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끝맛과 함께 나의 성장이 보인 날
이번 면접이 잡혔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래도 최근 3-4개월 동안 열심히 회사의 문을 두드렸다고 생각했는데, 잠깐이나마 문을 열어준 유일한 곳이었다. 혹시라도 '괜한 기대를 하고 있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려는 찰나, 그런 절망을 한 템포 쉬게 해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다. 게다가 회사도 직무도 내가 생각했던 모습을 닮아있는 곳이라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으로 지원을 준비했다. 면접도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고 연습해본 건 처음이지 않았을까.
작년 이맘때쯤 이직을 위해 첫 면접을 봤었고, 그래서 1년이나 지나서 보게 된 이번 면접에서 만큼은 자신있게 '난 완전 변했다. 면접 별 거 아니네ㅎ'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사람은 크는 데 오래 걸리고, 인생은 그렇게 쉽지 않다.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마음에 쿠션을 이만큼 쌓아서 상처받지 않을 준비를 해뒀다. (어쩌면 이 글도 그 쿠션의 일부일 수도 있겠다.)
?? 당연히 잘 보고나서 이런 글을 쓰는 줄 알았는데 이번 면접도 잘 못봤다면서, 그럼 1년 만에 본 면접에 대해 대체 뭐 어떤 이야기를 쓰려고 하냐, 하면 나는 나를 인정하고 기특해하게 되었다. 아쉽게도 나는 1년 만에 엄청난 실력과 언변으로 면접장을 휩쓰는 사람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쉬운 면접을 마치고 온 다음의 내 모습에 대해, 나라도 작은 칭찬을 해주고 싶어서 나 기죽지 말라고 이 글을 쓰고 있다.
1.
이번 면접을 잘 봤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후회는 없다. 그 이유는 내가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 알게 되었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번 면접에서 내가 유난히 대답을 잘 하지 못했던 파트가 있었는데, 어쩐지 대답이 나오지 않는 나를 보면서 나에게 그런 경험이 정말 부족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는 약점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게 티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준비를 잘 못해서 '더 열심히 준비할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긴장을 너무 많이 해서 '대체 왜 그렇게 긴장을 했었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너무 괴로웠었다.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또 나의 나약함 때문에 기회를 날려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뭐랄까 '아 들켰다'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내게 없는 부분을 들켰다. 그건 내가 이제 와서 만들 수도 없고, 있는 척 할 수도 없다. 그러니 그냥 아 예리하셔라, 그래도 나의 좋은 점을 더 봐주신다면 좋겠습니다.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만요.. 라고 생각할 수밖에.
그래도 이번에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다시 돌아간대도 나는 또 같은 곳에서 같은 잘못을 할 것이다. 부족함을 다시 들킬 것이고, 들키지 않을 요량은 없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가진 그대로의 모습으로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게 지금의 나다. 의욕은 넘치지만, 경험이 부족하고, 말도 잘 못하고, 꼬이면 크게 당황하고,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회초년생. 내 스스로가 정말 성장하지 않고서, 그냥 그때로 돌아가서 갑자기 면접을 잘 본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다. 정말로 경험이 쌓이고 많이 커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줘도 자신감과 여유가 넘치는 그때까지는 이런 부족한 나를 어떻게든 데리고 다니며 소개를 시켜야 한다. 부족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나를 미워하지는 않으면서 말이다.
+
그런데 갑자기 의식의 흐름이지만, 글을 쓰다보니 '후회가 없다'와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좀 다른 말인 것 같다. 내가 아까는 후회가 없다고 썼는데, 그게 아니고 나는 후회를 하지 않는다-가 더 맞겠다. 후회되는 부분은 당연히 있다. 완벽하지 않았던 모든 말과 행동에 후회가 된다. 하지만 후회가 있음에도, 후회를 하지 않을 수는 있을 것 같다. 고칠 수도 없는 그때에 매달리지는 않는 것, 아쉬움을 아쉬움으로 남기고 다음을 생각할 수 있는 것. 이건 '후회가 없다'보다는 '후회를 하지 않는다'로 표현하는 게 맞겠지 암튼 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2.
