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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Mar 20. 2022

인터스텔라, 우주에서도 너희를 지킬게


<인터스텔라>는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2014년 개봉작인데, 당시 나는 갓 3살이 된 아이들을 키우느라 3시간 가까이 되는 영화를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물리적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기억 속에 잊혀졌다.


최근에 영화가 다시 떠올랐다. 그렇게 2022년, 아이들이 11살이 되고서야, 느긋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솔직히 그리 느긋하지는 않았다. 영화 중간쯤 계속 떠들고 노는 아이들을 재우러 가야 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재우러 가는 내 발은 가벼웠다. 아이들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좋았다.


영화를 보고  나니, 지금에서야 이 영화를 본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는 타이밍이 있고, 내게 요즘(코로나와 탈출구가 없는 육아의 압박 속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막연히 포스터만으로 <인터스텔라>가 우주와 과학에 관한 이야기일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외계인이 나올까 기대하기도 했다. 물론 이 영화는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 <마스>가 화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실상은 한 인간의 생존에 관한 외로운 투쟁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비슷한 구조를 보여준다. <인터스텔라> 역시 지구 멸망을 앞두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우주여행과 블랙홀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영화를 본 후 내가 느낀 점은 명확했다.

"이 영화는 부모를 위한 영화이다."

가까운 미래, 우주선 조종사 쿠퍼는 아내를 잃고 아들과 딸을 키우며 농장일을 하고 있다. 원인 모를 모래바람으로(아마도 기후변화 때문일 것이다) 지구의 농작물은 멸종되어 가고, 인류는 식량난에 허덕인다. 나사는 인류를 다른 행성으로 이주시킬 계획을 세우고,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날 조종사로 쿠퍼를 선택한다. 딸 머피는 아빠에게 제발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지만, 쿠퍼는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각오한 여행을 떠난다. 쿠퍼에겐 임무를 수행하는 게 결국 자신의 아이들, 크게는 인류를 살리는 길이었다. 우주선은 앞서 탐사를 떠난 행성의 탐험가들을 찾아 긴 여행을 떠난다....


아버지 쿠퍼가 우주에서 온갖 역경을 겪는 사이, 10살이던 딸 머피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혼자 어른이 되어간다. 아버지 대신 과학자인 브랜드 박사와 함께 우주선이 돌아오리라 믿으며 중력의 비밀을 풀기 위해 자신도 과학자가 되어 인생을 바친다. 하지만 믿었던 아버지의 귀환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걸 알게 되고 절망한다. 그 사이 지구는 손쓸 수 없을 만큼 황폐해져 간다.

한편 쿠퍼가 도착한 행성에도 인류가 살아갈 희망은 없다. 쿠퍼는 지구와 우주의 시간 차로 자신과는 달리 나이를 먹어 가는 아이들이 보내오는 영상을 보며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 우주선에 타는 대신 아이들 곁에서 아이들이 커가는 걸 지켜보지 못한 걸 후회한다. 아이들은 어느새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아 키우는 데, 자신은 고작 딸과 같은 나이에 머물러 있었다. 아이들이 힘든 순간, 아버지로서 옆에 있어주지 못한 것을 가슴 아파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 쿠퍼와 머피는 마침내 재회한다. 지구에서 산 머피는 80이 넘은 할머니가 되었지만, 우주에서 산 아버지는 딸보다 젊다. 딸은 평생을 아빠를 그리워했고, 아빠는 딸을 위해 우주로 떠났었다. 아빠는 딸의 성장을 지켜볼 수 없었지만, 블랙홀에 갇혀서도 머피를 돕는다. 머피는 결국 아빠의 도움으로 문제를 풀고, 인류는 재앙에서 살아남는다.

영화는 해답을 찾지 못한 인류가 결국 자신의 손으로 답을 찾을 것이라 말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적 희생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대의를 위한 개인의 희생은 과연 옳은 것일까,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는 문제다.

인류 구원이라는 엄청난 대의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의 삶에 끼어들 일은 없을 것이다. 소심한 나는 그저 아이들 곁에 머물며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아이의 기쁨과 슬픔을 같이 나누는 삶을 살고 싶을 뿐이다.


여담이지만 영화가 끝나고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주인공이 후회하는 거 봤지? 당신도 아이들이랑 더 많이 시간을 보내. 아이들이 엄마 아빠 찾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 곧 아이들은 친구와 다른 세상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독립을 위해 우리 곁을 떠나갈 것이다. 하지만 삶의 어려운 고비에서 언제든 우리를 찾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비록 인류를 구원할 수는 없겠지만, 내 딸들만은 지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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