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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연 May 24. 2019

새벽 배송의 민낯

새벽 배송에 얽힌 오해와 진실.



스타트업이 이끌어 온 새벽 시장에 대기업이 뛰어들며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최근 쿠팡, 롯데, 신세계, GS 등 기존의 대형 유통사들이 앞다퉈 새벽 배송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선택지가 다양해지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언제나 반색할 일이지만, 그들이 과연 마켓컬리나 헬로네이처처럼 세심한 서비스를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지나치게 과열된 경쟁이 가격 경쟁으로 번져 제품의 질과 격을 동시에 낮추는 결과를 낳지는 않을는지, 쓰레기가 쌓이고 인력들의 근무 환경은 더 나빠지지는 않을는지…. 새벽 배송을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소비자로서 기대보다 우려가 앞서는 시점이다.


헬로네이처가 길을 열고 마켓컬리가 물을 댄 새벽 배송 시장에 대기업이 유입되며 범람할 지경에 이르렀다. 통계청에 따르면 온라인 식품 거래액은 작년 대비 28.2% 증가했다고. 그중 농·축·수산물 거래액은 2010년 대비 3배 이상 늘었다. 전문가들은 그 동력을 새벽 배송에서 찾는다. 새벽 배송 서비스가 등장하며 온라인을 통한 식품 구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해석이다. 그 여파로 오프라인을 통해 식품을 구매하는 활동은 상대적으로 위축됐다. 편의점에 이어 온라인 쇼핑몰에 고객을 뺏긴 대형 마트는 자구책으로 자사의 온라인 쇼핑몰에 새벽 배송 기능을 추가했다. 마켓컬리와 헬로네이처의 약진에 대기업이 유입되며 올해 새벽 배송 시장은 1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그런데 이때 마켓컬리와 헬로네이처가 구축한 새벽 배송은 단순히 주문한 물건이 새벽에 배송되는 물리적 기능만 의미하지 않는다. 엄정한 심사를 통해 선별한 식재료를 생산자의 손에서 건네받아 바로 배송함으로써 가장 신선하고 맛있을 때 소비자의 품에 안기는 기능이 큰 의미를 지닌다. 많은 소비자들이 웃돈을 내며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유다. 한편, 기존의 대형 유통사들은 이렇듯 세심한 서비스를 과연 잘 해낼지, 그럴 의지는 있는지 의구심이 고개를 든다.


