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마귀가 가득 꼈네

내 작품인가, 당신의 머릿속인가?

by 왜가리



한 인형박물관에서 내가 찍은 인형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재작년에 단기로 올렸다가, 박물관이 새단장을 하면서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하여 다시 올리게 된 전시다. 지난번 전시때와는 전시장 위치가 바뀌면서 작품의 배치도 완전히 바꿔야 했는데, 사진 한점의 위치를 도저히 정하지 못해 고민이 되었다. 다른 작품들 사이에 배치해두면 유난히 관람의 흐름이 깨지는 느낌이 드는 사진이었다. 도미넌트라 이름 붙힌 이 사진은 다른 전시 사진들이 색채와 분위기에 중점을 둔 것에 반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어떤 코드들의 조합에 중점을 두었다. 성적이고 고전적인 코드를 품고 있지만, 그것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저 멋진 사진으로만 보이길 바랐던 사진이다. 그리고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시에 쓸 작품을 고를때에도 다른 작품들과 공통적인 코드를 공유하지는 못할지 언정,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던 사진이다. 이전 전시에서는 전시공간의 코너를 돌면 나타나는 복도 연결통로에 단독으로 전시했던 작품이라 작품에도 꼭 맞았지만, 새로운 전시장에서는 공간이 합쳐지면서 다른 작품들과 세계관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체 흐름에 맞춰 이 작품을 전시에서 아예 제외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박물관 직원 분께 의견을 여쭈었더니 그가 조금 머뭇거리다가 사실은.. 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IMG_2868-2.jpg Dominant - 2020, archival pigment print



박물관 특성상 어린이들이 많이 방문하다보니, 전시관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이었다. 어린아이를 동반한 한 관람객 부모는 이 사진 앞에서 아이의 눈을 가리기도 했단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노출 하나, 자극적인 묘사 하나 없는 이 사진의 어디가, 아이의 눈을 가릴 만큼 선정적인걸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애니메이션 피터팬의 후크선장보다 평화로운 복장이다. 모자엔 목숨을 위협하는 해골무늬도 없고 손에 든 무기는 칼이나 날카로운 후크도 아닌 고작 가죽이다. 이 사진이 선정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사진 속 사물의 본질과 용도보다 먼저, 성적 판타지를 떠올리는 사람이 아닌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 느끼는 욕망인지 아닌지도 모를 누군가의 욕망전시에 오래도록 노출되어, 심지어는 그것을 일종의 언어로 받아들이게 된 집단. 그야 말로 음란마귀가 가득 낀 어떤 사람들. 즉, 과거의 어떤 데이터를 가진 사람만이 선정적으로 느낄수 있는 사진이다. 나는 그것을 의도하고 촬영하였고, 그렇기때문에 그 공공연한 비밀(?)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만 보내는 코드 메세지, 은유적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더 야릇한 편지가 되길 바랐다. 아이의 눈을 가렸다는 그 부모는 메세지 해독까지는 성공했지만, 그것이 일부 집단만이 공유하는 클리셰적 상징이라는 것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가려야 할것은 아이의 눈이 아니라, 거기에 동요하고 마는 자신의 욕망이었는데 말이다.


반항적인 예술가가 되기에 많이 소박한 나는 이 사진을 이번 전시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내 사진 중 최초로 스캔들(?)을 일으킨 작품이 됐다는 것에 내심 즐거우면서도 뒷맛이 쓰다. 결국 내가 의도한대로 어떤이들은 조용히 자신 안의 욕망을 들여다 보았고, 어떤이들은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잊었다. 이 사진은 그저 거기에 존재함으로써, 그 앞에 선 사람의 대화 수준에 맞는 말을 나눈 것이다. 하지만 그 장소와 거기에 들르는 사람들이 내게 원한것은 누구의 심기도 거스르지 않는 아름다운 전시물이다. 주말 나들이에 불편한 대화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무명의 예술가에게는 하고 싶은 말보다 대화의 장이 절실한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들 한다. 아는 만큼만 보라고 찍은 사진인데 모르는 것까지 안다고 생각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모두가 자기만의 음란마귀를 품고 산다. 그놈이 어떤 놈인지를 알고 적절히 돌볼 줄은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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