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맛없는 피자는 없다 _ 모터시티 편
저한테 ‘피자’라는 음식이 그래요. 때로는 지친 하루 끝에 충전이 되기도 하고, 언제는 버거웠던 하루를 보낸 나를 위로해주기도 해요. 무엇보다 방금 나온 따뜻한 피자를 한입 베어 물 때의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요. 이 세상에서 저한테서 피자를 대신할 음식은 아직까진 제가 아는 한 없는 것 같아요.
누구나 나에게 ‘피자’ 같은 존재를 하나쯤은 가슴속에 갖고 살지 않을까, 그게 무엇일까, 어떻게 위로받을까, 그런 얘기를 전해보려고 합니다. 친구들과 함께 피자를 먹으러 간다는 얘기를 이렇게 주저리 길게 합니다.
_1st station. @motorcitykorea
_1st friend. @soobings
7년 차 객실 승무원. 내가 이 친구를 보면 늘 이런 생각부터 들었다. ‘얘는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건가..?’ 늘 움직이는 친구였다. 시시각각 시차가 변하고, 매일 낮과 밤이 바뀌는, 지칠 수밖에 없는 환경... 그럼에도 이 친구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 친구는 6년 전, 21살의 4월에 입사를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나타나기 전까지 꾸준히 비행을 했다. 그러면서 쉬지 않고 움직이며 채워가는 하루들. 나는 이 친구의 하루가 궁금했다.
#ryun : 너 이것저것 많이 하더라. 한번 쭉 얘기해주면 좋겠다.
#soobin : 나? 이것저것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사실 그런 건 아니야.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모든 사람에게 같은 시간과 기회가 주어지는데,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다른 경험과 결과가 나온다’ 뭐 이런 말이야. 그래서 되도록이면 시간을 낭비하려고 하진 않으려고 해.
나 흥 많잖아. 그래서 춤을 배우기도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주일이면 교회에서 반주를 하기도 해. 요즘은 영어학원도 다니고 있어. 어렸을 땐 그림을 그렸거든. 그래서 가끔 그림을 그리기도 해. 아무튼 내가 가장 빠져있는 건 아무래도 사진 같아.
#ryun : 맞아, 네가 찍은 사진만 올리는 계정도 있잖아 (@bysoobings ). 그리고 오빠 가게 영상도 찍어줬잖아. 어쩌다 시작하게 된 거야?
#soobin : 비행을 가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있잖아. 보통 팀 선후배들이랑 투어를 다녀. 그때마다 사진은 내가 찍었어. “수빈이 사진 잘 찍어” 이런 얘기를 많이 듣게 되더라. 거기서 시작했던 것 같아. 배운 게 없으니까, 유튜브 찾아서 카메라를 공부했어. 조리개, 빛 같은 것들. 좋아하는 작가들의 사진을 찾아보기도 하고… 그렇게 지금까지 찍고 있는 것 같아. 영상은 정말 그냥 찍어 본거야...
#ryun : 사진을 찍기 시작하고, 달라진 게 뭐가 있어?
#soobin : 오빠가 어디 멀리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피자를 먹으러 지방까지 다녔잖아. 나는 그래. 비행을 7년째 하고 있잖아. 그러다 보니 4년 차쯤인가, 사실 어디를 가도 다 똑같다는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었어. 그러다 보니 나가는 게 귀찮고, 피곤한 일이 되어버리더라. 그런데 '사진이나 찍을까?’ 하며 카메라를 챙기고 길을 나서기 시작했는데, 그게 내게 찾아온 권태 아닌 권태로움을 극복하게 해 줬어.
#ryun : 승무원으로 보내고 있는 7년은 어땠어? 괜찮았어?
#soobin : 사실 난 처음부터 승무원이 될 생각이 없었어. 어렸을 때, 그림을 그렸다고 했잖아? 고등학교 때, 연필보다는 붓을 잡는 게 좋았어. 그렇지만 내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거든. 그런데 열여덟, 열아홉이 뭘 알겠어. 옆에서 잘한다고 하니까 미대 준비를 했는데, 대학을 다 떨어진 거야. 그래서 차선으로 선택했던 게 승무원이었어. 기대가 없었어. 그거 알아? (승무원이 되는 순간) 오히려 내 미래가 정해진 기분이었어.
일이 힘들진 않아. 아니, 몸은 힘든데 마음은 힘들지 않아. 몸이 상하는 것만 아니면 오래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아. 서비스업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승무원들 정말 한 명도 빠짐없이 손목, 허리, 발목 중에 하나는 다 아파. 나도 손목 수술을 했었어. 계속하고 싶은데, 건강을 생각하면 조금 망설이게 되는... 아무튼 그래.
#ryun : 뻔한 질문인 거 아는데, 잊지 못하는 기억이 있을까?
#soobin : 기내에서 테이저 건을 쏘는 일도 있었고, FBI도 만났어. 좋은 기억은 아니었는데, 신기했어. FBI랑 인터뷰를 하는데 통역을 불러준다는 거야. 그런데 내가 그랬어.
‘노땡큐! 나 통역 필요 없어. 할 수 있어. 그리고 나 너네 TV에서만 보다가 실제로 보니까 반가워.’
이건 정말 신기했어. 돌이켜봐도 생생하다. 뭔가 뻔한 대답은 하기 싫어서 이 얘기를 했는데, 좋은 기억들도 많아. 물론, 나쁜 기억도 그만큼 많고…
#ryun : 언제까지 계속할 것 같아. 승무원이 아닌 이후의 삶을 생각해봤어?
#soobin : 1년 전에 누가 나한테 꿈이 뭐냐고 물었는데, 나 대답을 못했었어. 그래서 작년 한 해를 "내 꿈은 뭐지?”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고 살았다? 그러고 1년이 지났고, 최근에 영어학원을 다니잖아. 학원에서 스무 살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또 묻더라? "누나는 꿈이 뭐예요?” 나 1년 전과 똑같이 대답을 못했어. 웃기지. 근데 그 친구가 그러더라.
“저는 상 받으면 소감 얘기할 때, 주기도문만 하고 내려올 거예요.”
아차 싶더라. 내 꿈을, 살아가는 목적을 찾겠다고 했던 내 다짐을 잊고 있었던 게.
나 그냥 그렇게 살고 싶어. 승무원을 계속 하든, 다른 일을 하든. 누군가가 “넌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 세상에 재미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왜 안 해?”라고 물어봤을 때, “나 하나님 믿어서”라고 망설이지 않고 얘기하며 살고 싶어. 승무원을 언제까지 계속할지는 모르겠어. 그렇지만 승무원이 많이 베풀 수 있는 직업이잖아. 번거로울 때가 없진 않은데, 되도록이면 많이 베풀면서 일을 하고 싶어.
이 친구를 만나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이 친구는 또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했고,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전히 부지런히 움직이며, 자신에게 주어지는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친구의 에너지가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조금이나마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로소 작은 첫걸음을 내디딘 기분입니다. 제가 전하는 이야기들이 어떻게 전개될지, 어떻게 발전할지는, 저로서도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만나고, 조금 더 써 내려가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긴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터시티는 왜 디트로이트 피자를 팔기 시작했을까? 1편 보러 가기
모터시티는 왜 디트로이트 피자를 팔기 시작했을까? 2편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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