기존의 인터넷 장보기도 여러모로 이점이 많았다. 일상에서 장보는 시간과 수고를 덜어주며, 당일 혹은 익일에 물건을 받아볼 수 있었다. 주로 대형 마트가 운영하니 생활의 다방면에 필요한 물품을 고루 고를 수 있으며, 또 할인된 가격에 구입이 가능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많았다. 배송 시간을 지정할 수 있지만, 시간대가 3시간 단위로 나뉘어 있어 정확한 배송 시간을 예측하기 힘들다. 주문한 물품 중 신선식품이나 냉동식품이 있으면 외출이나 귀가를 앞두고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재촉한 귀갓길에 얇은 비닐에 씌워진 채 지저분한 복도 바닥에 철퍼덕 놓인 물건 꾸러미를 보면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공산품이나 가공식품은 괜찮아도 과일이나 채소 등의 신선식품은 확실히 직접 고른 것보다 품질이 떨어졌다. 무르고 뭉개지고 짓이겨졌으며, 때로는 푸른곰팡이가 만개한 채 오기도 했다. 초반에는 검수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의문을 품으며 열을 올렸으나 비슷한 경험이 반복되며 편리한 방법을 택한 대가로 주어진 일종의 형벌이라는 생각과 함께 체념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새벽 배송업체들은 같은 유통사여도 태도가 영 달랐다. 전날 밤 주문하면 잠자는 사이 도착하니 발을 동동 구르거나 씩씩거릴 일이 없다. 또 밤사이 복도에 방치되는 일을 감안해 식품을 냉동, 냉장, 실온 등 보관 방법에 따라 구분하여 꼼꼼히 포장하니 녹거나 상할 걱정 없이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다. 늘어지게 늦잠을 자도 괜찮을 정도다. 무엇보다도 신선식품의 선도와 질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직접 장에 가서 고른 마냥 신선하며, 때로는 동네 시장이나 마트에서 기대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품질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 물건을 고르며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 오히려 내일 아침 손에 쥐어질 신선함에 기대감이 부푼 채 잠든다. 물론 대형 유통사만큼 물건이 다채롭지 않으며 가격이 높은 편이지만, 싼값에 여러 개 사서 개중 일부를 버리느니 차라리 우수한 품질의 자재를 사서 알뜰하게 소비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선식품을 새벽에 배송하는 이 서비스는 특히 어린 자녀를 둔 집에서 큰 호응을 얻는다. 아이에게 건강한 음식을 먹이고 싶은 부모들은 유기농, 무농약, 비유전자조작, 무항생제 등 까다로운 조건에 부합한 식재료를 선호한다. 초록마을, 올가, 한살림, 생협 등이 이렇듯 엄선한 식재료를 판매하지만, 배송이 느리거나 가정간편식 혹은 당장 조리할 수 있도록 개발한 제품 등을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 마켓컬리, 헬로네이처 등은 다진 유기농 채소를 비롯하여 건강과 편리성을 겸비한 제품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 두 업체는 실제로 유아동을 위한 제품을 따로 분리하여 카테고리화했다. 그중 헬로네이처가 2017년 선보인 자체 브랜드 ‘베이비키친’은 지난 3년간 평균 450%에 달하는 매출 상승을 기록하고 있다.

 

마켓컬리 광고

아마존이 실패한 신선식품의 배송이 국내에서, 그것도 새벽 시간대에 성공하자 사람들은 의아해하는 눈치다. “새벽 배송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전부터 우리는 사실 이미 새벽 배송에 익숙했습니다. 우유나 신문 등을 새벽에 받아본 경험이 있기에 새벽 배송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겁니다. 기존의 새벽 배송이 특정 상품을 정기 구매해야 했다면, 오늘날의 새벽 배송은 모바일로 다양한 상품을 소량 구매할 수 있는 등 고객의 구매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였습니다.” 헬로네이처 경영기획팀 여상엽 팀장이 국내에서 새벽 배송이 성공적으로 안착한 심리적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새벽 배송은 시장이 커지며 배송기사의 근무 환경 등 사회적 걱정거리를 낳기도 했다. 특히 업계 1위이자 최근 전지현을 내세운 TV 광고를 방영하며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는 마켓컬리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눈치다. 마켓컬리는 ‘사람을 갈아 만드는 서비스’라는 비난에 난색을 표한다. “자사의 배송기사님들은 대부분 농수산물 배송, 학교 급식용 식자재 납품 등을 위해 기존에도 새벽에 근무하셨던 분들입니다. 이분들을 자사의 플랫폼으로 모셔오며 더 나은 업무 환경과 처우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켓컬리 관계자의 설명이다. 마켓컬리는 노력의 일환으로 건당 수수료 지급 방식 대신 월 고정 운송비를 채택하여 보다 더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한다.

 

마켓컬리는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는 동시에 제품군을 식재료에서 화장품, 주방용품, 생활가전, 인테리어 소품 등 다방면의 생활용품으로 서서히 확대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반려동물 카테고리를 개설하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마켓컬리가 판매하는 제품의 수가 대폭 늘며 특유의 매력을 잃었다는 지적도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저희가 제품군을 확장하는 데는 두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고객분들이 원스톱 쇼핑에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제품군, 저희가 선별을 통해 제안했을 때 고객 가치가 큰 제품군입니다. 최근 다양한 부류의 제품을 입점하다 보니 제품을 엄정히 선별한다는 저희의 핵심 가치가 다소 흐려진 게 아니냐는 오해를 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하지만 이는 저희가 품목을 종류나 가치에 따라 더 세분화했을 뿐이지, 같은 품목당 최상의 제품을 2~3개씩 엄선하여 제안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마켓컬리 관계자의 설명이다. 제품군을 성격상 더 세분화했을 뿐이지, 같은 영역에 속한 제품의 수는 동일하다는 이야기다.


