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정말 위암인 줄 알았어요.
약한 아기 발차기 같던 고통이 유단자에 얻어맞은 것처럼 극심해졌다. 명치 바로 밑, 누그러지지 않는 고통이 자꾸 나를 괴롭혔다. 지금 내 앞에서는 아기가 죽음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간다. 거기에만 온 신경을 쏟아도 모자랄 텐데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자꾸 나를 무너뜨렸다. 집중해야 한다. 지금 아기의 목숨에 내 손안에 달렸다. 자꾸 되뇌며 수련의들과 간호사들에게 여러 가지 오더를 연달아 내뱉었다. 드디어, 한 고비를 넘겼다. 당장 몇 시간 후는 모르겠으나 당분간의 안정적이다. 죽음의 사신과 혈투를 펼쳤는지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는 고된 당직이 끝났다. 함께 일한 펠로우에게 연달아 문자가 왔다.
‘괜찮으세요? 밤새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어서 다들 걱정 많이 했어요.’
‘지금 괜찮으신 거죠? 그렇게 아파서 어떡해요.’
걱정 말라며 답문을 보내고 약국으로 내려갔다. 약사에게 고통을 애소해 알약 몇 알을 겨우 얻었다. 물 한 통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구세주 알약이 위에 닿았다. 내가 알고 있던 약물 동력학보다 빠르게 약효가 나타난다. 그제야 조금씩 통증이 가라앉는다. 그렇게 약물에 의지하는 병원 안팎의 삶이 이어졌다.
반년 넘게 위장약을 정량 이상으로 최대치까지 먹어보기도, 위장약이란 약은 다 먹어봤다. 그래도 통증이 멈추지 않자 이제는 죽음의 공포가 다가왔다. 의대 다닐 때도 앓지 않았던 의대생 증후군(의대생이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질병의 증상이 자신의 병이라 생각하는 병)이 이제야 찾아왔다.
‘아! 이건 암이다. 이 정도 고통에... 기간에... 말기일 수도 있겠다. 그럼 나는 죽겠구나.’
내 삶이 끝나는 것보다, 아직은 너무 어린아이들이 걱정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이 극도의 고통과 괴로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런 고통을 물러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 주치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위가 아직도 너무 아파요. 위내시경 오더해주세요.”
보통 담당의와 보험회사는 이유 없는 시술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시하기에는 통증의 기간과 그 정도가 길고 깊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동정과 의사로서의 판단력이 오묘하게 합쳐져 동의를 받아낼 수 있었다. 게다가 위암 발병률이 가장 높은 동북아시아의 자손이라는 점 또한 가산점을 받았으리라. 주치의는 두말 않고 바로 시술을 잡아주었다. 워낙 깐깐한 보험회사라 같은 의사임에도 약간의 언쟁을 예상했는데 의외로 바로 잡아주자 내 눈썹은 하늘 위로, 고개는 대각선으로 솟았다.
위암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암 중 하나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다행히 줄고 있다. 특히나 미국에서는 위암 발병률이 매년 줄고 있다. 미국에서는 50살 이상은 대장 내시경을 최소한 10년마다 권장하지만 위내시경은 특별히 위험 요소가 않는 한 권장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50살 이상은 매년 위장조영 검사를 하거나 2-3년에 한 번씩 위내시경을 권장한다. 한국인이라면 40세 이상은 2년마다 위내시경을 받아야 한다. 한국을 방문할 때면 매번 받는 종합 건강검진 중 위내시경을 수면마취 없이 받았다. 두어 번 국소 마취로 받자, 예민한 나의 고통 수용체가 점점 성을 냈다. 그래서 이번에는 수면 마취에 동의했다. 원하는 약도 직접 골라 정중히 부탁했다.
‘암 진단을 바로 알려주지는 않겠지……’
라는 생각하다 정신을 잃었나 보다. 다시 눈을 뜨자 허연 그림자가 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화기 내과 의사였다. 그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지만 내가 요청한 대로 조직검사를 했다고 알려주었다. 어떤 의학 지식도 꺼낼 수 없는 상태인 뇌가 겨우 입을 움직여 되물었다.
“그럼 나는 도대체 왜 아픈 거죠?”
입고 있던 새하얀 가운처럼 아무런 감정이 없는 얼굴로 어이없다는 듯 답했다.
“글쎄요. 위 내시경 결과는 다 정상이에요.”
무심함과 차가움이 나를 둘러싸고 있던 커튼을 뚫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자면서도 생각했다. 저 기계 같은 목소리, 나의 고통에는 손톱만큼도 없을 관심, 자신의 일인 내시경이 끝났으니 질문 따위는 하지 말라는 듯한 눈초리. 참 싫었다. 나의 안위는 생각조차 않는 사람이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내 목구멍 쑤셨다는 게 왠지 소름 끼쳤다.
다른 소아기내과 의사들은 무척이나 다정하고 친절할지도 모른다. 내 주변의 내과 의사들도 다 좋은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그들과는 달리 냉담한 의사를 만났다. 시술이 목적이었으니 그는 시술 결과를 알려준 것으로 임무를 마쳤다. 어쩌면 바쁜 시술이 많이 남아 있어 시간이 촉박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개인적인 일로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었을지도. 하지만 무감각한 그의 태도에 나는 한없이 작아진 것만 같았다. 혹시라도 나도 질문을 하는 아기 가족에게 쌀쌀맞게 군 적은 없었을까. 매정한 태도로 그들을 묵살해버리지는 않았나. 다시 한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매일 병원에서 주체적인 의사로 일하며 시술을 하다, 갑자기 시술을 받는 대상이 됐다.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물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물체가 질문을 하자 주체는 나를 침묵시켰다. 마치 나란 존재는 이 병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아니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듯이.
나는 내 말문을 약간의 타의와 대부분의 자의로 닫았다. 하나 나의 환자인 아기는 어떠한가. 시술 대상인 아기는 말을 할 수 없다. 만약에 아기가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면, 과연 무슨 말을 할까. 아프다고 불편하다고 제발 그만하라고 외칠까. 아니면 어서 빨리 끝내라고 재촉을 할 것인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몸소 겪고 나서야 뇌를 번뜩 깨울 칠 때가 있다. 부끄러웠다. 그동안 아기 가족들에게 늘 한결같이 따듯하게 대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바쁘다는 핑계로 질문을 집어삼키는 분위기와 태도를 보였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시술 대상인 아기들의 심정을 깊이 헤아렸는가. 매정한 의사를 만나 받은 시술 뒤 깨달음을 얻었다. 그 차가움이 무서워서 그 무심함이 몸서리치게 싫어서. 아마도 그 모멸스러웠던 경험이 조금 더 나은 의사로 만들어 주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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