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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만춘 Jan 28. 2024

자정 무렵 미끄럼틀 아래에서

자정 무렵 미끄럼틀 아래에 웅크리고 앉아 소리 죽여 울었다. 한참 울고 나니 속이 좀 편안했다. 울고 싶을 땐 울어야 한다. 울지 못하고 꾹꾹 참다 보니 숨 쉴 때마다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다. 집엔 시부모님, 남편, 무엇보다 아이가 있어 울지 못했다. 밖에 나와서 울면 동네 사람들이 알아볼까 걱정이었다. 내가 마음 놓아 울 공간이 없었다. 모두 잠든 자정 무렵 컴컴한 놀이터 미끄럼틀 아래에서 무릎에 얼굴을 묻었을 때 비로소 울 수 있었다. 


아이가 아프니 엄마인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내가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닐까, 내가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5개월짜리 아이를 두고 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10시가 돼서야 집에 돌아오던 때였다. 나를 대신해서 아이를 봐주시는 시부모님께 감사한 마음과 죄송한 마음을 늘 갖고 살았다. 근무 중간 시간이 날 때마다 유축을 하며 워킹맘이지만 모유 수유를 최대한 오래 해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막상 아이가 아프니 내가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나를 비난하지 않았지만, 나 스스로 나에게 책임을 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이가 아프다고 엄마가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할 필요 없다. 냉정하게 말해서, 아이는 아플 만해서 아픈 것이고, 그것을 막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를 대신해서 아이를 돌봐준 시부모님의 노력을 간과하는 것이다. 자신을 질책하며 괴로워할 시간에 어떻게 하면 아이가 빨리 나을 수 있을지, 그것을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면 좋을지 차분하게 생각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이미 지나 버린 시간에 대해 이랬어야 했나, 저랬어야 했나 돌이켜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리고 아기들, 분유 먹으면서도 건강하게 잘 큰다. 직장 다니면서도 최대한 오랫동안 모유 먹이고 싶은 마음은 엄마 욕심이자 자기만족일 수 있다. 모유 팩 냉동실에서 꺼내서 해동해서 우유병에 담아 먹이느니 얼른 분유 타서 먹이는 게 아기나 엄마나 편안한 방법이다. 엄마가 편안해야 아기도 편안하다. 꼭 모유를 먹여야 한다는 것도 한때 유행했던 신화에 가깝다. 


오래 기다린 아기였던 만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컸던 데 반해 육아휴직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야간자습 감독을 마치고 밤 10시가 돼서 집에 도착하면 아기가 돌고래 소리를 내며 나를 반겼다. 엄마로서 어린 아기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이 컸고, 아이가 아프면 그 마음이 죄책감으로 변했다. 아기가 응급실에 있는 상태에서 보충수업을 하고 나면, '내가 도대체 뭘 위해 이렇게 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고군분투하면서도 죄책감을 갖고 살았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아. 네 탓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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