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페베 Nov 22. 2020

어쩌다 '상친놈' 된 후기, <상견니> 영업합니다

당신이 대만 드라마에 기대하는 모든 것

'과몰입 오타쿠'라는 말이 있다. 

무엇인가에 과도하게 몰입한 상태를 일컫는 신조어로, 보통 특정한 서사나 작품에 푹 빠져서 허우적대는 사람들을 칭하는 단어다.

<상견니>는 바로 이 과몰입 오타쿠 - 상친놈 (상견니에 미친놈)- 들의 양성소다.

아 나 벌써 울고싶네... 쏘이쟌스 장니옌징 비러치라이...

흔히들 "대만 드라마" 라는 장르에 기대하는 요소들이 있다. 

특히 '풋풋한 첫사랑'과 '애틋한 성인 시절의 재회' 라는 키워드는 '대만' 장르와 뗄레야 뗄 수 없다.

아마 이는 대만 작품 중에서 국내에서 히트한 작품들이 대부분 첫사랑을 소재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90년대생이라면 학창시절 음악시간에 수십번은 봤을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부터 시작해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나의 소녀시대>, <청설> 등의 작품은 모두 비슷한 첫사랑 감성을 공유하고 있다. 자연스레 대만 영상물에 대한 일종의 선입견 혹은 기대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상견니> 역시 당신이 대만 드라마에 기대하는 모든 것이 있다.

딱 봐도.. 무슨 재질인지 아시겠져?

특유의 '애틋한 첫사랑' 감성은 물론, <말할 수 없는 비밀>의 타임슬립 코드와 <나의 소녀시대> 의 애틋한 성인 시기의 재회까지 다 있다. 학원물/청춘물 특유의 클리셰들, 이를테면 조용한 아싸 여주에게 관심 갖고 단짝친구가 되어주는 잘생긴 남주 같은 것부터 서로 친구인 두 남학생 사이에 생기는 삼각관계 등도 당연 모두 있다.

간단한 콘셉트는 이렇다. 2년 전 비행기 사고로 죽은 남자친구를 그리워하던 여주 황위쉬안은 우연히 과거에 살았던 자신과 똑같은 외모의 여고딩의 몸으로 타임슬립하게 되고, 그곳에서 죽은 남자친구와 완전히 똑같은 외모를 가진 남학생을 만난다. 


그러나 평범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법.

<상견니>만의 매력포인트는 후술하겠지만, 무엇보다 드라마의 3요소, 스토리, 연출, 연기가 완벽하다.

즉 한드 기준으로 하면 작/감/배가 모두 완벽하다.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줄 알고 따로 검색해볼 정도로 상황에 따라 완벽히 다른 인물을 연기하면서 정말 다른 두 사람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여주 역할의 가가연 배우는 물론이거니와 사랑에 빠진 소년부터 인생의 굴곡을 겪은 후의 성인 남성을 모두 연기하는 허광한, 시백우 배우의 연기력도 일품이다. 특히나 두 남배우의 비주얼은 그냥 그 자체로 개연성. 

이 씬은 진짜...... 처음 보는 눈 처음보는 뇌 삽니다..... 이 뒤에 흐르는 음악까지 갓벽

연출 역시 현대와 과거, 도시와 학교 등 대만의 다양한 풍경을 풍부하게 활용하면서 아름다운 영상미를 만들어낸다. 특히나 드라마의 가장 핵심 장면인 빗속 씬의 연출은 그 자체만으로도 첫사랑 감성을 물씬 전달한다. 우바이의 '라스트 댄스'나 '상견니x3'같이 드라마 분위기와 찰떡으로 어울리는 OST의 활용 역시 첫사랑 감성을 극대화한다. <건축학개론>의 성공에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 있었다면 <상견니>엔 우바이의 '라스트 댄스'가 있는 셈.


탄탄한 서사와 완벽한 떡밥 회수

무엇보다도 <상견니>가 수많은 '상친놈'들을 양성할 수 있었던 건 짜임새 완벽한 스토리 덕분이다.

로맨스물답게 설레는 장면과 심장 떨리는 전개도 충분히 많은데, 그 외에도 매 회 몰아치는 반전과 드러나는 복선들에 그야말로 '대가리 깰' 수밖에 없다. 특히나 반전도 억지스럽지 않고 정말 탄탄하게 쌓아올린 전개인데 딱 시청자만 몰랐다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더욱 재밌다. 초반부 타임슬립 전까지는 조금 지루할 수 있지만, 대만 현지 방영본으로 치면 1회분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생각보다 늘어지지 않는 편. (넷플릭스 업로드 기준 <상견니>는 21회차지만, 대만 본토에서는 13회로 방영됐다. 보통 넷플기준 2회차가 방영 당시에는 1회였다고 보면 될 듯하다.) 


