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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Jan 16. 2022

나의 가난한 딸기 이야기


요즘 마트에 가면 딸기가 가득 쌓인 모습을 자주 본다. 빨갛게 탐스러운 딸기를 보는 내 얼굴엔 어느새 미소가 어린다. 겨울을 알리는 과일이기도 하고, 딸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떠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딸기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어린 시절, 딸기는 귀한 과일이었다.

아니 잘 모르겠다. 가난한 우리 집에서만 귀한 과일이었을지도.

그땐 겨울이면 길거리 리어카에서 귤을 가득 담아 팔았었다.

가끔 일하고 밤늦게 돌아오는 엄마 손에 비닐에 담긴 귤이 들려 있었다.

살얼음이 박힌 귤을 까먹으면 머릿속까지 쨍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리고 내가 받을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생 때, 같은 반 친구네 집에 간 적이 있다.

작은 방 한 칸에 살던 나와는 달리, 친구네 집은 마당이 있는 주택이었다.

매일 일을 나가던 우리 엄마와는 달리, 집에서 딸을 기다리던 친구 엄마가 반겨주셨다.

개념도 생소했던 거실 소파에 앉았다. 친구 엄마가 과일을 내주셨다.

우유와 딸기가 담긴 예쁜 그릇이 내 앞에 놓였다.

먹기에도 아까울 만큼 예뻤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딸기를 먹었다.

설탕을 뿌린 달콤한 우유에 섞여든 새콤한 딸기의 맛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건 단순한 맛이 아니었다.

하나의 풍경이었고, 동경이었고, 이야기였다.


햇살이 비추는 거실 소파, 따뜻하게 대해 주시는 낯선 어른과 빨간 딸기.

하지만 그곳에는 어울리지 않았던 어린 나의 부끄러움과 두려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딸기는 우유에 타서 먹는 과일이라고 생각했다.

파인애플과 바나나는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과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아쉽게도 지금의 나는 과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체질적인 건지, 어려서 먹어볼 기회가 많지 않아 좋아하지 않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과일을 사는 건 좋아한다.

아이들이 태어난 후, 과일을 먹이지 않은 날이 거의 없다.

제철과일은 물론 냉동 과일까지 과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장바구니에 담는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은 과일을 밥만큼이나 익숙하게 생각한다.

아니 밥은 안 먹어도 과일은 빼놓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 분양받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우리 가족의 첫 집이었다.

그 집을 위해 엄마는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고, 나에게 우유에 담긴 딸기는 그만큼이나 더 먼 이야기가 되었다. 집이 생겼다고 해서, 거실과 소파가 생겼다고 해서, 그날의 풍경이 내 것이 될 수는 없었다.


나는 잊었지만, 그때 내가 했던 말을 엄마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이사 간 집 냉장고를 열며 내가 말했다고 한다.


"엄마, 우리 집 냉장고에도 과일이 가득 있었으면 좋겠어."


엄마는 가끔 그때, 내 말을 흘려듣고 과일을 사지 않은 게 후회된다고 말한다.

갚아야 할 대출과 살아가야 할 날들이 많았기에, 과일을 살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나 역시 그랬다.

누구에게도 부담이 되지 않게, 어서 어른이 되고, 어서 내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했다.

딸기 따위가 중요하다고 투정을 부릴 시간은 없었다.





요즘 딸기값이 만만치 않다.

과일을 워낙 좋아하는 아이들이라 500그램 한 통이면 그 자리에서 바닥을 보인다. 그러니 조금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어제 저녁, 새로 오픈한 동네 마트에 들렀다. 오픈 기념으로 딸기 1+1 행사를 하고 있었다.

서둘러 몇 개 남지 않은 딸기 두 박스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괜히 아쉬움이 남았다.


'더 살 걸 그랬나, 아니야, 딸기는 금방 뭉그러지니까.'


집에 돌아와 딸기를 씻어 저녁 먹고 간식을 찾는 아이들에게 주었다.

잠깐 일 보고 돌아오니 어느새 빈 접시다.

냉장고에 딸기 한 상자가 아직 남아 있다는 생각이 났다.





지금 냉장고에는 과일이 가득 들어 있다.

사과와 배, 홍시와 체리, 키위와 딸기, 포도까지.

세월이 흘러, 나는 내 냉장고에 가득 과일을 채워 넣을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가난하지 않고, 더 이상 딸기와 우유를 동경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어린 날의 나는 아직도 그 집 거실에 앉아 어색하게 웃고 있다.

처음 보는 그 딸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그 아이.

가난이 부끄러웠던 그 아이.

냉장고에 과일이 가득하길 바라던 그 아이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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