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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페베 Sep 01. 2020

왜 그들은 <진정령>에 현생을 빼앗겼나

K-유교걸이 열광하는 바로 그 중드 , 텐센트TV <진정령> 리뷰

갑자기 누군가가 중국 드라마를 보고 '현망진창', '현생을 빼앗겼다' 라고 외치며 드라마에 과몰입한다면 가장 먼저 의심해야 할 주인공.

어느 순간 트위터 타임라인이 점차 조용해진다면 제일 먼저 의심할 대상으로 꼽히는 대표적 '트친도둑'.

오죽하면 K-아이돌의 가장 큰 적수라는 소리까지 듣는 '대륙의 기적'.

내년 중국의 일명 '벨드 101' 대란의 시초이자 '진쏘공'의 주인공.

https://brunch.co.kr/@rainbowofspb/18 2021년 BL중드 대전을 정리해둔 글. 내년도 함께 달려요!)


바로 '나빼고 다 본' 화제의 중드, <진정령>이다.


웬 판타지 중국 드라마에 이렇게까지 호들갑이냐 할 것이다.

정령 어쩌구 하는 드라마 제목부터, 누가 봐도 '머리 긴 남자애들 나와서 칼싸움 주술싸움 하는 무협물이겠네' 라는 짐작을 하기 쉽다.

<진정령>은 포스터부터 로그라인, 줄거리까지 완벽하게 이 편견에 부합한다.

이 둘의 판타지 신선 무협활극인데....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

물론 이에 완전히 반하는 부분도 당연히 있는데,

무협 중드답지 않게 정말 압도적으로 잘생긴 메인 남주 샤오잔과 왕이보 둘의 비주얼은 가히 놀랍다.

중드에 대한 편견 중 하나가 '여주에 비해 아쉬운 남주 비주얼' 인데, 이 드라마는 그 편견을 완벽히 부술 뿐 아니라, 심지어는 남조연 여조연 할 것 없이 대체로 수려한 비주얼을 뽐낸다. 오죽하면 메인 남주로 입덕한 사람들이 재탕, 삼탕 할 때는 다른 남배우에게 홀려 다른 덕질을 시작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


그러나 사실 <진정령>이 시청자에게 가장 충격을 안기는 지점은 바로 무협물의 생명인 CG와 액션이다.

제목에서부터 기대되는 화려한 CG와 불꽃튀는 액션은 놀랍게도... 굉장히 허접하다. 

오죽하면 덕후들이 전부 'CG 빼면 완벽' 'CG 나올 때마다 코미디' 소리를 할까. 특히나 시청자를 잡아야 하는 첫 1,2회의 경우 끔찍할 정도의 '입덕 관문'급 발CG가 지천에 널려있어 매 씬마다 하차를 고민할 정도다. 

심지어 무협물의 기본인 전투씬도 허접하며 (칼로 툭 치기만 해도 사람이 죽는다...) 액션은 애잔한 뚝딱거림에 불과하다. '흐린 눈' 스킬을 장착하고 보더라도 ... 흐릿함 사이로 선명하게 느껴지는 허접함에 말을 잃는다.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지는 그린스크린과 크로마키의 향기... 이것이 정녕 2019년의 드라마인가요?

하지만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보고나면 현생을 살 수 없다, 여운이 흘러넘치는 드라마'라고 말한다.

또 극히 저퀄의 연출과 카메라워킹, 루즈한 초반부를 조금 버티다 보니 자연스레 밤을 새워 보며 눈물 줄줄 흘리고 있었다고도 한다. 보통 누가 <진정령> 보기 시작했다고 말하면 대부분 3일쯤 후에 다 보고 울고 있더라.

도대체 이 드라마, 무엇이 그렇게 다르며 어떻길래 수많은 K드덕 및 유교걸들의 현생을 빼앗아갔을까?


1539 여성 취향 저격, 로맨스 판타지 사극물

경제 원리에 따라, 충분한 수요를 확보한 공급은 성공을 거둘 수밖에 없다.

<진정령>은 한국 드라마판에 그간 멸종 위기였던 '로맨스/판타지/사극' 장르를 취한다.

한때 해품달, 달의 연인, 구그달 등 한창 사극 바람이 불던 시기도 지나, 지금은 한국 사극 자체가 거의 소멸 직전이다. 수요가 없어서가 아니라, 공급 자체가 끊겨버린 상황이다. CG, 소품 등의 이유로 현대극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제작 단가가 발목을 잡고, 이에 분장이나 까다로운 연기 등으로 캐스팅을 피하는 배우들까지 겹쳐져 자연스레 내리막을 걷고 있다. 올해만 해도 TV조선 외의 방송사에서는 사극이 전멸했고, 어쩌다 운 좋게 제작되더라도 메인 타겟 시청층은 대부분 윗세대인 경우가 많다. 1539 여성을 타겟으로 한 드라마는 연말이 다 되어서야 방송되는 <철인왕후>가 전부다.

