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파리일기
9개월만의 일기다. 작년 12월에 마지막 일기를 쓸 때는 코로나 같은 건 생각하지 못 했겠지. 2월에 코로나 19라는 바이러스가 퍼졌다는 소식을 가족을 통해 들었을 때만 해도 그 때로부터 한 달 뒤에 피난민처럼 파리를 떠나 집으로 도망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고,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는 참으로 심난했었다. 파리에 다시 오게 될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4개월만에 다시 파리에 돌아왔다. 그리고 2020년은 4개월 남았네. 이거 어떻게 손해배상청구 못 하나.
내 삶은 파리를 떠나기 전보다 많이 단조로워졌다. 무엇보다 졸업을 했고, 일을 하고 있으니 그렇다. 단조롭다는 건 육체적으로 같은 일을 매일 반복한다는 일임과 동시에 정신적으로는 매우 피로해진다는 말이다. 사람이란 원래 환경이 계속해서 바뀌면 생존본능이 발동돼 적응하는 데 온 에너지를 쏟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별로 생각할 틈은 없다. 그런데 지금 내 삶은 월요일이든 목요일이든 별로 다를 게 없고 (그래서 주말은 달라야 해), 주로 책상 앞에 앉아있느라 손가락은 쉴 새 없이 움직이지만 머리는 생존보다는 덜 집약적인 일에 몰두하는 탓에 잉여 에너지가 쌓인다. 이걸 해소해보겠다고 주말에 새로운 곳도 가보고 전시회도 다니고 하더라도 어차피 그것도 일상과 비교해서 약간 더 새로운 환경일 뿐 생존본능이 발동되는 극도의 낯섦은 아니기에 잉여 에너지는 다 해소되지 못한 채 다시 월요일을 맞는다. 이걸 나열하려니 조금 우울해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지금 내 삶은 아주 만족스러우니까.
암튼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요즘 또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다는 거다. 나는 머리가 터질 것 같을 때 글을 쓴다. 그러니까 내 메모장과 일기장은 내 항아리다. 나는 원래 말을 많이 하고 같은 말도 다르게 여러 번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걸로도 부족할 땐 메모장을 켠다. 그렇게 단기간에 질주를 하고 나면 좀 나아지는 경험을 한 뒤로 이건 내 일종의 습관이 됐다.
요즘 봤던 영화, 요즘 만났던 사람, 만나는 사람, 봤던 글들, 그리고 내 자신을 보니 문득 드는 인간도 끓는 점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극도의 행복을 끓는 점에 비유한다면 인간의 삶은 끊임없이 더 나은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 될 거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끓는 점은 그런 게 아니고, 인생의 어느 한 순간에 - 아마도 스무 살 전 - 각자의 끓는 점이 정해지고 완전한 무의 상태인 0부터 그 끓는 점 사이 어드메에서 왔다갔다 하는 게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물은 100도에서 끓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기름 같은 인간은 그보다 더 높은 온도까지 치고 올라가는가 하면 태어나기를 드라이아이스처럼 태어난 인간은 마이너스에서도 끓는다. 과학적인 근거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과는 나가주세요..
아무튼간에 어떤 영화나 글들 하물며 어떤 티비 프로그램들을 보면 아 묻고 따지지도 않고 일단 행복이 최고여, 하는 작위적인 내용들이 있던데 난 언제나 그게 불편했다. 그리고 그게 불편하면 헉, 너 좀 우울하고 어두운 편이니? 하고 놀라버리는 분위기도 불편하다. 각자 끓는 점은 다른 건데 100도에서 끓지 못한다고 기름에게 물처럼 흐르기를 바라는 꼴이다.
그런데 이 끓는 점이라는 게 내가 모르는 사이에 결정된다. 아,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혹은 나는 이런 사람인 것 같아, 라는 자기 깨달음 또는 그런 유사한 형태의 발견을 하는 시기가 한 스무살 전후라고 한다면, 내 끓는 점은 아마 그 쯤에 결정된 것 같았다. 그리고 100도에 이르는 물의 끓는 점을 120도로 올리면 그건 더 이상 물이 아니고 기름의 끓는 점을 100도로 낮춘다고 해서 기름이 물이 되는 게 아닌 것처럼 (반박하려는 이과는 나가주십시오..) 그건 내가 어떻게 해서 바뀌는 건 아니었다. 내 삶의 궤적,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내가 만났던 일들과 소화하고 뱉었던 말들, 그 모든 것이 집합해 내 끓는 점을 형성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은 내 끓는 점과 비슷한 온도에서 뜨거워지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 그리고 나를 덥지도 춥지도 않게 하는 상황에 나를 놓는 일이었다. 그리고 조금 배타적으로 이야기하면 나보다 30도 이상 뜨거운 사람 혹은 30도 차가운 사람과는 미안하지만 거리를 두며 내 온도를 유지해나가는 과정이었다.
친구랑 통화를 하면서 내가 몇 개월 전에 내렸던 결정을 약간 후회한다고 얘기했더니 친구는 그 때 너 결정을 믿으라는 말을 해줬다. 맞는 얘기다. 사실 별로 크게 후회하지 않지만 그렇더라도 난 굳이 그걸 말해서 나랑 비슷하게 끓는 친구가 그렇다고 말해주길 바랐다. 입을 떠나고 나니 마음에 남지 않았다.
점심시간 끝났다..
ps . 사진은 바나나케이크. 보기보다 맛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