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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 Jul 13. 2023

(2) 이젠 동굴에서 빠져나올 때 - 퇴사 시그널

30대 프로퇴사러의 홀로서기

마지막 근무일까지 딱 일주일을 남겨놓은 시점에 프로퇴사러는 어떤 마음과 퇴사 준비를 하고 있을까? 직장인에게는 핫한 '퇴사' 키워드로 검색하고 이 글을 발견하신 분들이라면 자신의 스토리는 어떠한지 한번 곱씹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나 만의 동굴은 어떤 것인지,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는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1차 퇴사 시그널 - 입사 2주 차


그냥 입사 취소하지 왜 그랬을까?


각기 다른 업계와 직무 그리고 해외에서 근무하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과 조직을 경험하고 또 채용업계도 경험하면서 어지간한 상황에는 꿈쩍도 안 하는 내가 입사 2주 만에 든 생각이다. 나를 입사 취소했다면 한 달 정도는 욕하며 짜증 냈겠지만 그 여파가 길게 가진 않았으리라. 

내가 몸담고 싶은 업계에 커리어로 삼고자 하는 포지션에 으쌰으쌰 능력치 만렙인 팀원들로 세팅된 팀에 조인하게 되었는데 입사 2주 만에 팀이 해체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총괄 임원의 결정으로 팀이 폭파되었다고는 하는데 쿵짝이 맞았으니 그리 되었겠지.  돌이켜보면 분명 나의 입사 결정 시점(그것도 대표님 최종 면접까지 봤음)에 이미 사전에 논의되던 결정이었다면 나에게 다른 포지션이라고 언질을 주거나 혹은 입사 취소를 할 수도 있었겠다. 이 무슨 타이밍 장난이란 말인가.


으쌰으쌰 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다 쪼개지고 나 또한 의지와는 상관없이 새로 조직된 팀으로 합류하며 업무를 맡게 되었지만 주목하지 않는, 없어도 뭐 티 나지 않는 그런 투명인간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기나긴 '무력감'이라는 동굴 속에 내가 갇히게 된 게.



제대로 슬퍼하지도 못한 상태로 카오스의 한 해를 보내다


개인적인 슬픔과 직장 생활은 별개이긴 하지만, 입사 시점이 절묘했다.

첫 출근 한 주를 앞두고 기나긴 해외생활을 접은 후에 오랜만의 서울 근무라 미리 예약해 둔 집을 보러 올라오기 전날, 서로의 커리어를 응원하며 나의 서울컴백을 가장 반겼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마음이 무너져 내린 상황이었다. 지금까지도 사진첩과 그 친구와의 카톡을 못 들여다보고 있을 정도로 충격이 컸던 그 마음을 다잡고 힘을 냈었던 지난해 1월. 


1월 중순 통보 후 3월 초 정식 발령까지 당연히 회사 분위기도 뒤숭숭하고,

그때가 한국 코로나의 최고 절정 피크를 찍었던 하루에 40만 명 이상 확진자가 나왔던 시즌에

마침 나도 코로나에 확진되고 

이리저리 정돈되지 않은 채 1분기를 보냈다.

나의 입사 전에 조인한 팀원들은 하나둘씩 회사를 떠나고 

나의 멘털은 물음표가 둥둥 떠다니면서 낯빛이 점점 어두워져 가게 된다.

존버의 시작이다.



나의 캐파 향상만 생각하자

얼른 학원부터 등록해. 할 수 있어!


만나는 지인들에게 내가 좀 더 하고 싶은 공부와 이를 커리어에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 계획을 항상 말하고 다녔는데 정작 마음먹었던 미국 석사과정 시도를 위한 가장 첫 관문인 토플시험 응시조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상태였다. 입사 무렵에 6개월 토플 온라인 강의를 끊어 놨지만 카오스의 상반기를 보내며 단 한 번도 강의를 들여다보지 않고 만료되었고, 투덜거림이 여름까지 계속된 시점에 오래간만에 만났던 오랜 친구들의 조언이다. 빨리 학원부터 끊으라고.


칼퇴하고 강남 토플학원에서 한 달 동안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3시간씩 수업을 듣고 집에 돌아와서 씻으면 거의 자정. 몸은 참 피곤했는데 오히려 이때 활력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도 나의 능력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기업 고객들을 커버해야 하는 포지션이니 최대한 내가 인사이트를 많이 공유할 수 있도록 일에도 더 집중하면서 내가 맡은 서비스를 스스로 좀 더 탐구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조직에 대한 기대보다는 외부고객의 긍정적인 피드백이 나를 더 움직이게 만들었고 올해 3월 원서 접수 마감까지 토플점수 / 추천서 / SOP / 선수과목 MOOC 강의 수강의 빠듯한 입시 준비로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없었다. 기업별 커스터마이징 인사이트를 짧은 시간 뽑아내는 그 과정에서 여러 자료들을 참고하며 공부했던 게 미래를 그려 나가며 또 SOP를 준비할 때도 도움 되기도 했으니 일에서 스스로 재미를 찾으면서 점들을 이어나갔다. (only 자기만족임)



퇴사 워밍업 한 달


할 만큼 후회 없이 다 해봤습니다.


퇴사 설문지에 내가 남겼던 코멘트다. 회사에서의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내가 생각하는 장기적인 커리어의 방향과 현재 조직에서의 움직임이 다르고 퇴사버튼을 누르게 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졌기에 미련 없이 사직서를 던졌다. 여태 진행했던 행사 중에 가장 많은 호응을 받은 그날.


20대엔 무작정 날렸던 퇴사 통보라면 30대 후반이 된 지금은 진지하다. 덜컥 결정했지만 축적된 시그널이 버튼을 누르게 만들었다.


목표지향적이고 액티브한 내가 한없이 움츠려 들었던 그 장소와 공간에서 탈피하고자, 퇴사 워밍업을 나름 알차게 하고 있는 중이다. 소속이 없는 첫날부터 방황하지 않기 위해.


- 헬스장 회원권을 등록하고 현재 2주째 매일 운동하며 식단 관리 중. 연중 최고치 대비 -6kg 기록 중.

- 플래너를 매일 기록하며 시간 관리 연습을 계속하고 있다

- 영어 감을 되살리기 위해 매일 영어 노출 시간을 조금씩 늘리고 있다

- 긍정적인 마음을 계속 가지려고 의식적으로 노력 중이다.

-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매일 지르고 또 정리하고 버리고 있다.


운동으로 몸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게 모든 것과 연결되는 것 같다. 

내 캐파를 키워 내공을 키워 내는 게 3분기 목표이며,

서두르지 않으려고 한다.


홀로서기가 아닌 또 이직 스토리가 될 수도 있고

N잡러 스토리,

공부스토리나 여행 스토리가 될 수도 있는

퇴사 이후의 나날들을 찬찬히 담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만의 동굴에서 벗어나자 (사진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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