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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 Apr 24. 2022

인생이 지옥처럼 느껴질 때 by 마샤 리네한

책 읽는 직장인

인생이 지옥처럼 느껴진 적이 있는가? 발버둥 쳐도 길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갇힌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은? 나만 주류의 삶에서 멀어진 것 같은 변종으로 느껴질 때는? 스스로 헤쳐 나가면서 길을 만들어 낸 순간은?


고등학교 졸업 무렵 자살 충동을 겪으며 정신병동에서 2년여의 시간을 보내고 오히려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었던 주류의 치료 시스템에 물음표를 제시하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변증법적 행동치료를 창시한 마샤 리네한의 인생 자기 독백.

500여 페이지나 되는 간만의 벽돌 책이었지만 흡입력과 자기 고백에 몰입하다 보니 나의 어린 시절과 어둠의 시절 그리고 현재 진행형인 내 길에 대한 자기반성까지 책을 통해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임상 사례를 구체적으로 나열하기보다는 오히려 DBT가 구체화되기까지의 마샤의 치열했던 삶의 궤적을 적나라하게 담아냈다는 점이 전문 용어들이 난무하는 다른 심리학 서적과 차별된다고 볼 수 있겠으며 책을 읽는 나의 시선은 주로 자신의 영역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여성 리더 그리도 지금 그대로의 나를 수용하는 Mindfulness 마음 챙김으로 향했다.



당신이 튤립이라면 장미가 되려 애쓰지 마요. 대신 튤립 정원을 찾아가세요.


끊임없는 비판,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돼야 한다는 끝없는 강요는 극단적으로 트라우마를 야기하기도 한다.


30대 중반을 넘어가며 특히 코로나를 기점으로 내가 손쓸 수 없는 새로운 상황들에 직면하면서 가진 마음가짐 중 하나가 바로 let it go. 애써 잘하려고, 돋보이려고 하고 싶지도 않고 나의 성향과 내 마음을 좀 더 들여다보는데 신경을 쓰고 있는 것과도 통하는 구절이 아닐까. 내가 싫으면 안 하면 되고 남의 속도에 맞출 필요도 없고 그저 내 일상이 잔잔하게 흘러갔으면 하는 마음의 소리를 다시 한번 다이어리에도 끄적여본다.



당신을 위로하려고 애쓰는 그 사람이 때때로 당신에게 도움을 주는 이 단순하고 평온한 말들 속에서 아무 고통 없이 편히 살고 있다고는 생각지 마십시오. 그 사람의 삶에도 수많은 괴로움과 슬픔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그 말들을 찾아내지도 못했을 겁니다.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인용한 문구로 구절에 담긴 심정이 치료사로서 그들이 하는 일에 꼭 들어맞는다고 생각해 매년 졸업식마다 졸업생들과 연구원들에게 이 문구 사본을 액자에 끼워 선물한다고 한다.


이 구절을 되새기며 나의 회사생활 중 어쩌면 상담사? 리스너의 위치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노동자들의 고충들을 듣고 사측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그 포지션에 있을 때 어느 홍콩의 오디터가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캐리 너네 부서원들도 정기적으로 심리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노동자들의 힘든 이야기를 듣는 일이 정신적으로도 힘든 일이니 담당자들의 마음도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던 코멘트가 문득 떠오른다. '관계'에 어느 순간 번아웃이 찾아와 한동안 답답함을 호소했던 것도 그때 나도 제대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잘 몰라서였기 때문인 것 같다.


현재의 노동 시장에서 가장 몸값이 높아지고 있는 IT 개발자 영역만큼이나 앞으로의 세상에서 그 가치를 존중해 줘야 하는 영역이야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해주고 대화하고 설득하는 사람을 직접 상대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재택이 보편화되고 각종 기술의 발달로 사실 하루에 한 마디도 안 하고도 업무가 가능할 수도 있을 만큼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면서 대화가 단절된 사회의 마음의 문제들이 하나둘씩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는데 기술의 영역이 미처 미치지 못하는 People skill에도 계속 주목해야겠다.



나는 지적 자극을 주는 환경에서 번성하는 사람이다. 작은 연못의 큰 물고기인 것보다 큰 연못의 작은 물고기일 때 잘 성장한다.


지적 자극성장, 나를 가슴 뛰게 만드는 두 단어다. 나 또한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내는 성취감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안정보다는 변화를 찾아 헤매었는데 언젠가 그 '도전'이란 단어가 이제는 스스로를 지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좀 놓아주자라는 마음이 더 커진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과연 나는 현재 작은 연못의 큰 물고기인가 큰 연못의 작은 물고기인가 아니면 작은 연못의 작은 물고기일 뿐일까. 저 문구를 보고 나서부터 나의 위치와 나는 어떤 자극을 현재 받고 있는지를 되묻고 있다.



마음 챙김은 당신이 지금 이 순간 있는 위치에 초점을 맞춰 그 위치를 어떤 비판도 없이 수용하는 것이다. 마음 챙김에 성공하는 것이 수용에 이르는 관문이다.(중략) 아직 갖지 못한 것들을 가져야 한다는 억압에 짓눌려 사는 것보다 삶이 주는 대로 수용하는 편이 더 낫다. 그렇다고 만사에 수동적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놓으라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수용이다.




DBT 기술의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마음 챙김이라는 용어를 사실 10여 년 전 처음 접했다. 그것도 틱낫한 스님의 Mindfulness 관련 책 홍보 담당자로, 어렸던 그때는 단순히 텍스트로만 접했던 그 개념을 사회생활을 하면서 또 내 마음이 더 자라면서 이제는 어렴풋이 무엇을 말하는지 조금은 느껴진다.

2013년에 틱낫한 스님이 한국 방문하셔서 잠실체육관에서 강연하는 그 자리에도 있었다. 눈을 감고 그 울리는 종소리에 홀린 듯이 잠시 명상했던 그 순간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내 나름대로 마음 챙김을 받아들여 현실에 적용하자면 현재 내가 못 가지고 못 이룬 것에 대한 억압에 짓눌리기보다는 지금 나의 있는 모습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일까.



DBT의 핵심은 서로 상반되는 치료 목표들, 즉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이 처한 삶을 수용하는 일과 더 나은 삶을 위한 변화를 포용하는 일 사이에서의 역동적 균형이다. "변증법"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그대로 상반되는 요소의 균형과 합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말하자면 수용 전략으로 균형을 잡아가며 변화 전략을 추구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 DBT만의 특별한 점이다.


책을 읽고 더 궁금해서 찾아보고 싶게 만든 개념인 DBT의 핵심에 대한 구절을 마지막으로 남겨 본다. 번역서라 읽으면서 다소 매끄럽지 않다고 느꼈던 문장들이 좀 있었는데 최대한 그 어감을 살리려고 해석해서 술술 읽히기는 했다. 다음번엔 DBT 실제 사례가 좀 더 들어 있는 마샤 리네한의 책을 원서로 시도해 봐야겠다.


씽큐베이션 13기에 처음 참여하며 첫 책인 <인생이 지옥처럼 느껴질 때> 2주 동안 읽고 내가 주목한 문구와 생각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책 읽는 습관을 다시 들이고 싶어서 참여하게 되었는데 2주 동안 책을 읽고 서평까지 남겨야 하니 나름의 압박 때문이라도 책을 끝까지 읽게 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책 읽으면서 어떤 구절에서는 나도 저랬는데 저런 마음이 들 때가 있었는데라며 과몰입해서 눈물이 났던 적도 있고 스스로에게 치유가 되었던 오래간만에 만난 좋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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