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것도 헌것이 되고, 헌것도 원래 새것이었다.
두고두고 다시 돌려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
여러번 보면 새로운 복선과 장치를 발견하고, 인생의 어떤 시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감상을 느낀다.
나에게는 "우리도 사랑일까" 가 그런 영화이다.
이 영화를 네번째 돌려보고 마음에 와닿은 것은
1. 불륜: 도덕적으로 작은 균열을 방치했을 때 큰 균열이 된다.
영화속에서 마고는 멀쩡한 두 다리를 가지고 휠체어 서비스를 이용하고,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는 수영장에서 실례를 해 그날의 수업을 망쳐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타인이 그 잘못에 대해 "왜 멀쩡한 다리가 있으면서 휠체어를 탔냐",'너 때문에 수업을 망쳐버렸다'라고 책망의 눈길을 보내도 크게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이 장면이 시사하는 바를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본인이 도덕적으로 정직한 잣대를 세우지않고 약간의 균열을 허용하기 시작하면, 그 균열이 점점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해석했다.
본인 스스로의 도덕적 잣대를 느슨히하며 양보할 때, "이 정도는 남들이 모르니까 괜찮겠지"하면서 타협할 때 나도 모르게 그 균열이 커지고 내 인생을 무너뜨릴 수 있다.
2. 인지부조화를 해소하고자 하고, 본인의 행동을 정당화할 이유를 찾는다.
마고는 옆집 남자에게 마음이 흔들릴 때 마다, 남편한테 사랑을 표현하고 애정을 갈구한다.
이 행동에는 '다른 남자에게 흔들렸다는 죄책감을 씻기 위한 행동'이며 더 나아가 본인이 애정을 갈구했을 때, 돌아오는게 없으면
'남편이 날 외롭게 했으니, 바람 피울 수 밖에 없다는' 일종의 정당화 구실을 제공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죄책감과 인지부조화를 느끼고, 거기서 오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행동을 하고, 또 본인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유를 찾는다.
3. 새것도 결국 헌것이 된다.
결국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이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계속해서 언급된다.
특히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은 결국 루를 떠난 마고와 옆집 남자 대니얼의 장면이다.
아무것도 없던 스튜디오에서 정렬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둘의 모습으로부터 점점카메라가 돌면서
빈 공간에 생활의 흔적들이 채워지고, 마지막에는 마고와 루가 그랬던것처럼 권태롭게 TV를 보는 마고와 대니얼이 등장한다.
새것은 결국 헌것이 되고, 헌것도 원래는 새것이었다.
가끔 우리는 새것의 반짝임에 눈이 멀어, "왜 내가 헌것과 함께했는지, 왜 그것이 내 옆에서 시간을 보내며 헌것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망각한다.
마치며,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고, 몇년에 한번씩 두고두고 보는 이유는 새롭고 반짝이는걸 좋아하는 내 자신에게 주기적으로 경각심을 보내기 위함이 아닐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