자연스레 로판 장르 사극에 대한 1539 여성의 갈증이 쌓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진정령>은 이 수요를 정확히 저격한다. 게다가 1539 여성이 좋아할법한 잘생긴 배우들이 한가득 나오고, 대륙의 자본을 발라 구현해낸 화려한 미장센 역시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나 주 시청층에게 있어 감성적인 스토리와 로맨스는 부족한 CG나 액션의 디메릿을 훨씬 상회할 만큼 압도적인 플러스 요소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이 시청층이 보고 싶은 것은 무협이 아니라 청춘성장물이며 로맨스이기 때문이다.

약점은 약화되고, 강점은 강화되는 것이다.


은근한 유교걸 맞춤형 BL 코드

<진정령> 열풍은 한드에 그간 없던 BL 코드의 도입을 통한 코어 팬층의 확보에서부터 출발한다.

주 시청층인 1539 여성의 경우 대다수가 (아이돌 덕질 등으로 축적된 다년간의 경험치를 바탕으로) BL에 굉장히 개방적이고 적극적인데다가 장르 이해도도 굉장히 높은 편이다. 신화, 동방신기 시절부터 내려오던 유구한 팬픽의 역사와 현재 포스타입 플랫폼의 흥행까지 생각해보자. 또 BL 장르 자체가 웹툰이나 웹소설 플랫폼의 부흥을 기반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고 그 최대 수요층 역시 1020 여성이다. 대부분의 웹툰, 웹소설 플랫폼은 BL 장르 카테고리를 따로 준비할 정도로 수요층의 파이 자체가 크다.


그러나 여태껏 메인스트림 한드, 그것도 사극에서는 이 BL 코드가 제대로 다뤄진 적이 없었다. 

해봤자 <커피프린스 1호점> 류의 '알고보니 여자였다' 설정이 태반이거니와, 정말 남-남 커플이었더라도 이를 다룬 작품은 <왕의 남자>, <불한당> 정도의 영화가 전부다. (물론 이같은 영화들은 코어 팬층을 두둑히 확보했으나, 드라마판으로 이들을 옮겨오려는 시도 따위는 전무했다.) 

아마 유교걸 유교보이들이 넘치는 대한민국에서 각종 논란에 휩싸일 것을 무릅쓰고 함부로 드라마에서 동성애 코드를 다루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편당 몇십억은 기본으로 들어가는 마당에 굳이 위험부담을 안고 갈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MBC에서 단막극으로 브로맨스 사극 <형영당일기>를 제작한다는 기사가 나자마자 각종 기독교 단체 및 호모포비아들이 몰려들어 제작을 취소시킨 일도 있었다. 2020년이 되어서야 첫 공식 BL드라마가 대한민국에서 탄생했지만 숏폼에다가 웹드라마에 불과하다. 이처럼 특히 드라마에 더욱 까다로운 잣대가 들이밀어지는 것은 드라마에 비해 영화가 보다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는 분위기도 이에 한몫하리라고 본다. 


이와 달리 <진정령>은 원작 소설인 <마도조사> 속의 BL 코드를 작품 내내 은근하게 끌고간다. 

애절하고 슬픈 스토리라인에 잘생긴 남주 둘의 애틋한 감정선까지 더해지니 여심을 제대로 공략한다. 16년동안 죽은 연인을 애타게 기다렸고 연인이 돌아온 뒤에 '함께 외나무다리를 건너 어둠으로 향하는' 순애보를 갖췄으며 심지어 외모에 능력까지 갖춘 남자? 그냥 여심 폭격기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안타깝게도 중국 당국의 검열(!)로 인해 BL 코드는 '지기애'라는 형태로 매우 순화되었고 이 탓에 스킨십이나 로맨틱한 대사 등 연인 관계임을 암시하는 장면들은 전혀 들어가지 못한 것은 아쉬운 지점.

최근에 썼던 글에서 말한 것과 같이, 그야말로 "사회주의 브로맨스"다.

준비되지 않은 광총 앞에 성큼 다가온 BL드라마...

그러나 한편으로는 검열이 <진정령> 열풍의 한 축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제작진의 피나는 노력으로 정말 '은-근-하게' 풍기는 로맨스의 향기가 작품의 최대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오히려 이것이 시청자의 아쉬움 섞인 열광과 집착을 불러일으킨다. 이 드라마가 '트친도둑'으로 소문난 데도 이것이 주요하다. 원작에서 시청자가 기대하는 많은 것들이 트위터 상에 2차 창작물로 존재하기 때문. 

