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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Jul 29. 2022

두 발을 디디면

인생의 사막을 건너려면, 두 발로 걷는 수밖에 없다


머리 위 태양이 뜨겁다. 시원한 에어컨을 뒤로하고, 한낮의 거리를 걷고 있으면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나에게도 낯설고 생경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내 손에 총이 있다면, 나도 누군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게 될까.



오랫동안 준비했던 일이 어그러져 가고 있다. 그 이유가 나를 괴롭힌다. 과거로부터 다가온 유령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물론 현재라는 괴물만만치는 않다. 그런데 무슨 오기인지 포기라는 단어를 입밖에 내지 않는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이 인정을 하지 않는다. 이건 자존심도 뭣도 아닌, 그저 쓸데없는 고집일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가끔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으로는 어쩌지 못할 일들이 있다. 반대로 가슴은 인정하는데 머리로는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살면서 다양한 일들을 겪었고, 희비를 나누자면, 기쁜 일보다는 슬픈 일이 조금 더 많았던 것도 같다. 나름 고통에 대처하는 법을 어느 정도 깨달았다고 생각했는데, 오만이었다.


도대체 내가 알고 있는 게 무엇이었던 건지.

헛웃음이 나온다.





종일 걷고 푹 쓰러져 잠이 든다.

잠이라들지 못했다면, 아마 여러 번 쓰러졌을 것이다. 잠든 시간이 나를 치유한다.

잠들기 위해 걷고, 걸음으로써 잠이 든다.


한때는 아침이 오는 걸 반겼고, 하루를 보내는 일이 행복했다. 주말을 기다리고,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의 끝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자연스러운 여유 따위를 즐겼다.

한때는.


요즘은 밤이 오는 걸 반긴다. 어서 누워 잠이 들고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겠고, 계획이라는 게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본다.

요즘은 그렇다.


삶이란 돌고도는 것이다. 전에 내가 옳다 믿었단 것들이, 지금은 틀리다는 걸 깨닫는다. 겪어봐야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결국 자신이 겪은 만큼만 알 수 있다. 그래서 겸손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 믿음을 깨는 게 쉽지 않다. 나 자신을 부정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오기를 부릴 수는 없다.


결국 부정을 통한 새로운 긍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끊임없이 고통받을 것을 알면서도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처럼, 나 역시 오늘의 부정이 내일의 긍정이 되고, 결국 그 긍정마저 부정당하는 일을 반복하게 될지라도, 끝내 내 몫의 바위를 끌어올려야 한다. 무의미에서 의미를 찾기보단 그저 받아들이기로 한다.




지금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걷기와 잠들기이다. 만약 누구든 견디기 힘든 상황에 놓였다면, 끝없이 추락하려는 몸을 억지로라도 이끌고 길을 나서라고 말하고 싶다.

두 발을 땅에 디딤으로써,

나라는 존재, 가장 사랑해야 하지만 가장 버려두었던 그 존재를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맥을 놓 인간의 나약함도 깨달을 수 있다.



아직 무엇이 달라질 것인지, 나조차 장담할 수 없지만, 나는 머리나 손가락이 아닌, 두 발로 그것을 증명해보려 한다. 이유 같은 건 없다. 그저 이 시간을 통과하는 하나의 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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