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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n Sep 04. 2020

모터시티에서 만난 7년 차 승무원의 부지런한 하루들

지구에 맛없는 피자는 없다 _ 모터시티 편

저한테 ‘피자’라는 음식이 그래요. 때로는 지친 하루 끝에 충전이 되기도 하고, 언제는 버거웠던 하루를 보낸 나를 위로해주기도 해요. 무엇보다 방금 나온 따뜻한 피자를 한입 베어 물 때의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요. 이 세상에서 저한테서 피자를 대신할 음식은 아직까진 제가 아는 한 없는 것 같아요. 


누구나 나에게 ‘피자’ 같은 존재를 하나쯤은 가슴속에 갖고 살지 않을까, 그게 무엇일까, 어떻게 위로받을까, 그런 얘기를 전해보려고 합니다. 친구들과 함께 피자를 먹으러 간다는 얘기를 이렇게 주저리 길게 합니다.



지구에 맛없는 피자는 없다.

_1st station. @motorcitykorea 

_1st friend. @soobings


7년 차 객실 승무원 임수빈 양

7년 차 객실 승무원. 내가 이 친구를 보면 늘 이런 생각부터 들었다. ‘얘는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건가..?’ 늘 움직이는 친구였다. 시시각각 시차가 변하고, 매일 낮과 밤이 바뀌는, 지칠 수밖에 없는 환경... 그럼에도 이 친구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이 친구는 6년 전, 21살의 4월에 입사를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나타나기 전까지 꾸준히 비행을 했다. 그러면서 쉬지 않고 움직이며 채워가는 하루들. 나는 이 친구의 하루가 궁금했다.



#ryun : 너 이것저것 많이 하더라. 한번 쭉 얘기해주면 좋겠다.


#soobin : 나? 이것저것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사실 그런 건 아니야.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모든 사람에게 같은 시간과 기회가 주어지는데,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다른 경험과 결과가 나온다’ 뭐 이런 말이야. 그래서 되도록이면 시간을 낭비하려고 하진 않으려고 해.


주일이면 교회에서 반주를 하는 임수빈 양

나 흥 많잖아. 그래서 춤을 배우기도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주일이면 교회에서 반주를 하기도 해. 요즘은 영어학원도 다니고 있어. 어렸을 땐 그림을 그렸거든. 그래서 가끔 그림을 그리기도 해. 아무튼 내가 가장 빠져있는 건 아무래도 사진 같아.



#ryun : 맞아, 네가 찍은 사진만 올리는 계정도 있잖아 (@bysoobings ). 그리고 오빠 가게 영상도 찍어줬잖아. 어쩌다 시작하게 된 거야?


이 친구가 작업물을 올리는 소셜 계정 @bysoobings


#soobin : 비행을 가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있잖아. 보통 팀 선후배들이랑 투어를 다녀. 그때마다 사진은 내가 찍었어. “수빈이 사진 잘 찍어” 이런 얘기를 많이 듣게 되더라. 거기서 시작했던 것 같아. 배운 게 없으니까, 유튜브 찾아서 카메라를 공부했어. 조리개, 빛 같은 것들. 좋아하는 작가들의 사진을 찾아보기도 하고… 그렇게 지금까지 찍고 있는 것 같아. 영상은 정말 그냥 찍어 본거야...

이 친구가 찍은 사진들

#ryun : 사진을 찍기 시작하고, 달라진 게 뭐가 있어?


#soobin : 오빠가 어디 멀리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피자를 먹으러 지방까지 다녔잖아. 나는 그래. 비행을 7년째 하고 있잖아. 그러다 보니 4년 차쯤인가, 사실 어디를 가도 다 똑같다는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었어. 그러다 보니 나가는 게 귀찮고, 피곤한 일이 되어버리더라. 그런데 '사진이나 찍을까?’ 하며 카메라를 챙기고 길을 나서기 시작했는데, 그게 내게 찾아온 권태 아닌 권태로움을 극복하게 해 줬어.