또 주인공들이 주고받는 암시 가득한 대사나 애틋한 눈빛은 절절함을 극대화하는 맛까지 더한다. (키스신 한 번 없던 <미스터 션샤인> 이 오히려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처럼)

게다가 BL 코드를 드러내지 않은 덕에 이에 거부감이 있을 수 있는 다른 시청층까지 잡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


서사 맛집 + 탄탄한 캐릭터성

무엇보다 <진정령>은 스토리와 캐릭터라는 드라마의 기본에 충실하다.

물론 원작의 힘이 가장 주요하다. 네 권 분량의 장편소설이지만, 엔딩까지 연속되는 반전과 섬세한 디테일이 모여 단단한 서사 구조를 이룬다. 선악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는 현대적인 톤과, 각 인물의 서사가 각자의 캐릭터성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개연성 역시 매력적이다. 


작중 두 남주는 이야기의 각기 다른 축을 담당한다. 

위무선은 서사를, 남망기는 감정선을 이끌어나간다. 이 둘의 시선을 따라 시청자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각 인물과 그들의 관계가 변화해나가는 과정을 함께한다. 즐거웠던 일장춘몽이 끝난 뒤 불어닥친 세상 풍파 속에서 위무선이 겪는 고난에 슬퍼하고, 동시에 그와 함께 아파하고 때로는 선악을 고민하는 남망기의 감정선을 따라가니 자연스레 시청자의 몰입감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일명 '과몰입 오타쿠'들의 양성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꼬일대로 꼬인 잔인한 운명과 이를 뒷받침하는 각 인물별 서사, 애틋한 로맨스 등 다양한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스토리 라인부터 매력적인데, 여기에 메인 남주 둘의 시선을 통해 감정까지 극대화된다. 섬세한 디테일과 애절한 음악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현생을 갈아 넣어' 덕질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나 뒤로 갈수록 비밀과 감정들이 드러나면서 볼 때마다 새로운 드라마, 보고 또 봐도 보고싶게 만드는 드라마로 변모한다. 매 회차마다 다음 에피소드를 위한 복선이 한가득 깔려있어, 처음에는 맛만 보다가 결국 나중에 N차 감상하면서 씹고 뜯고 즐기는 재미는 덤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1-2화의 경우 처음 볼 때, 33화 이후 다시 볼 때, 50화까지 다 봤을때의 감상이 전부 다른 기적이 일어난다. 모든 장면 하나 하나가 떡밥이고 복선임을... 아아 그 때는 알지 못했네..) 


무엇보다 <진정령> 서사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사극이라는 장르 특성에서 온다. 

현대극의 인물들은 주로 애정, 탐욕, 복수심 등 개인의 욕망에 따라 행동한다. 겪을 수 있는 비극 역시도 중요한 소수의 죽음, 금전적 몰락, 정서적 결핍 정도(?)가 다이다. 

그러나 사극은 다른 결을 띤다. 단순한 욕망부터 명분, 충성, 신분 등 인물의 행동을 결정하거나 제약하는 요소들이 훨씬 다채롭다. <진정령>의 남망기 캐릭터가 고민하는 것 역시 정도와 사도라는, 지극히 무협 사극적인 문제다. 또 현대 정보 기술도 없으니 오해가 쌓이기도 쉽고 음모에 빠지기도 쉽다. 죽음이나 몰락의 스케일 역시 훨씬 크다. 궁중암투물, 무협물에서는 결말에 주인공 홀로 남거나 아니면 다 죽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진정령>의 경우 주요 인물 27명 중 오직 11명만이 살아남는다.)

그야말로 '짠내나는' 서사가 쌓이기 딱 좋은 환경이다. 당연히 현대극에 익숙한 시청자에게는 이것이 새로운 자극으로 작용한다. 



분명 이 세 가지 말고도 이 드라마의 매력은 끝도 없다. 

찰떡 같은 캐스팅하며, 연기력에 더해지는 애절한 OST 역시 현생 갈기 딱 좋은 포인트.

사실 위의 분석글이야 지극히 드라마 제작자 입장에서 쓴 것이고, 잘생긴 남자들이 한 트럭 몰려나와 가문 대결을 핑계로 미모 대결을 하고 있는데 어찌 보지 아니할 수 있겠느냐만은...

* TMI: 실제로 주연을 맡은 샤오잔과 왕이보는 엄청난 케미로 아직까지도 현실 CP를 밀고있는 팬들이 한 트럭.

그러니까 저는 N차 감상하러 가겠습니다. 


한 줄 감상평 : 운심부지처 문하생은 나야나! 나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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