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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Mar 07. 2023

수영을 다시 배울 결심

물 공포증 극복을 위하여

지난해 스페인의 여행 중 네르하를 갔다.

가이드분께서 렌터카로 유럽여행을 꽤나 오래 하신 배터랑이셨는데, 네르하를 가는 길에 하시는 말씀이 이곳에 가면 당장 수영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거란다.

그때가 9월 초쯤이었으니, 스페인의 날씨는 한여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 땀이 주룩주룩 나는 한여름 날씨여서 그럴만하겠거니 했는데, 정말 전망대에서 해변을 보는 순간 와! 하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스페인의 바다는 어딜 가도 정말 너무 아름다웠다.

예전 바르셀로나만 갔을 때도 그 바다색에 흠뻑 취해 한참을 멍하니 바라만 보다 온 적이 있는데, 휴양지로 유명한 네르하는 정말 듣던 대로 감탄을 자아냈다. 그냥 저 사람들 속을 비집고 달려가 바닷속에 풍덩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난 아쉽게도 수영을 못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물을 무서워하는 심각한 물 공포증이 있다.

이유인즉 핑계라면 핑계지만 여러 가지가 있는데, 초등학교 때 수영을 배우면서 발이 닿지 않는 곳에 내 몸에 떠있는 공포를 여러 번 느꼈다. 지금도 키가 작지만 그때도 큰 편은 아니라서 깊은 곳에 가면 그야말로 온몸을 떨었을 정도다. 더군다나 어릴 때 심한 소아천식을 알아서 지금도 남들보다 폐활량이 조금 딸리는 편이다. 심지어는 성인이 되어서 중이염까지 걸렸다. 귀에 물이 들어가면 극도로 예민해진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동안 내 몸이 물에 들어간다는 건 피로를 풀 수 있는 온천탕이나 스파를 제외하면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고, 특히 얼굴을 물에 담그는 건 극도로 기피했다. 그러던 내가, 갑자기 수영을 배우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최근 다녀온 여행지에서, 그중에서도 작년에 다녀온 네르하와 얼마 전에 다녀온 부산 여행 이후이다.


누군가는 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수영하러도 여행을 가는데, 그렇게 자유롭게 여행지에서 즐길 수 있는 그들이 나는 너무나 부럽기도 했다. 네르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눈앞의 아름다운 바다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내 몸을 바다에 맡기고 뛰어들면서 느끼는 행복감을, 그 자유를 이제는 나도 만끽하고 싶었다. 물론 그전에도 여러 여행지에서 수영장이든 바다든 너무나 아름다운 곳을 많이 갔지만, 겉만 훑다 오기에는 여행다운 여행을 했나 라는 생각이 이곳에서 문득 들었다.


부산에서는 호텔에서 마침 숙박 당일 프로모션으로 루프탑 인피니티 풀을 예약하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하여 이용해 보았다. 물론 온수풀에 몸을 담그는 것도 좋았지만, 벽을 붙잡고만 있다 발장구만 치고 오다 보니 다음날부터 양쪽 어깨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정말 이제는 도저히 미룰 수 없어 결국 그다음 날 동네 수영장을 덜컥 등록해 버렸다.


생각보다 수영 강습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아침 6시부터 대기표를 받아야 했고 (인터넷 접수가 전혀 안 되는 아날로그 방식), 10시 30분에 와서 다시 기다렸다 원하는 시간대에 등록을 해야 했다. 오픈런을 뛰었지만 내 대기표는 38번. 더욱 놀랄만한 건 이미 10번이 넘기 전에 새벽 6시 직장인 수영은 이미 마감이 되었다. 그때 또 한 번 느꼈다. 사람들 참 열심히 부지런히 사는구나!


그렇게 오늘 나는 처음으로 수영을 시작했다.

낯선 수영장의 모습. 얼굴부터 물에 들이미는데, 정말 오늘 마신 물은 얼마나 됐을까 싶다. 아직도 코와 목은 물을 한껏 머금은 느낌이 채 가시지 않는다.

누구나 처음 수영을 배우는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 물에 내 몸을 맡기려면 온몸의 힘을 풀어야 했다. 나 역시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니 물에 뜨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마 오랜 업무의 긴장과 컴퓨터 앞에서 굳어진 나의 나쁜 자세 때문인지 안 좋은 습관들은 오늘도 여실히 드러났다. 그렇게 수영을 배우면서 깨달은 것은 내가 그동안 얼마나 긴장하며 경직된 채 살았는지, 얼마나 아등바등 거리며 살았는지였다. 무얼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았을까? 때로는 그냥 흐르는 대로 맡기면 될 것을. 힘을 뺄 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오늘 또 한 번 경험했다.


그렇게 나의 여행은 내 삶의 일부분을 또 한 번 바꾸어 놓았다.

여행을 통해, 삶의 에너지를 얻게 해 준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해보지 않은 것을 도전할 수 있는 용기.

두려움을 이기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

모든 것의 무게를 덜어낼 용기까지도.


전망대에서 본 네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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