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프로이직러의 커리어 이야기
최근 몇 년간 자주 들었던 이야기, 그리고 최근에도 듣는 말 중에 속으로는 전혀 동의할 수 없는 멘트는
어쩜 그렇게 멘탈이 강해요?
나 같으면 진작에 멘탈 털렸을 텐데 그 원동력이 뭐냐?
마음이 참 단단한 것 같다
흔들리지 않고 다시 시도하는 게 어떻게 가능하냐?
애써 얼버무리지만 나의 속마음은 이러하다.
유리멘탈인데 안 들켜서 다행이다. 이것저것 끌리는 대로도 해보고, 마지못해 상황에 이끌려서 또 멋 모르고 어려서 그냥 해봤던 것들이 쌓이니 세상에 참 특별할 일도 사소한 일도 없더라. 그래서 많은 것을 기대하지도 않는 무덤덤한 상황 때문에 그러한 것이니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
지금 돌이켜보면 7곳의 새로운 조직과, 나라도 몇 차례 바꾸면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 상사들, 회사, 거래처, 일로 만난 사람들, 사건사고들 등등 온갖 케이스들이 집약되어 경험에 녹아들어갔더니 10년 사이클이 넘어가니 새롭게 부딪히고 경험하는 일과 사람들과의 관계의 문제점들을 이전의 경험에서 꺼내어 대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좋게 포장하면 그렇고). 또라이 불변의 법칙과 내가 회사를 만들지 않는 이상은 회사에 몸담는 이상 언제나 만나게 되는 이슈들은 이제 크게 겉으로 내색하지 않아도 스스로 주문을 잠시 되뇌면 let it go가 쉬워지는 초탈의 단계라고나 할까.
But 달라진 게 있다면 10여 년 전 꼬꼬마 시절에는 비교 대상이 없었으니 내가 당했던 그 불합리와 부조리들을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지, 스피크 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한 채 억울해하기만 했던걸 이젠 아닌 건 아니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성숙함은 조금 갖춘 것 같다. 또 겉에 보이는 이면의 화려함에 급 넘어가진 않고 판단력이 조금은 생겼나. 대화를 잠깐만 해보면 그 사람이 풍기는 뉘앙스를 어느 정도는 캐치해 내는걸 특히 동남에서 많은 삽질들을 통해 체득했다고나 할까.
뭔가 말을 뭉뚱그려서 돌려 쓴 것 같기도 한데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건 어제 재택 모드로 집 근처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오고 간 돈 많고 외국에서 좀 살다 오신 것 같은 멋쟁이 노신사와 30대+40대 직딩아저씨가 나누는 대화가 너무 잘 들려서 귀동냥하다가 문득 이런 나의 초탈한 멘털에 대해 써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대충 내용이 이렇다.
노신사 : 내가 미국에서 헤드헌터를 만났는데, 거긴 한 회사에 3년 이상 경력을 갖고 있으면 능력이 없어서 몸값을 못 올리고 커리어를 잘 못 챙긴 거라고 한다더라. 한 회사에 오래 있는 게 미덕이 아닌 세상으로 바뀌고 있는데 한국도 그런 조짐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다.
40대 직딩 : 제가 한 회사에 18년 근무하고 있는데요, 면접을 들어가 보면 요즘 지원자들은 대놓고 워라밸을 물어요. 연봉을 먼저 묻는 게 아니라. 돈 보다도 일단 자기 생활을 잘 챙길 수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걸 면접에서 물어본다는 거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또 1년 안에 그만두는 경우가 그렇게 많다더라. 그러다가 회사 생활 제대로 못할 텐데 우리랑 다르긴 다르구나 느꼈다.
그렇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고 나는 좋은 방향으로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들이 소외 꼰대라고 칭하는 윗세대의 사람도 인지하는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이러다간 다들 1인 기업, 창업하겠다고 아니면 알바로 연명하거나 캥거루족이 되는 건 아닐까 아님 젊은 사람들끼리(아니다 요즘은 젊은 꼰대도 넘쳐나더라), 모두가 디지털 노마드가 돼버리거나 플랫폼 노동자가 되거나 작가 하거나 셀러가 되거나... 쓰고 보니 방법은 많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사실 나의 기억력은 좋지 않다. 꼭 들어야 하는 것만 기억장치에 넣어 둔다. 휘몰아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정신없이 몇 년을 지내면서 메시지를 가려내는 눈치가 생긴 걸까. 명확하지 않거나 흘러 지나가는 말들을 그냥 그 자리에서 휘발시키다 보니 막 꿍하게 기억하고 싶어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나는 바쁘다.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려고 준비하고 알아보고 공부하는 것만 생각해도 타이트한데 굳이 애써 욕하면서 내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도 않다.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내가 기대하지 않는 것을 정리해 보면
화려한 사무실, 각종 링크드인을 비롯한 온라인 플랫폼들의 피드에 좋게 포장된 기업 문화에 대해 환상을 가지지 않는다.
회사원은 회사와 적당히 거리를 둬야 하고, 나의 자아성취를 회사에 기대려 하지 않는다. 나는 나고 회사는 회사다. 서로 윈윈관계가 되어야 하고 선택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연애 상대를 가리듯 체킹하고 서로 선택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세상에 못 할 일은 없다. 찾아보면 다 나온다. 누가 더 정보를 잘 찾아서 활용하냐의 시대이지 너만 할 수 있고 나는 못할 일은 없다. 때문에 한우물만 파라는 소리는 시대정신에 맞지 않다.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이제는 그리 우러러보지도 않는다.
기술의 발전으로 바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 남을지만 고민하기도 벅찬 시대인만큼 애써 내가 가지지 못한 거에 얽매이지 말자(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 최악은 그래도 4대 문 안에 나온 사람을 뽑아야 하지 않겠냐라고 개소리를 시전 했던 몇 년 전 어느 고객사 임원의 멘트와, 80년대에 대학을 나온 50대 중반의 상사가 30년도 더 지난 자기가 나온 대학교 얘길 하면서 학벌 논쟁에 불을 붙이며 열등감을 1시간 넘게 토로하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사람 관계에 힘들어하는 주변의 이야기를 듣다가 생각나서
아주아주 오래간만에 야근을 하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글감들을 잠깐 정리해본 걸 끄적여본다.
아니 벌써 1분기가 다 지나갔다. 사소한 단어 하나하나에 목숨 걸지 말자. 그리고 내가 편하고 내가 행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