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 Commonday = Everyday
대행사를 시작하고 8개월이 지났습니다. 13억이란 성적표를 받았지만, 버는 것보다 나가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제대로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도 데뷔 시즌에 기대 이상의 성적표를 받은 것 같습니다.
아무튼 '해가 바뀌는 게 뭐라고 다들 그렇게 다짐들을 하는지'라고 생각하면서 나 또한 같아서 부지런히 쓰자는 마음을 적게 먹어봅니다. 달리느라 보지 못한, 이미 놓쳐버린 22년을 쓰면서 잡아볼까 합니다. 기억은 남았지만 감정은 지나가버린 게 아닐까 걱정이 되지만, 뭐 어쨌든 시작해 봅니다.
모든 일은 3월과 4월 사이 그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은샘을 만난 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고 해도 좋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내게 '귀인'이라고 부르는 그룹에 속해있다.
배럴에서 apr의 널디로 이직한 조은샘 대리를 만났다. 주머니에 담배 대신 캔따개를 들고 다니고, 푸딘코를 맹신하는 그녀(지금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다)와 밥을 먹고 한강에 갔다. 적당히 쌀쌀한 날씨였고, 대충 어떤 일을 하고 싶고,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하다는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그 대화가 남았는지 혹은 달리 대안이 없었는지 머지않아 연락이 왔다.
사업자도 없던 선데이워커스의 첫 일이었다. 과천 꿀수박, 리헤이, 김희연, 아도라까지 네 명의 아티스트와 작업을 했고, 두 차례의 룩북 촬영을 했다. 당시 그녀와 나는 새벽 두 시 세시까지 줌이든 통화든 가리지 않으며 촬영을 준비했었다. 어떤 의미론 단순히 친구나 전우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겪어 본 클라이언트 가운데 가장 까다롭고 옷 주름에 예민한 조은샘 대리와의 작업은 꼼꼼하지 못한 나에게 꼼꼼함을 남기지 않았을까. (더 많은 것을 배웠지만 널디 얘기만 할 수는 없으니까 패-쓰)
롯데백화점 마케팅 기획팀과 3년째 더뉴그레이의 일을 하고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촬영 얘기를 하기 위해 소공동의 본점으로 들어갔다.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셨다. 자리가 끝나갈 때쯤 한다희 책임님(롯데는 과장을 책임이라고 부른다)의 테니스 팝업스토어를 해야 한다는 혼잣말 같은 고민을 나는 놓치지 않고 잽싸게 물었다.
그렇게 마른하늘에서 기회가 생겼다. 단과 봄에게 전화를 걸었다. 돌이켜보면 이런저런 사람들이 많이 떠올랐던 것 같은데 내 전화가 향한 곳은 단과 봄이었다.
늘 이런 식이다. 전화 한 통에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일을 한다], 핸들과 규칙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몇 안 되는 규칙 중 하나다. 이 전화 한 통이 앞으로 나의 인생을 돌이킬 수 없게 바꾸게 될 줄은 당시엔 정. 말. 몰랐다(당연히 비딩에서 탈락할 줄 알았으니까).
믿지 못하겠지만 포트폴리오도 없고, 경험도 없이 배짱 하나로 참여했던 생애 첫 비딩에서 우리는 첫 승리를 거머쥐었다. 데뷔전에서 9이닝 무안타 무실점 완봉승을 거둔 기분이었다. 비딩 자료를 제출하고, 떨어지면 실망하고 낙담할 친구들이 걱정되어 "떨어져도 괜찮다, 즐거웠잖아 맞제?"를 반복했던 기억이 난다.
선데이워커스와 커먼데이스튜디오의 첫 프로젝트 '더코트(the court)'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후 롯데와는 크리스마스 마켓 팝업스토어와 반려동물 관련 촬영을 진행했고, 지금은 반려동물 관련 프로젝트 비딩을 준비하고 있다.
핸들 없이 살아온 인생의 몇 안 되는 규칙(규칙이 생각보다 많구나..?)이 또 하나가 있다. "눈앞의 것에 있는 힘을 다한다. 되도록이면 기대하지 않는다."인데, 결과는 대체로 따라오고(당장이든 나중이든), 무엇보다 후회나 아쉬움 같은 감정들로 내 마음이 혼란하지 않았다. 아무튼 지금은 더코트(the court) 덕분에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한다.
그나저나 롯데는 어떻게 우리를 선택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120평 공간을 하루 만에 채우고, 10일을 운영해야 하는 코로나 이후 처음인 대규모 행사를 아무것도 없던 우리를 어떻게 믿고 선택했을까. 다시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다. 올해에는 꼭 물어봐야지.
대학교에서 미식축구를 함께 했던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덕분에 르꼬끄를 만났다. 첫 미팅하고 프로젝트의 오픈까지 3주가 조금 넘게 걸렸던 것 같다. 모든 상황이 타이트했던 프로젝트라 한 달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랐다(지금도 모르겠다 땀을 무지하게 흘린 기억이 난다). 직접 자재를 나르고 공간을 채웠다.
타이트한 일정, 야외 공간, 0이 하나 작은 규모의 일에 대한 경험이 우리에게도 필요했기 때문에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일도 일이지만 적어도 나에게(팀은 모르겠지만) 르꼬끄는 사람을 얻은 프로젝트였다. 우당탕탕과 투닥을 함께 한 민태홍 프로님 뿐만 아니라 이광섭 프로님, 석정현 총괄님, 김소연 팀장님 등 모두가 좋았다.
WTA KOREA OPEN 테니스 대회에서 르꼬끄의 부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달 촬영을 함께 했고, 지금은 상반기 새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시멘트 벽돌 수백 장을 나르며 비 오듯 땀을 흘렸는데, 어느새 눈을 맞으며 현장 답사를 다니고 있다. 시간이 이리도 빨라도 되는 건가.
1년, 아니 8개월이 이렇게 지나갔다. 당시의 몇몇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좋은 쪽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거면 됐지 않은가. 선데이워커스와 커먼데이스튜디오를 지나 지금은 데이데이(Dayday)가 되었다.
어느새 1월 6일이다. 마음을 먹고 쓰기까지 5일에 걸렸다. 부디 쓰는 습관이 생겼으면 좋겠다.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