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프로퇴사러의 홀로서기
다음 주 새로운 회사로 출근을 앞두고 글로벌 팀원들의 다국적 웰컴 이메일을 받으니 드디어 실감 나기 시작했다. 근무일 기준으로는 7월 중순쯤 퇴사했으니 거의 4개월을 소속 없이 지내다가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 게 오퍼레터와 계약서 싸인까지만 해도 어벙벙했는데 함께 일하게 될 팀원들로부터 영어로 이메일을 계속 받으니 정신이 번쩍 든다.
안락했던 집 안에서 한 발짝 나올 때가 되었구나 실감하는 마지막 주말을 맞이하며 끄적여 본다. 업무 방향성은 전 직장과 비슷하게 유지될 터이나 조직 사이즈와 방향성 그리고 업무 방식까지 완전하게 달라질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드는 생각들을 정리해 봅니다. 이직과 스테이의 갈림길에 있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길 바라며.
나는 직장인 분들 중에 한 곳에서 우직하게 자기 영역 개척하는 분들 정말 존경한다. 별칭으로 프로퇴사러를 붙이긴 했지만 떠나는 것보다 스테이 하는 것이 더더더더 대단하다는 것을 알기에. 최근에 한 직장에서 스테이를 오래 하면서도 이직 고민을 하고 계신 분이 나에게 물은 질문 중 "이직에 대한 공포는 전혀 없겠어요?"
사실 처음이 어렵지 뭐든 하다 보면 탄력 붙는다. 나의 아주 가까운 지인만 알던 나의 흑역사인 첫 회사 퇴사 기는 지금 생각해도 참 어렸다. 퇴사 굿바이 회식까지 했다가 일주일 만에 다시 복귀했었으니ㅋㅋㅋ어리고 어렸던 20대 중후반을 거쳐 난 해외에서 승부를 보겠다며 그 준비로 신사역 부근에서 회사를 다니면서 6시 칼퇴 후 광화문에 있던 월스트리트 영어학원을 1년 내내 거의 매일 가서 밤 10시 문 닫을 때까지 프리토킹 세션에 참여했던 그 열정이 스멀스멀 기억이 났다.
그러다가 해외 포지션으로 면접본 당일(수요일) 그 주 토요일에 출국할지 여부를 결정하래서ㅋㅋ진짜 나의 동남아로의 이직은 그렇게 한 2시간 만에 결정 나고 가방 싸고 바로 그 주에 출국해 버린 게 스물아홉. 언젠가는 나의 이러한 무모한 결정들의 스토리를 꼭 책으로 써 내려가 보고 싶다. 이래도 잘 살아왔다고 말이다. 20대 때는 당연히!! 새로운 시작이 참 두렵고 어렵고 뭔가 끝난 거 같았지만 40대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는 좀 더 긴 호흡으로 어떻게 나답게 살아갈 것인가가 더 중요해져서 남들 시선에서 좀 더 자유로워진 것 같다:)
일할 때 영어 마지막으로 쓴 게 코로나로 갑작스럽게 한국 복귀하기 직전인 2020년 4월이니 3년이 넘도록 한국에서는 일할 때 영어를 진짜 거의 한마디도 쓸 일이 없었다. 한국에 돌아온 직후 한 1년은 그 현장감이 남아 있었는지 한 10년 만에 시험본 토익은 거의 만점이 나왔으나 입으로 내뱉을 일이 없었으니 영어 근육이 거의 사라져 가는 게 너무나 아쉬웠다. 한국이든 어디에서든 길게 남은 인생을 좀 더 풍요롭게 살려면 바운더리를 확장하는 데는 영어가 정말 큰 무기니 잡오퍼가 오는 곳들 중 영어를 쓸 수 있는 곳들만 연락을 유지했다. 영어회화 온라인 강의도 수험 영어 외에는 거의 처음으로 결제해서 감을 살리려고 노력 중.
하지만... 떨리는 건 사실. 챗GPT와 요새 거의 매일 대화하는 듯? 영어로 상황을 설명해 주고 예시 템플릿을 만들어봐라. 딱 보고 좀 더 첨가하거나 부족한 내용들 설명해 주면 찰떡같이 또 만들어 내고 내가 만든 예시문에 대한 error check과 톤 조절도 부탁하면서 비서로 잘 활용 중이다.
예전에는 꼭 외국을 나가야만 글로벌 환경이라고 생각했지만 APAC에서의 한국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다양한 기회들이 창출되고 있는 만큼 한국에 있으면서도 내 바운더리를 넓혀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스텝을 아주 소중히 여겨보기로 했다.
쉬면서 가장 시간을 집중했던 게 온라인 대학원 첫 학기 적응하기! 다행히 학기가 끝날 즈음 출근하게 되었으니 새 학기 시작하는 1월 중순까지는 그래도 시간이 좀 있어서 다행. 내가 공부하는 영역이 업무에 연결되다 보니 회사에서도 공부하는 것을 좋게 봐주고 응원해 주고 있으니 나만 잘하면 된다..... 내돈내산 공부에 태클만 걸지 않으면 다행인데 응원받으니 시간 확보가 가장 관건이다. 나는 나를 못 믿기에 퇴근 후 공부공간을 파이브스팟과 같은 스터디카페의 공유오피스 버전인 곳들을 결제하고 다닐 예정.
뭐 이리 인생이 빡셀까라는 생각도 들다가도 인생은 40부터라는 모토로 투자를 하기로 했다.
애덤 그랜트의 신작 <Hidden Potential> 아직 번역판은 나오지 않아서 원서로 읽고 있는데 제목만 보고 혹해서 읽기 시작했지만 새로운 시작을 앞둔 사람들에게 뭔가 위안이 되기도 하면서도 나의 히든 포텐셜을 잘 찾아봐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뿜뿜 되는 책이라 살짝 소개. 2장 Human Sponge라는 개념이 특히 콕 박혔다. Proactive & Growth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주도적으로 흡수하고 적용해 나간다를 스펀지에 비유하다니!! 각 장마다 써먹고 싶은 키워드로 성향들을 설명하고 있으니 나는 어디에 속할까 한번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사색하며 운동하고 공부했던 짧디 짧았던 쉼표는 잠시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