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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jeong Oct 06. 2023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

내가 알게된 '나'에 대한 이야기


나는 가사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다.

나에게 가사는 좋은 노래와 좋아하는 노래를 나누는 기준이 되고, 그래서 가끔은 한 줄의 가사로 그 가사를 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기도 한다.



어떤 가사가 어느 순간 내것이 되어 들릴 때가 있다. 그저 귀 근처를 맴돌다가 지나가버렸던 가사가, 어느 날은 머리나 마음까지 다가와 또박또박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다. 나는 그런 순간이 너무 소중하다. 한순간 벅차오르는 기분, 어두워져있던 핸드폰 화면을 두드려 그 가사를 눈으로도 몇 번을 읽어보고, 며칠을 말로 글로 중얼거린다. 그렇게 모인 가사들은 때마다 나를 꼭 붙잡아주었다.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


아이유의 팔레트라는 노래가 나왔을 때 나는 스물 네 살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카페에서 아침 청소를 하며 이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때 나의 관심은 온통 이 노래의 산뜻한 멜로디에만 빠져 있었다. 적당히 템포가 있으면서도 시끄럽지는 않은, 아침 카페 청소에 적합한 곡. 그 산뜻하게 담긴 가사가 얼마나 무거운 고민과 깨달음을 담고 있는지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때의 나는 이 곡이 노래하는 스물 다섯보다 딱 한 살이 어렸지만, 생각의 깊이가 열 살은 어렸던 것 같다.


그로부터 5년 후인 작년 이맘때쯤, 아이유는 콘서트에서 이 노래의 마지막을 알렸다. '이제 조금 알 것 같다'고 말하던 스물 다섯살을 지나 그때 그녀를 다독이던 이와 같은 서른 살이 되었고, 이제 그때보다 더 좋은 때를 만났다고 했다. 그래서 이 노래를 놓아줄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러고보니 가사 한 줄 한 줄에 담겨있는 스스로에 대한 고민과 인정같은 것들을 생각하며 잠시 기분이 이상해졌다. 나도 그녀가 말한 스물 다섯살을 훌쩍 넘었는데도, 나를 알 것 같은 기분이 어떤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 물음표는 그날 아주 잠깐, 내 머리를 스쳐지나갔을 뿐이었다.





그 물음이 지나던 그때쯤이 내게는 굉장히 어려운 때였다. 그 어떤 일과 관계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시기였다.


그런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게 진정한 무의미라는 것을 알았기에 일단 정신을 차리고 그 늪에서 빠져나오는 것까지 어찌저찌 하고 났더니, 허허벌판이었다. 이제부터 내겐 목적지도 동행자도 없었다. 유일한 당사자. 그런데 그런 내가 가끔씩 알 수 없는 우울에 빠지기도 하고, 앞으로 뭘 원하는 건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는 것이다.


이 답답한 존재와 대체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 그걸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해보고서야 깨달았다. 나는 나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이제 내가 나를 먹여 살리는 게 끝이 아니라, 어르고 달래며 사랑하기까지 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지난 1년 동안 나는 나와 친해지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일단 물리적인 시간을 많이 들였다. 좋은 곳에도 데려가고, 글도 읽히고, 일기도 쓰게 하면서 처음으로 나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언제 우울해지는지, 뭘 두려워하고 어떻게 하면 조금 나아지는지 살폈다. 서툴게나마 스스로와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고, 반대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때도 많아졌다. 나라는 존재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가 처음으로, 아주 조금은 감이 잡히는 듯했다.


그리고 그때 그 가사에서 말했던, 이제 나를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이후 그 노래를 들을 때는 전혀 다른 마음이 된다. 또 하나의 가사가 내 이야기가 되어 들리기 시작했고, 생각만으로 마음이 좋아지는 문장이 생긴 것이다.


발매 때보다 최근 이 노래를 더 자주 듣는다. 노래 몰래 그럼 나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며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이라는 문장을 마구 좋아한다. 노래를 듣고 있지 않을 때에도, 좋아하는 것을 하고 기분이 좋아지거나 작은 두려움이 느껴지는 등 내게 변화가 생길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나는 이제 나를 조금 알 것 같다고.



그래서 내가 알게 된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글들을 써보고 싶다. 더 이상 속이지 않게된 것들, 나에 대해 좋아하게 된 것들, 타협하게 된 부분들. 그런 것들을 적다보면 나에게도 그리고 아직 스스로와 친하지 않은 누군가에게도 어떤 의미를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실 이렇게 알았다고 생각했다가도 모르겠고, 괜찮을 줄 알았는데 무너지는 나를 보며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게 많다. 그래도 그걸 다시 내 데이터에 기록하고, 또 어떻게 극복했는지도 기억한다. 그러다보면 이렇게 평생 나를 관찰하고 고민하면서 사는 거구나 싶고, 그 노래가 이제 나는 나를 알아,라고 확언하지 않고 '이제 조금 알 것 같다'고 조심스레 이야기했던 이유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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