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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Sep 20. 2022

새롭게 태어나기 위하여

10년 만의 유럽여행

결론은, 시작이 쉽지 않은 여행이었다.

우선 몇 번을 망설였다. 시간도, 돈도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과연 이 여행이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것인지 끝없이 되뇌었다. 코로나도 한몫했다. 일단 걸리면 열흘간은 발이 묶이기 때문에 돌아와야 할 날이 정해져 있는 나에게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여러 가지 고려를 한끝에 계획을 세웠다.

다행히 넉넉하게 모아놓은 항공 마일리지덕에 여러 가지 옵션을 세울 수가 있었다.

그렇게 코로나를 대비한 출국 비행기 표를 두 개를 끊고, 결국 떠났다.


마지막까지 망설였던 이유는 이미 익숙해진 지금의 순간에 내게 필요한 것은 반드시 여행일 필요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떠나지 못했던 나는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국내 여행도 가봤지만 뭔가 모를 끝없는 갈증이 나를 짓눌렀다.

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여유 있는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있을까 싶었다.

결국 나는 유럽행 티켓을 한번 취소하고 다시 예약을 하고 마지막까지 망설인 끝에 그렇게 떠났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참 많은 곳이 후보지로 올랐다.

한 달 살기를 하고픈 발리.

오래전부터 언젠가는 꼭 가보기로 한 북유럽.

아니면 그냥 편하게 제주도에서 그냥 있을 때까지 있어볼까.

하지만 결국은 파리행 티켓을 끊었다. 이유는 단지 비즈니스 표가 파리행으로 풀렸다는 이유만으로. 그때만 해도 파리를 가겠다는 뚜렷한 목표의식은

없었지. 허브에서 움직이기 좋은 한 곳을 그냥 찍었을 뿐이다.


혼돈의 카오스에서 미국에서 유럽으로 여행하던 그 시절이 벌써 10년이나 흘렀다.

그동안 온 에너지를 쏟아 열심히 살았다. 예전보단 많이 안정적인 삶이었고,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마음 한편에는 이루고픈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는 텅 빈 느낌이었다. 이 나이까지 결혼을 하지 않아서, 가정을 이루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렇게 나 다운 무언가를 찾기 위해 다시 유럽으로 떠났다.

예전 첫 유럽여행 때의 파리는 너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실망도 컸다. 그렇기에 사실 이번 여행에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파리 시내 관광지보다는 근교를 다녀보기로 했다.


이번 여행에는 이전에 가지 못했던 노르망디 투어를 계획했다. 역시 혼자 투어를 신청한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다들 연인, 가족이 함께 했다.

타이트한 스케줄에서 예약을 했기 때문에 투어라도 기본 입장권들은 예약을 했어야 하는데 예약을 하지 못하고 이동 중에 부랴부랴 예매를 했다.

중간에 안시와 샤모니 기차를 예약했는데, 샤모니 날씨가 안 좋아 기차표와 버스표를 모두 바꿔야 했다. 파리 숙박일정도 모두 바꿔야 했다. 모두 노르망디 투어 이동 중 해결했다.

성격상 이미 예약 확정된 것들을 변경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번 여행 중에는 여행 자체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에 조용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결국 계획을 바꾸느라 물거품이 되었다. 역시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 또한 경험이었다. 이젠 도가 터서 뭐 그러려니 했지만.

투어라도 이동하며 창밖으로 보는 풍경들을 너무나 좋아하는데 뭔가 그냥 지나간 느낌이라 아쉬운 게 흠이라면 흠일까.


그렇게 여행의 끝을 달릴 때 즈음, 뉴스를 보았다. 현지 신속항원이 풀렸단다. 그것도 귀국 예정일에.

이 무슨 운명 같은 일인가! 마치 신이 주신 시간 같았다.

결국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원래 귀국할 예정일 표를 취소하고 옵션으로 예매했던 열흘 뒤 표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열흘 정도 더 머물게 되었다.

3일은 파리에 조금 더, 6일은 예전 유럽여행 때 그렇게 가보고 싶었는데 가보지 못했던 스페인 안달루시아로 가기로 결심했다.


3일의 파리는, 너무나 새로운 파리다운 파리를 발견했고,

6일의 안달루시아는, 그야말로 여행다운 황홀함과 광활함을 느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혼자 다닐 겨를 없이 꽤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참으로 오랜만의 유럽을 돌아보았다. 오래전 느꼈던 마음을 고스란히 가져온 날들을 마주하니 나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세상은 참 많이 달라진 느낌이다.

예전의 아날로그 여행은, 팬데믹 이후 앱과 QR 코드로 모든 쉽게 빠르게 되는 세상으로 변했고,

고민 많던 서른의 나는, 또 다른 고민을 하는 마흔의 내 모습과 마주쳤다.


십 년 동안 무엇이 변했을까.

좀 더 여유로워졌지만 본연의 나 자신에게는 분명 변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때처럼 여전히 망설이고 갈등하던 것들을 이젠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겠다는 것.

다양한 삶을 들여다보며 이젠 정말 늦기 전에 뭐든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참으로 오랜만에 제대로 원하던 여행다운 여행을 실컷 했던 것 같다.

온전히 자신을 충만하게 하는 시간.

역시나 나는 한 곳에 머무를 수 없는, 어디론가는 떠나야 하는 사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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