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찍한 이코노미클래스
대구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관문은 '서울역'밖에 없는 줄 알았다.
1980년대, 대학을 다니느라 첫 서울 생활을 시작할때는 늘 통일호 열차를 타고 서울을 오갔다.
가끔은 입석도 땡큐였던 시절.
그 때는 서울역을 통과해야만 서울에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내게 서울역이란 마치 해리 포터의 9와 3/4 플랫폼 같은,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는 유일무이한 연결고리 같은 느낌이었다.
타향살이가 조금 만만해지고 문리가 트이고 보니 교통편은 다양했더랬다. 고속버스도 있고 자동차를 타도 되고 비행기도 있고 아마 배편도 있겠지.
우리나라에서 외국으로 나가려면 배를 타지 않는 한 무조건 공항을 통과해야한다.
인천공항 게이트로 향하는 좁고 기다란 통로에 들어서면 늘 다리가 허공을 딛듯이 허둥거리고 엇갈리며 스텝이 꼬인다. 여권과 비행기 티켓을 손에 들고서도 매 번 '잠시 검문있겠습니다'로 출국이 저지될 수 있다는 이 실체없는 두려움.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이려나. 아니면 지은 죄가 많은가.
공항 검색대도 무사히 통과, 지문인식도 통과, 만사형통 무사히 통과, 그럼 그렇지, 나의 두려움은 실체가 없는 것이야, 어깨 쫙 펴고 발랄하게 나가는데 딸이 지문인식에서 걸려서 못나오고 있다.
직업의 특성상 손가락 지문이 닳아서 종종 지문인식에서 걸리는데, 몇 번 겪고보니 미리 마음의 준비가 되어서 딸은 그닥 놀랍지도 않은 듯하다. 아주 해탈한 표정이다.
별도의 장소에서 별도의 통과의례를 거치는데 몇 분 걸리지도 않는다.
밤 0시 20분에 출발하는 터키항공은 붐볐다. 짐칸에 짐 올리느라 통로를 막은 사람과 지나가는 사람들로 좁은 이코노미석은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비행기 안을 샅샅이 돌아볼 수는 없다만 눈에 보이는 모든 좌석이 꽉꽉 들어차고 있었다.
딱 한 자리만 빼고.
딸과 둘이서 비행기 좌석을 미리 지정할 때 무엇보다 개인의 취향과 실리를 따졌다.
구석자리에 콕 박혀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창쪽, 이도 닦아야 하고 화장실도 다녀야 하는 딸은 복도쪽.
그럼 가운데 자리는? 누군가 앉겠지.
둘이 가는 여행에 타인과 더 가까이 앉는 이상한 포지션이다만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것이 좋다.
근데 말이지, 비행기에 사람과 물건이 꽉꽉 들어차는 와중에도 가운뎃 자리는 어매니티만 달랑 올려져있고 끝내 비어있었다. 비행기가 육중하게 이륙하는 그 순간에도.
비행기가 이륙하고서야 딸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부정탈까봐 이륙전까지 꾹 참고 있었던 진한 하이파이브.
그리하여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당연히 의도가 않된다) 인천공항에서 이스탄불까지 가는 10시간의 비행동안 둘이서 비행기 좌석 세 칸을 차지하는 호사를 누렸다.
오호라, 첫 출발이 이리 좋으니 이번 여행은 더더욱 기대만땅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