마켓컬리의 '에코박스 V.2'

마켓컬리가 상품군을 세분화, 다양화하는 등 수평적 확장을 꾀하는 일은 최근 시장에 진출한 대기업에 대응하기 위한 시도처럼 여겨진다. 마켓컬리 관계자는 이러한 해석에 경쟁 환경을 의식하기보다 고객 만족도를 우선시한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마켓컬리가 더 다양한 부류의 제품을 판매하며 확실히 장보기가 더 수월해진 게 사실이다. 전에는 식재료를 마켓컬리에서 구매하더라도 휴지, 세제 등은 기존의 유통사를 통해 구매하는 등 번거로운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웬만한 생필품을 마켓컬리를 통해 구매할 수 있으니 원스톱 쇼핑에 성공할 확률이 그만큼 높아졌다. 하지만 아직은 원스톱 쇼핑을 논할 만큼 제품군이 다양하지는 않은 눈치다. 마켓컬리 이용자들이 원스톱 쇼핑에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좀 더 많은 제품군을 흡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사실 지금 제품군을 확장하는 일보다 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연이은 품절 사태를 해소하는 일이다.

 

대대적인 광고 활동을 펼친 결과 가입자와 이용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며 인기 상품이 품절되는 경우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마켓컬리는 당일 재고를 전량 폐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만큼 수요를 예측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체 수요 예측 프로그램을 통해 마켓컬리는 한때 폐기율이 1%에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랑했다. 하지만 한꺼번에 이용자가 늘며 마켓컬리는 수요 예측에 실패했고, 폐기율을 의식해 물량을 빠듯하게 마련한 결과 연이은 품절 사태로 이어졌다. 일부 이용자들은 “품절되기 전 물건을 확보하기 위해 한낮에 주문해야 한다면 이게 무슨 새벽 배송이냐”며 불만을 토로한다. 마켓컬리 관계자는 품질을 보장할 수 있는 선에서 물품을 매입, 판매하다 보니 이러한 문제가 불거진 것 같다며, 수요 예측 모델을 보다 정교화하고, 기준에 걸맞은 좋은 상품을 더 많이 발굴하여 선택의 폭을 넓히고, 공급사가 품질을 유지하며 생산 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협의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제품군을 세분화하는 일도 품절 사태를 해결하려는 노력의 일환인 셈이다.


헬로네이처의 친환경 배송 서비스 '더그린배송'