무엇보다 초반부에 던져진 수많은 떡밥과 장면이 뒤로 가면 갈수록 소름돋게 이어져있고, 모든 게 복선이기 때문에 절대 지루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천윈루 서사 빌드업 역시 처음에는 뭔가 싶지만 타임슬립 직후에 이게 이렇게 이어진다고?? 하면서 충격을 안긴다. 개인적으로는 생일 케이크 빌드업과 왕취안성과의 첫만남 부분은 정말 미쳤다고 생각한다. (1화 가짜 점쟁이와 강아지 부분을 비롯해 왕취안성에서 넷플기준 3회가량 내내 허우적대는건 굳이? 싶긴 하지만.. 황위쉬안 캐릭터 빌드업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걸로.) 

이 사진도 처음 볼땐 뭔가 싶었지만...  가가 가인줄 몰랐단 말이에요

특히 과거에서 만난 리쯔웨이가 단순히 남친과 얼굴이 같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무언가 죽은 남자친구와 닮은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부터 이 드라마의 매력이 시작된다. 

애초에 '첫사랑'이라는 소재를 풀어가는 방식부터가 '얼굴만 같은 도플갱어' 로 충분히 신선한데, 이 설정이 뒷부분에 가면서 전부 첫사랑 서사로 퍼즐 맞추듯 맞춰지는 부분이 정말 소름 돋는다. 특히나 타임 루프 속에서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동시에 바꾸려 했던 리쯔웨이의 애틋한 직진 서사는 시청자의 마음은 물론 눈물샘까지 완벽히 사로잡는다. 


타임슬립 (및 바디체인지, 도플갱어) 소재의 작품들이 흔히 범하는 설정 붕괴나 떡밥 미회수 같은 실수가 없다는 점 역시 '상친놈'을 대량 생산하는 요소. 타임슬립과 이어지는 루프 속에서 수많은 떡밥들이 단 한 개도 빼놓지 않고 전부 회수된다. 심지어 떡밥 회수가 서사 전개에 적절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진행되기 때문에 '억지 회수'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고 오히려 소름만 계속 돋는다. 특히나 애절한 감정선과 이를 표현하는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가 이 탄탄한 서사 전개와 잘 어우러지면서 시청자들의 과몰입을 유도한다.


후반부 최종빌런 (스포라서 숨김) 부분에서는 약간 어색하긴 하다.

인물을 너무 '원래 그렇다'로 퉁치고 넘어가려하고 감정선이나 개연성을 버리고 간다는 억지 전개의 느낌은 있지만 이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다. 애초에 캐릭터 자체가 하나하나 챙기고 갈만한 캐릭터도 아니고, 그걸 챙기다보면 드라마 자체가 너무 다크해지기도 했을 것. 조연파티에 악역에까지 서사 한바가지 주는 중드와 후반으로 갈수록 세계관 정립 못하고 잦은 설정 붕괴에 메인캐릭터마저 캐붕되는 수많은 타임슬립물들을 봐서 그런지.... 이 정도는 옥의티 정도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다.

(억지스러운 전개와 더불어 후반부에 이야기 닫기에만 급급해 감정선이나 캐릭터는 놓친 주제에 결국 떡밥마저 못 챙긴 대표적인 사례로 드라마 <더 킹>이 있다...)


매력있는 캐릭터 + 신선한 시각

<상견니>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매력있는 인물들에 신선한 시각의 전개가 더해졌다는 점.

우선 로맨스에서 가장 중요한 남주들의 캐릭터성이 잘 살았다. 비슷한듯 묘하게 다른 리쯔웨이와 모쥔제의 성격부터 두 친구의 묘한 브로맨스 관계가 매력적이다. 특히나 두 남주의 삼각관계가 천윈루-황위쉬안이라는 완전히 상반된 두 캐릭터와 서로 이어지면서 나름의 (?) 해피엔딩으로 풀리는 전개 방식이 신선함을 더한다.