이 친구가 찍은 사진 2



#ryun : 승무원으로 보내고 있는 7년은 어땠어? 괜찮았어?


#soobin : 사실 난 처음부터 승무원이 될 생각이 없었어. 어렸을 때, 그림을 그렸다고 했잖아? 고등학교 때, 연필보다는 붓을 잡는 게 좋았어. 그렇지만 내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거든. 그런데 열여덟, 열아홉이 뭘 알겠어. 옆에서 잘한다고 하니까 미대 준비를 했는데, 대학을 다 떨어진 거야. 그래서 차선으로 선택했던 게 승무원이었어. 기대가 없었어. 그거 알아? (승무원이 되는 순간) 오히려 내 미래가 정해진 기분이었어.

취미로 그리는 그림들(영화 포스터를 그리곤 한다고 전했다)


일이 힘들진 않아. 아니, 몸은 힘든데 마음은 힘들지 않아. 몸이 상하는 것만 아니면 오래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아. 서비스업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승무원들 정말 한 명도 빠짐없이 손목, 허리, 발목 중에 하나는 다 아파. 나도 손목 수술을 했었어. 계속하고 싶은데, 건강을 생각하면 조금 망설이게 되는... 아무튼 그래.


#ryun : 뻔한 질문인 거 아는데, 잊지 못하는 기억이 있을까?


#soobin : 기내에서 테이저 건을 쏘는 일도 있었고, FBI도 만났어. 좋은 기억은 아니었는데, 신기했어. FBI랑 인터뷰를 하는데 통역을 불러준다는 거야. 그런데 내가 그랬어.


‘노땡큐! 나 통역 필요 없어. 할 수 있어. 그리고 나 너네 TV에서만 보다가 실제로 보니까 반가워.’


이건 정말 신기했어. 돌이켜봐도 생생하다. 뭔가 뻔한 대답은 하기 싫어서 이 얘기를 했는데, 좋은 기억들도 많아. 물론, 나쁜 기억도 그만큼 많고…



#ryun : 언제까지 계속할 것 같아. 승무원이 아닌 이후의 삶을 생각해봤어?


#soobin : 1년 전에 누가 나한테 꿈이 뭐냐고 물었는데, 나 대답을 못했었어. 그래서 작년 한 해를 "내 꿈은 뭐지?”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고 살았다? 그러고 1년이 지났고, 최근에 영어학원을 다니잖아. 학원에서 스무 살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또 묻더라? "누나는 꿈이 뭐예요?” 나 1년 전과 똑같이 대답을 못했어. 웃기지. 근데 그 친구가 그러더라. 


“저는 상 받으면 소감 얘기할 때, 주기도문만 하고 내려올 거예요.” 

아차 싶더라. 내 꿈을, 살아가는 목적을 찾겠다고 했던 내 다짐을 잊고 있었던 게.

 

나 그냥 그렇게 살고 싶어. 승무원을 계속 하든, 다른 일을 하든. 누군가가 “넌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 세상에 재미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왜 안 해?”라고 물어봤을 때, “나 하나님 믿어서”라고 망설이지 않고 얘기하며 살고 싶어. 승무원을 언제까지 계속할지는 모르겠어. 그렇지만 승무원이 많이 베풀 수 있는 직업이잖아. 번거로울 때가 없진 않은데, 되도록이면 많이 베풀면서 일을 하고 싶어.



이 친구를 만나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이 친구는 또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했고,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전히 부지런히 움직이며, 자신에게 주어지는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친구의 에너지가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조금이나마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로소 작은 첫걸음을 내디딘 기분입니다. 제가 전하는 이야기들이 어떻게 전개될지, 어떻게 발전할지는, 저로서도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만나고, 조금 더 써 내려가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긴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터시티는 왜 디트로이트 피자를 팔기 시작했을까? 1편 보러 가기


모터시티는 왜 디트로이트 피자를 팔기 시작했을까? 2편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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