지난 4월은 대저 짭짤이 토마토의 계절이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어귀에 위치한 부산 대저동에서 자란 토마토는 토양에 섞인 염분으로 단맛에 짭짤한 감칠맛이 더해져 봄철 별미 과일로 이름났다. 대저 짭짤이 토마토는 70% 익었을 때 가장 맛있기 때문에 2~3일 소요되는 배송 시간을 감안하여 통상 덜 익었을 때 수확한다. 그리하여 때때로 너무 설익은 상태로 배송되기도 한다. 그런데 헬로네이처가 당일 아침에 수확하고 선별한 토마토를 부산 대저동에서 냉장 차로 날라 다음날 새벽 소비자에게 안겨주며 더 이상 덜 익은 과실을 미리 딸 필요가 없어졌다. 헬로네이처가 지난 8월 시범 운영한 ‘어제 수확한 무화과’가 폭발적 인기를 끌며 자체 브랜드인 ‘더신선’은 매월 전월 대비 매출 50%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헬로네이처의 더신선은 특별한 산지, 신선한 타이밍, 신선한 상품을 가꾸는 생산자, 이 세 가지 주제를 바탕으로 전국의 제철 먹거리를 가장 신선할 때 배송한다는 취지로 시작했다. 당일 도정한 쌀, 당일 도계한 닭, 닭의 일생에서 단 3주만 허락된다는 동물복지 초란과 함께 추자도 멍게, 진도 전복 등의 제철 식재료가 현재 더신선이 조명한 제품들이다. 그중 최근 입점한 무농약 원컷 채소가 특히 인상적이다. 버터헤드, 그린오크, 롤로레드 등 특수 채소를 뿌리째 배송하는 원컷 채소는 패키지부터 새롭다. 부케 모양의 플라스틱 통이 뿌리부터 잎까지 쏙 감싸 배송 과정에서 여린 잎이 손상받는 일을 최소화했다. 또 뿌리를 플라스틱 고리로 묶어 말 그대로 한 번의 칼질로 손질이 가능하도록 했다. 한 송이씩 포장한 모습에 귀한 식재료라는 확신과 융숭한 대접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새벽 배송의 지나친 품질 관리가 불필요한 쓰레기를 양산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스티로폼 박스는 지역에 따라 재활용으로 배출이 불가능해지며 더 큰 불편을 야기했다. 마켓컬리와 헬로네이처는 고객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폐기가 어려운 스티로폼 박스와 아이스팩을 수거한다. 하지만 이 둘을 수거하더라도 위생상의 문제로 재활용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걱정스럽다. 마켓컬리와 헬로네이처는 과포장,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꾸준히 고민하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 결과 마켓컬리는 100% 재생지를 활용한 종이 상자를, 헬로네이처는 순수한 물을 얼린 친환경 아이스팩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헬로네이처 여 팀장은 5월에 포장 부자재가 필요 없는 획기적인 배송 방식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기존의 종이나 스티로폼 상자가 전혀 활용하지 않는 배송 방식이라고 하니 기대감이 한껏 증폭된다.


새벽 배송은 농가와 소비자간 거리를 좁히는 순기능을 발휘한다. 또 특정 지역에 위치한 유명 식당, 카페, 빵집을 입점하여 그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던 인기 제품을 다른 지역으로 전달하는 등 지역간 격차를 줄이는 역할도 한다. 물론 새벽 배송은 여전히 수도권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한계를 지니지만. 현대인의 바쁜 일상에서 장을 보는 시간과 수고를 덜어줄 뿐 아니라 전문가의 안목으로 식재료를 엄선해 심적 안정감을 안겨준다. 한편 낯선 식재료를 소개하여 미식의 역치를 끌어올리는가 하면, 그들 중 내게 필요한 제품을 고를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그리하여 가끔은 교육의 기능까지 수행한다. 또 제품별로 실제 크기나 포장 상태를 한 번에 알 수 있도록 다양한 사진을 첨부하며, 손질법, 조리법 등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 식재료의 활용도를 높인다. 여기에 물류 창고 직원과 배송기사의 안전한 작업 환경, 과포장으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만 원만히 해결하면 더 완벽에 가까운 서비스로 진화하리라. 헬로네이처가 작업자가 냉동차고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냉동 워크인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도입하고, 새로운 차원의 배송 방식에 도전하는 등 그 변화의 조짐은 이미 감지되고 있다.


최근 쿠팡, 롯데, 신세계, GS 등 기존의 대형 유통사들이 앞다퉈 새벽 배송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선택지가 다양해지는 것은 언제나 소비자 입장에서 반색할 일이지만, 그들이 과연 기존의 업체들처럼 세심한 서비스를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지나치게 과열된 경쟁이 가격 경쟁으로 번져 제품의 질과 격을 동시에 낮추는 결과를 낳지는 않을는지, 쓰레기가 쌓이고 인력들의 근무 환경은 더 나빠지지는 않을는지…. 새벽 배송을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소비자로서 기대보다 우려가 앞서는 시점이다.


<Esquire> 2019년 5월호에 실린 기사를 재구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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