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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유 Aug 19. 2024

애견 간호사 (1화 애견 분양 사업)

2003년 봄 아버지는 가족, 정확히 말하면 내 앞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앞으로 나는 니 엄마랑 여주의 전원주택에서 살 거다. 계약도 다 끝났고 이사는 다음 주에 할 계획이다. 이 집은 세 놓을 거고 너한테는 원룸 하나 해줄 테니까 알아서 잘 살아라.” 

느닷없는 통보지만 뭐라 반박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나이 서른에 부모 피 빨아먹으며 사는 것도 못할 짓이 아닌가. 그렇게 부모님은 삼각지붕 모양의 전원주택이 있는 여주로 떠났고 입주하자마자 일가친척들을 다 불러 거하게 집들이까지 했다.

         

이때부터 나는 기나긴 원룸 빌라 생활이 시작되었다. 현재도 복층원룸에 살고 있으니 무려 20년 넘게 원룸 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그때는 빈털터리 거지였고 지금은 얼마든지 아파트로 들어갈 수 있지만 혼자 최적화된 원룸 공간에 오래 살아 그런지 아직도 이곳이 심리적으로 편했다.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다 보니 자유와 평온에서 야기되는 태만의 기운이 다시 꿈틀거렸다. 겉으로는 안정된 것 같아도 내재된 우울감은 수시로 밀려들었다. 벌어놓은 돈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하지 않았다. 관성이란 이렇게 위험한 것이다. 어렵지 않은 일도 할 수 없다 믿었고 억지로라도 구실을 만들어 결정을 회피하곤 했다. 그렇게 어제 오늘 내일이 하등 다를 바 없는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던 중 아버지가 긴히 할 말이 있다면 여주로 호출신호를 보냈다.

      

버스에서 내려 전원주택으로 가는데 개 짖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마당에는 여러 마리의 크고 작은 개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떤 애는 목줄에 묶여 있고 어떤 애는 정신없이 뛰어다녔고 어떤 애는 사람이 오건 말건 늘어져 있었다. 한마디로 개판 그 자체였다. 아버지는 나를 불러 앉힌 후 대뜸 애견 분양 사업을 하겠다고 했다. 은퇴 후 한적한 시골에서 텃밭이나 일구며 노년을 보낼 거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하는 말을 대충 들어보니 이곳에 오기 전부터 계획했던 일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 어차피 취직도 못하고 자빠져 놀 바에는 나랑 같이 일이나 하자. 이 애견 사업이라는 게  공부할 것도 많고 신경 쓸 것도 많더라.”

“ 저 그런 거 못해요.”

“ 못하는 게 어디 있어. 하려고 마음먹으면 다 할 수 있는 거지.”

아버지는 집 안에서 키우는 말티즈 토니를 제 품에 안고 부탁과 협박이 반씩 섞인 어조로 말했다.

      

아버지가 개를 키우고 좋아했던 건 맞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싶었다. 기껏 아들 불러놓고 한다는 말이 팔자에 없는 개장사에 동참하라니. 애견 분양 사업이라는 말을 붙였지만 결국엔 개장사 아닌가. 문득 어린 시절 동네에서 개 몇 마리를 끌고 다니는 험상궂은 개장수 아저씨들과 아버지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아버지는 그렇다 쳐도 나는 어떤가. 오래 전부터 집에서 개를 키워 친숙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애견사랑이 있는 건 아니었고 특히나 그냥 키우는 거와 관리해서 파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박차를 가하려는 듯 아버지는 어디서 구했는지‘애견간호아카데미’(나중에 대한동물간호아카데미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지금은 망했는지 어떤지 모름) 라고 적힌 팜플렛을 들이밀며 일단 등록부터 하라며 수강료까지 쥐어주었다. 

“ 내가 직접 배우고 싶다만 이 나이에 머리가 잘 돌아가겠냐. 젊은 니가 가서 체계적으로 잘 배워서 와라.”

생각해보면 거절의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아버지는 자식이 싫다는 일은 강요하지 않았기에 끝까지 거절했다면 어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즈음 나는 부모님에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컸다. 대학까지 졸업한 놈이 이러고 있는 자체가 죄스러웠고 어떻게든 뭔가를 시켜보려 애쓰는 아버지의 모습이 어딘가 측은해 보였다. 그래, 통 크게 효도한다는 심정으로 한번 해보자. 하다가 정 아니다 싶음 그때 관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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