이 짤에 정말 수많은 복선이 숨겨져 있음을... 덕후는 뒤늦게서야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특히 <상견니>는 기존 서사들에서 배제되고 무시되는 요소들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신선한 변화를 시도한다.

타임슬립+바디체인지, 그리고 첫사랑은 굉장히 흔한 소재지만, <상견니>는 '기존 세계의 인물' 이라는 다른 여타 내러티브들에서 주로 소외당하는 요소에 주목함으로써 흔한 소재를 새롭게 변형한다. 기존에 세계관에 이미 있던 인물의 삶, 그 인물의 주변인들, 그리고 타임슬립이 진행되는 동안의 그 인물의 인격, 타임슬립 이후 세계관에 남겨질 그 인물- 이라는, 여타 타임슬립물에서 쉽게 배제되고 소외되던 요소들을 중심 서사로 가져옴으로써 새로움을 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초반부의 아기자기한 유쾌함이 일반적인 타임슬립물이었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분위기는 어두워지지만 동시에 <상견니>만의 특색이 드러난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가 흔한 '학원물'과 '가상 작품 빙의'라는 소재에서 '엑스트라'라는 소외된 요소에 집중함으로써 참신한 서사를 창조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

(강스포)

.

.

.

.

의도 없는 회귀로 만난 죽은 남친 도플갱어와 + 동일인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성립하는 로맨스만으로도 사실 충분히 설레고 재밌는데, 여기에 남여주의 쌍방 타임슬립이라는 코드를 넣으면서 <상견니>만의 참신한 내러티브가 완성된다. 

사실 <상견니>의 진면목, 즉 '상친놈 양성하는 모먼트'는 1.0리쯔웨이-왕취안성(2.0리쯔웨이)-3.0리쯔웨이로 이어지는 계속된 타임루프가 주는 반전의 재미와 애틋한 설렘이다. 특히 2.0, 3.0 서사 풀리면서 초반부 떡밥이 전부 회수되는 재미가 압권. 이 부분의 엄청난 흡입력으로 시청자를 완전히 붙들면서 후반부에 셰즈치와 함께 급격히 어두워지는 작품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시청자가 결말까지 달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중간중간 타임루프 관련해서 14-16부 즈음에 '시청자가 소외감을 느끼는' 왕따 구간이 있다는 평이 간혹 있긴 한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서라도 끝까지 보게 만드는 점도 있는 듯.

또 천윈루의 죽음이라는 미스터리 코드를 넣고 이를 자연스럽게 메인 커플 서사와 엮어서 풀어나가면서 스토리를 더욱 풍부하게 한다. <동백꽃 필 무렵>의 여파로 요즘 드라마들이 아무데나 미스테리를 마구잡이로 넣는 경향이 있던데 제발 이렇게만큼만 잘 풀어나갔으면. 

-

결말이 아쉽다는 평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결말(외전 포함)이 모두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리쯔웨이3.0과 황위쉬안에게 해피엔딩이 있으려면 어쨌든 천윈루와 모쥔제의 죽음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만 보면 이 두 인물의 행복과 황위쉬안이 사랑했던 왕취안성(리쯔웨이2.0)은 공존할 수 없는 존재다. 또 사실 2.0은 이미 죽은 존재고, 3.0과의 사랑은 충분히 애틋하긴 하지만 그것이 황위쉬안의 완전한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데 그 애매한 행복을 위해서 드라마가 메인 인물 중 둘을 아예 버려버린 채 결말을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결국에는 모두가 행복할 수 있고 아픈 기억조차 조금도 남지 않는 지금의 결말, 즉 아예 모든 것의 시발점부터 지워내는 게 맞는 결론이지 않을까 싶다.


<상견니> 보는 내내 처음 나한테 상견니 보라고 추천해준 지인한테 화냈다. 

왜 진작에 제발 꼭 보라고 내 멱살 안 잡았냐면서.....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저처럼 후회하기 싫으시면 최대한 빨리 상견니 봐주세요.


코로나만 끝나면 당장 대만으로 날아가 타이베이의 버스 창가자리에 앉아서 '유선' 이어폰을 꽂고 라스트 댄스를 들으리.. 수동으로 치지직 치지직 하는 것은 덤.. ♪ 쏘이쟌스 쟝니옌징 비러치라이 ♬


명품 대만드라마 <상견니>, 넷플릭스 / 왓챠에서 시청 가능. 왓챠 별점 많이 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웰메이드 e스포츠 중드 <전직고수>, 대륙 휩쓴 비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