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합격 이후 첫 출근까지는 3주가 넘게 남아있었다.
이틀 정도 합격을 축하하는 시간을 보낸 후 이전부터 계획해 두었던 가족 여행을 마침맞게 떠날 수 있었다. 누구보다 알차게 이 기간을 보내겠다는 나의 다짐과 딱 들어맞는 걱정 없는 시간이었다.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지긋지긋했던 취업 준비는 하지 않아도 되었고, 그렇다고 출근을 하지도 않는 나날들. 느지막이 일어나 잠깐 카페에 가거나 혹은 밀린 사람들과의 만남을 하고, 본가에서 며칠을 푹 쉬기도 하고. 누가 봐도 완벽히 편안한 시간을 보냈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마음까지 그렇지는 못했다.
누구보다 잘 쉬겠다고 과하게 다짐했던 탓인지, 옅게 깔린 출근에 대한 걱정 탓인지 문득 공허함과 허무함 같은 것들이 쏟아졌다. 모든 것이 끝났고 미래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내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뭔가 갑자기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너무 텅 비어있어서 무엇을 해도 이 시간을 꽉 채우지는 못할 것만 같은 그런 알 수 없는 기분. 꽉 채우지 못하는 이 시간이 자꾸만 조급하고 아쉬운 기분. 그러다 가까운 미래를 생각하면 문득 마음이 울렁거렸다. 방학 숙제를 다 하지 않은 채 방학을 지내는 게 이런 기분이었었지.
원래는 이런 감정에 대한 길들을 길게 남겨보려다가 포기했다. 알 수 없는 기분들, 객관적으로도 납득이 되지 않을 그 기분들을 내 안에서 꺼내 글자로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영 정리가 되지 않았다. 물론 글과 생각을 몇 주 간 멈춘 탓도 있다. 아무튼 포기했다. 이 감정을 푸는 대신 그냥 끊어내기를 선택했다. 언젠가는 이 알 수 없는 감정의 이유도 알게 되겠지. 지금은 어렴풋이 공허함과 두려움의 그 어딘가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렇게 지내다 드디어 첫 출근을 하루 앞두게 되었다. 오히려 마음이 말끔해진다. 내일이 지나면 지금 알 수 없는 이 감정들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다시 지금보다 더 격한 감정들이 덮쳐올 것이다. 일상도 더 들쑥날쑥해질 것이다. 하지만 또 그 시간들에 익숙해지고, 또 당연해지고, 또 고민이 생기게 되겠지.
그래서 지금은 어떤 고민도 없이, 차라리 덜어내기로 했다. 이상했던 기분들을 끊고 덜어내고 나니 비로소 다른 감정이 들어 올 틈새가 생기나 보다. 그저 약간의 기대감과 안도감으로 마지막 남은 하루를 보내야지. 다시 어떤 사람이 되기 전의 마지막 글로써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나를 연결해두고 싶어서 이렇게 어지러운 글을 남긴다. 이 글의 어지러움이 지금 나를 오히려 가장 잘 표현해 줄 것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