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10개월.
공백 제외하고 투입한 시간을 계산하면 7만 여 시간을 시사 교양 작가로 일했다.
이슈의 핵심, 사건의 본질, 인물의 매력을 파헤치는 데 이골이 난 방송작가가
90년생의 취업지원관으로 눈을 돌린 것은
아주 사소한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5년 전쯤이었을까?
남북관계에 긴박하게 돌아간 어느 시점.
이른바 북한통, 외교통 섭외 0순위 전문가가 연락불통이었다.
며칠 후, 부재중 전화 30통, 문자메시지 10건에 대한 응답은 의외였다.
본인의 주선으로 학생들과 국제기구 견학 프로그램을 진행하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뼈아픈 말을 남겼다.
“작가 선생님!
좋은 능력과 경험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방법을 한번 고민해 봐요”
그것이 시작이었다.
글 쓰는 일에서 글쓰기를 돕는 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청년들의 취업을 돕는 지원관로 보람을 누려 보기로 결심했다.
지난 2년.
취업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학생들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지구의 종말보다 더 무서운 취업 빙하기.
진심이 담긴 작은 사과나무 씨앗을 심어 두었다.
그리고 브런치를 통래 애플씨드에서 싹이 올라온 사과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