함’을 온몸으로 느낀다. 만약 이런 충만함을 전 생애에 걸쳐 지속적으로 느낀다면, 삶이 훨씬 재미있어질 것만 같다.

한 번은 우리 아이가 백일장에 참가했다. 세 가지 주제 중에 그나마 쉬워 보이는 것이  ‘얼굴’이었다.  아이는 고민을 거듭했지만, 떠오르는 얼굴 이야기가 없다며 괴로워했다. 결국 포기를 하려나 싶었는데,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곧바로 글쓰기에 몰입했다.  연필을 쥔 손에 한껏 힘이 들어갔고, 꼭 다문 입술은 다부져보였다.그렇게 한동안 마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외부 소음에도 꿈쩍하지 않은 채,그저 쓰고 지우고만 반복했다.
 
한 시간이 흐른 후, 마침내 글이 완성되었다.  그런데 아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원고지를 제출한 후, 무슨 이야기를 썼냐고 조심스레 내가 물었다.
“어릴 적에 엄마가 유관순 열사 책 읽어줬던 거 기억나? 그때 내가 유관순 열사 얼굴보고 못생겼다고 말하니까 엄마 표정이 아주 슬퍼졌잖아.”

아이는 꽤나 오래된 이야기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사진 속 유관순 열사는 모진 고문으로 얼굴이 퉁퉁 부은 상태였다. 물론 어린 아이의 눈에는 그저 예쁘지 않은 얼굴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문득 유관순 열사와 그녀의 어머니 마음을 떠올렸고, 그 때문에 아이의 말이 참 아프게 느껴졌었다.

“그때 이야기를 썼는데, 글을 쓰다보니까 유관순 열사님께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 얼마나 심한 고문을 당했는지 나는 몰랐었거든.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못생겼다고 말했던건데... 지금 다시 생각하니까 무척 후회가 돼. 그래서 옛날에는 못생겨 보였던 유관순 열사의 얼굴이 지금은 아주 당당하고,멋져 보아다고 썼어. 우리 국민 모두가 유관순 열사의 얼굴이 되어 나라를 지킨다면, 다시는 나라를 빼앗길 일도 없을거라고.”
아이는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1시간의 지극한 몰입을 통해 아이는 과거를 회상하고, 자각하고, 반성까지 했다. 그 시간이 아주 생생히 각인된 탓인지 이후 아이는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을 보고 우스개 소리를 절대 하지 않는다. 사진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보여지는 모습 너머를 생생히 볼 수 있게 된 건 순전히 1시간의 몰입 덕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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