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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07. 2022
그 많던 털실 가게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사라진 위로에 대하여
어려서부터 손을 움직이는 게 좋았다.
종이만 보이면 낙서를 하고, 바느질을 하고, 빵을 배우고, 뜨개질을 했다.
하지만, 재능은 없었다.
낙서는 예술이 되지 못했고,
바느질은 단추 꿰매기가 최선이고,
빵은 그저 먹어줄 수준이었고,
뜨개질은 목도리와 모자로 만족했다.
손끝이 야물지 못하고,
오랜 시간 정성 들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인내심이 부족했다.
뭐든 빠르게 해치우려는 성격이 문제였다.
어떤 일들은, 시간이 필요하다.
천천히 하나하나 진심을 다하는 시간이.
2년 전, 잊었던 뜨개질을 다시 시작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손뜨개 인형을 만들어 달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나중에 뜨는 법을 배우면 만들어 주겠다던 엄마의 말을 잊지 않았다. 엄마는 뭐든 할 수 있는 아이언맨이라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드디어 인형을 만들어 줄 때가 왔다.
어린 시절, 동네 시장길에는 여러 개의 털실 가게가 있었다. 작은 가게 벽면을 가득 채운 색색의 털실들과 테이블 주변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묵묵히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가끔은 누군가 우스운 얘기를 했는지, 모두들 소리 나게 웃기도 했다. 추운 겨울이면 낡은 난로 위 주전자에서는 흰 연기가 피어나고, 마치 수행을 하듯 털실을 다루는 나이 든 여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들이 뜨는 목도리와 스웨터는 자신의 것이기보다는 자식이나 소중한 누군가를 위한 것이었겠지. 어린 나에게도 왠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풍경이었다.
나도 저곳에 들어가, 그녀들 사이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싶었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스무 살이 지나 그곳에서 털실을 사고, 주인아주머니에게 목도리 뜨는 법을 배웠다. 지금은 달라졌겠지만, 그 시절엔 실을 사면 강습은 무료로 해주셨다. 뜨개질의 기초인 대바늘로 안뜨개와 겉뜨개를 반복해 붉은 목도리를 만들었다. 그 빨간 목도리를 두르면, 겨울이 한결 포근해지는 기분이었다.
실과 바늘이 엮이며, 반복된 동작을 하는 시간은, 지금 생각해보니 명상과 비슷한 순간이었다.
잡념을 지운, 몰입의 시간이었다.
인형을 만들기 위해 일단 코바늘을 배워야 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모든 재료가 포함된 인형 패키지를 구매했다. 이제는 일일이 털실 가게를 찾아가 배워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아이들에게 배울 곳이 없다는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처음에 설명서를 보고, 깊은 좌절을 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기호들로 가득한 종이는, 저 먼 행성에서 날아온 외계문자보다 낯설었다.
서점으로 달려가 기초 코바늘 책을 샀다. 가장 초급기술부터 연습했다. 동영상을 찾아 뜨고 풀기를 반복했다.
'아, 내가 이걸 왜 했을까.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내 솜씨가 나아질 리 없잖아.'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발레리나와 빨간모자 소녀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기대에 찬 시선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인형을 산 쇼핑몰에 문의글도 남기고, 카페에서 이미 완성한 분들의 후기도 찾아보았다. 어려운 부분은 어물쩡 넘어가기도 하면서, 마침내 내 생애 첫 인형 2개를 완성했다.
힘겨운 사투 끝에 인형을 완성한 날, 기뻐하던 아이들 얼굴이 떠오른다.
나 스스로도 내가 대견스러웠다.
이 정도면 나도 망손에서 벗어난 게 아닐까!
그 후에도, 여러 가지 뜨개를 이어갔다.
크리스마스에는 크리스마스 인형을, 부자재를 보관할 고양이 아줌마를, 나무가 좋아 선인장을, 여름에 가볍게 들 가방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 인형을, 설거지가 즐거운 오징어 수세미를, 최근엔 아이들 겨울 담요 2개와 핸드폰 케이스를 완성했다.
2007년 하버드 의대의 연구에 따르면 뜨개질은 요가만큼 혈압을 낮추고 세로토닌 분비를 통해 만성통증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2018년 '평화를 위한 뜨개질'이라는 영국의 한 자선단체는 수공예의 건강 증진 효과에 관한 연구를 했는데, 공예 작업은 단체 회원들이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 데 다방면에서 이로웠고, 흡연자들의 금연에 도움을 주었으며, 노년층의 외로움과 고립감을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