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텔라 황 Aug 02. 2024

믿는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 믿었다.

“스텔라는 항상 저렇게 기분이 좋아?”

남편의 형이 물었다. 남편은 하늘은 파랗지를 말하듯 응한다.

“응, 항상 저 텐션으로 늘 기분이 좋지. 이제는 놀랍지도 않아.”

아주 오래전 남편 가족들과 함께 대만 여행을 갔을 때다. 하루종일 붙어있는데도 늘 웃음이 끊이지 않는 나를 보고 그의 형은 의아해했다. 그렇다. 나는 평균적으로 하루에 90% 이상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한다. 하다못해 집안에 큰 어둠이 덮쳤을 때도, 곧 죽을 것 같이 울었지만 다시 툴툴 털고 일어나 곧잘 웃었다. 잘 울기도 하지만 웃음도 넘치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에게 타고난 기질이 있다. 하다못해 갓난아기도 무슨 수를 써도 하루종일 우는 아기가 있는가 하면, 가만히 두어도 혼자 잘 노는 아기도 있다. 그처럼 나도 늘 기분 좋은 사람, 행복한 사람이라 여겼다. 


'사람은 원하는 만큼 행복할 수 있다.’

‘당신의 행복은 당신이 결정한다.’


주변에서 자주 보고 듣는 이런 말들도 열정적으로 신봉했다. 하여 간혹 기분이 좋지 않으면 눈을 감고 자꾸 되뇌었다.

‘나의 행복은 내가 결정하는 거야. 내 기분은 내 마음대로!’

그럼 기분이 슬슬 좋아지기도 했다. 그렇게 내 주변을 장밋빛으로 감싸던 공기가 임신 중, 또 출산 전후로 확 바뀌었다. 어디선가 스멀스멀 들어온 안개가 바닥에 깔리더니, 어느새 컴컴한 어둠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우울했다. 처음 만난 장벽이었다. 어찌할 수 없이 바닥으로 계속 급하강을 하는 기분. 둘째를 낳고 느낀 그 깜깜한 우울감은 실로 놀라웠다. 저항할 수 없는 커다란 힘이 나를 깜깜한 바닷속으로 끌고 들어가 끝도 없는 심연으로 계속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숨을 쉬고 있는데 자아는 질식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우울증의 언저리를 잠시 다녀왔다. 하지만 그 느낌이 오랫동안 계속된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본디 초 긍정적인 성격이라 그 지독한 경험은 아직도 끈끈하게 묻어있는 스티커의 혹처럼 남아있다. 다행히 그 후로는 느껴보지 못했고 결코 다시는 느껴보고 싶지 않다. 그보다 훨씬 더 깜깜한 세상이 있다는 것, 그 세상을 매초 매분 매일 느끼는 사람들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실로 마음 아픈 일이다. 나의 굳은 신념, ‘사람은 행복하기로 결심한 만큼 행복할 수 있다’는 이 경험으로 더 이상 내 머릿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쉽게 행복해지는 사람이라 살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병원에서 마주치는 죽음, 슬픔, 고통은 나를 자꾸 따라다녔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자꾸 내 몸 일부분을 베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곧 새순이 일어나듯 새살이 돋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 같던 바다 밑바닥에도 종종 볕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 몸이 아픈 아기들과 마음이 아픈 가족들을 돌볼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기를 낳고 나처럼 캄캄한 세상에서 추락하고 있는 엄마들의 마음도 쉬이 보인다. 몸과 마음이 지쳐 어두움 안에 갇혀있을 엄마들의 마음도 헤아려줄 수 있다. 그 마음을 조금을 이해할 수 있어 그들을 한번 더 안아줄 수 있다. 언젠가 내가 다녀온 그 칠흑 같던 심연의 바다 안에서 내 손길로 그들이 조금이라도 떠오를지 모르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