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 COMMOMDAY = DAYDAY
설 명절에도 사무실에 나와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이 낯섭니다. 출석률이 낮은 저는 딱히 느껴본 적이 없는 기분입니다. 기본적으로 저라는 인간은 계획성이 없습니다(극적으로 치우친 P니까요). 군대 이후로 조직생활을 해본 적이 없고요. 계획과 규칙 이런 것들이 대체적으로 없게 태어난 데다가, 그런 게 발달될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대행사? 디자인 스튜디오? 에이전시? 데이데이를 어떤 회사라고 불러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찾아가고 있지만, 되도록이면 오랜 시간 이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저만 그런 거 아니겠죠?).
오늘 써 내려갈 이야기를 사진 한 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INFP(내) 멱살 끌고 전진하는 ENTJ(단과 봄).
단은 나의 중학교 친구고, 봄은 단의 아내다. 둘은 각자 22살과 20살에 만나 6년 연애 끝에 부부가 되었다. 봄이가 올해 서른이 되었으니 나도 무려 10년을 본 셈이다. 내 기억에 둘은 늘 치밀한 계획이 있었고, 변수를 두는 것을 지양하고, 살아감에 있어서 '그냥'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는 종류의(나로서는 갑갑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둘의 결혼식 전날 서면에서 새벽까지 놀다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살짝(삼분?) 늦게 되었고, 그 덕분에 나는 4년째 친구 결혼식 늦은 나쁜 새ㄲ로 그들에게 남아있었다. 전화 한 통(정말 모든 게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된다)으로 둘을 만나고 대책 없이, 계획 없이, 닥치는 대로 살던 내 세상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일단 나는 쭉 노마드로 살았다. 혼자 일하는 게 편하고, 내 리듬대로 일을 하는 게 익숙함을 넘어 디폴트가 되었다. 왼손으로 밥을 먹는 것처럼.
더코트(The Court)라는 테니스 팝업스토어를 준비할 땐 사무실이 없었다. 프로젝트를 위해 모인 팀이기도 했고, 당시엔 나도 단봄별도 다 각자의 계획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줌(Zoom)으로 만나고, 카페에서 만나면서 더코트를 준비했다. 한창 코로나로 인한 통금도 여전히 존재할 때라 비딩 자료 제출 전날엔 맹그로브 신설에서 하루를 묵었다.
비딩이 끝나고, 더코트라는 프로젝트가 우리의 일이 되고, 단과 봄은 사무실을 구하자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함께 공간을 공유하는 정도의 사무실을 구하자고 했다. 더코트 이후에도 우리가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생길지, 그때의 우리는 알 수 없었으니까.
아무튼 사무실을 구했다. 매물을 알아보는 것도, 예산을 정하는 것도, 일정을 정하는 것도, 인테리어를 하는 것도 전부 다 단과 봄이 했다. 부동산 계약을 하는 날까지도 매물을 보러 가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둘에겐 그런 종류의 신뢰가 있었다. 내가 아무리 꼼꼼해봤자 둘의 반도 못 따라간다는 것쯤은 나도 아니까.
아무튼 더코트 철거를 끝내고 7월 한 달을 사무실 인테리어를 하며 보냈다. 직접 벽지를 뜯고, 페인트 칠을 하고, 천장에 폴리카보네이트를 설치하고, 천장에도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뭔가를 발랐다. 더코트 집기로 제작했던 행거 다리를 잘라 책상으로 만들었고, 벤치 세 개를 연결해 선반을 만들었다. 땀으로 팬티까지 적셨다.
내 자리가 생긴다는 사실은 두근거림 뿐만 아니라 갑작스러운 이질감도 함께 찾아왔다. 일사불란하게 모니터와 각종 물품들을 챙겨 오고 자리를 잡아가는 단봄별과 달리, 나라는 인간은 한두 달이 지날 때까지 맥북밖에 없었다. 쫓긴다는 생각이 온몸을 지배했었던 시절이었다. 아무튼 드디어 내 자리가 생겼다.
함께 일한다는 건, 혼자 해왔던 나에게 적지 않은 혼란을 주었다. 이런 표현이 적합한 설명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발가벗어야 했다. 발가벗는다. 내 사생활도 공유가 되어야 하고, 내 생각도 공유가 되어야 하고, 어떤 행동에 대한 설명도 필요로 하는 상황을 빈번하게 마주하게 되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발가벗는 기분이 들었다.
그 벗겨지는 기분(?)이 함께 해야 하는 상황을 자꾸 회피하게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긴밀해지는 과정이었는데, 보이지 않는 경계를 무너뜨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친구들은 밤에 일하고 아침에 자던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며칠씩 기절을 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기다려 준 나보다 성격 급하고 인내심 없는 친구들이 새삼 대단해 보인다.
개인적으론 비교적 최근까지 합과 호흡을 맞추는 데에 많은 에너지(정.말.많.은.)를 쏟았다. 아니 에너지를 빼앗겼다,라고 말하는 게 맞는 것 같다. 통제하지 않아야 안정감을 느끼는 타고난 성격부터 뜯어 고쳐야했으니까.
요약하자면, 함께 일 한다는 건.
상대의 속도에 나의 속도를 맞춰야 한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이 공유가 되어야 한다.
보다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여자친구보다 긴밀해져야 한다.
친구들아 기다려줘서 이해해 줘서 고마워.
2023년이 한 달이 지나간다. 점점 갖추어간다는 느낌이 든다. 커먼데이와 선데이가 만나 데이데이가 되었고, 각자의 명함을 다시 만들었다. 각종 계약서를 주고받을 서류봉투에 붙일 스티커를 만들고, 각종 프로젝트에 주고받는 데이터를 함께 공유할 서버를 만들고 있다. 회사의 비전과 목표를 이야기하고 있다.
4명이서 4개에서 5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진행 중이고, 마무리하면서, 내실을 다지고 있다. 쪼개고 쪼개고 쪼개어 사는 넷이 모여서 다행히 모든 걸 해내고 있다.
8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얘기하는 거지만, 이제야 호흡이 맞아떨어져 가는 것 같다(또 나만의 생각이니?). 그전까진 정말 위기가 많았다. 아슬아슬했다. 별과 봄은 모르겠지만 단과는 정말 많이 싸웠다.
모든 게 다 덕분이다. 모든 일이 다 운명 같다.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하고, 상상하지 못했던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생경하고, 소중하고, 소름돋는 하루들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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