작년의 기억. 어떤 면접을 준비할 때 '자신의 별명은 무엇인가요?'라는 예상 질문을 보고 멍을 때렸다. 별명? 그러니까 내가 평소에 지인들에게 어떤 사람인지 설명해달라는 것 같은데,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때 나의 정확한 고민은 '내 별명은 뭘까?'가 아니라 '무슨 별명을 말해야 면접에서 좋게 들릴까?'였다. 나는 면접에서 받을 질문들에 맞춰서 나를 끼워맞출 준비가 되어있었다. 면접에서의 나는 매우 외향적이며, 스트레스는 전혀 받지 않고, 무한 체력에, 일을 사랑하고, 매일 밤을 새워도 행복한 사람으로 보여야만 했다. 이직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어떤 친구랑 이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친구가 그랬다. 면접이라는 게 어쩔 수는 없지만, '이게 내 별명이에요'하고 한 단어로 너를 담지 못했다고 해서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내가 볼 때 너는 장점이 엄청 많고 다채로운 사람이어서, 네가 나한테 네 별명에 대해 물었을 때 너무 어려웠다고 말이다. 또 다른 어떤 친구도 면접에 붙기 위해 너를 꾸며야만 하는 곳은 길이 아닐 수도 있다고 조언해줬다. 그때 그 말들이 진심으로 고마웠고, 나보다 나를 더 생각해주는 친구들 덕분에 부끄러웠지만, 사실 내 마음은 그 말들을 꽉 붙잡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부족해서 그걸 다 감춰야만 면접에 붙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때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서야 친구들의 그 말을 마음 깊은 곳까지 이해한다. 면접에서의 내가 조금 바보 같았다고 해서, 어떤 면접관이 나를 티나게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안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30분 간의 내가 나의 전부는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게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전에는 면접에서 떨어지면, 다음 면접에서는 어떻게 30분 만에 딱 회사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 면접이 끝나고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 조금만 더 보면 되게 괜찮은 사람인데, 못 보여줘서 아쉽다. 나 장점도 많이 있는데 그건 잘 보였으려나. 좀 웃기지만 나는 이 생각을 하는 내가 기특해서 견딜 수 없었다. 이전에는 내 주위의 현명한 친구들이 아무리아무리 떠먹여줘도 못받아먹던 그 말을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는 더 미안하고 더 고마워졌다. 이런 느린 애를 알아먹게 하려고 늘 주변에서 그렇게 반짝거리는 말들을 해주고 있구나.
쓰다보니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사람치곤 말이 정말 많다. 후회를 하지 않는다고 했지, 미련이 없다고는 안 했다. 솔직히 갑자기 면접관님의 꿈에 조상님이라도 나타나서 '월요일에 온 그 애를 놓치지 말거라' 한 마디 해줬으면 하는 간절함도 있다. 아니면 뭐 넘어지다가 실수로 나를 합격시키거나 그런 일은 없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탈락이라는 건 참 슬프고, 거절당한다는 건 익숙해지지가 않는 일이다.
글도 두서가 없고 엉망진창이지만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발행하기로 했다. 이런 날에는 내 날것의 감정과 이야기를 쓰는 게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어찌 됐든 면접의 끝맛을 털어봤다. 손에 남은 것은 부족한 나를 인정하게 되었다는 사실, 그래도 나에겐 좋은 점이 있다는 걸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다른 것이 없더라도 남은 것들이 아주 만족스럽다. 멋진 성공기는 아니지만 단단한 실패기가 생겼다. 친구가 자꾸 다 떨어진 사람처럼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아무튼 면접의 결과에 상관없이 내가 성장하고,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시간이었다. 늘 다음은 있고,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그 중에 성공기도 있을 테니. 너무 실망하지 말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