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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숲 Dec 18. 2020

[넷플릭스 영화]클라우스(2019)

행동이 사람을 만든다

※이 글은 영화 클라우스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꼭 보는 영화가 있다. 「나 홀로 집에」다. 1991년에 개봉되어 이제는 나온 지 30년이 되어가는 작품. 그럼에도 매년 케빈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는 즐겁다. 이브에 맛있는 야식과 함께 「나 홀로 집에」를 보고 훈훈한 마음과 함께 잠든 다음, 「나 홀로 집에2」로 크리스마스 아침을 시작한다. 매년 반복되는 나만의 크리스마스 일과이다.


영원히 자라지 않는 영화 속의 케빈과 함께 시작한 휴일의 나머지는 보고 싶었지만 짬이 나지 않아 미루고 있던 영상 시청이다. 휴일이라 하면 역시 집에 콕 박혀서 먹을거리를 껴안고 빈둥빈둥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게 최고 아니겠는가. 때문에 여기저기서 캐럴이 흘러나오면서 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할 무렵이면 나 역시 이 날 몰아볼 영상 리스트 작성을 시작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일찌감치 준비를 시작해야 크리스마스를 충실하게 보낼 수 있는 법이다.


먼저 신작 영화를 체크하던 중 가장 눈에 띈 것이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클라우스」였다. 산타를 연상시키는 흰 수염 수북한 할아버지가 있는 섬네일과 제목에서부터 크리스마스를 노리고 제작한 냄새가 풀풀 났다. 역시 이런 영화는 크리스마스에 맞춰 봐야 제맛인 법이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리스트에 넣었다.


크리스마스 당일, 늘 하던 대로 「나 홀로 집에2」로 워밍업을 끝낸 후 「파티셰를 잡아라」크리스마스 특별편을 시작으로 미리 작성해 두었던 리스트와 주전부리를 함께 해치운 나는 마지막으로 「클라우스」를 재생했다.


벽난로처럼 따뜻한 색감의 2D 애니메이션이고, 내용도 얼추 크리스마스의 훈훈함을 전하는 스토리일 테니 하루 종일 영상을 본 피로감을 자극하지 않고 마무리하기 딱 적당할 거라는 예상에서였다. 그러나 내 기대는 빗나갔다. 그러니까, 아주 좋은 의미로.


줄거리 자체는 평탄했다. 산타클로스의 기원이라고 알려진 성 니콜라우스의 전설을 모티브로 삼으면서 현대 크리스마스 전설의 오마주를 더해 이야기의 뼈대를 새롭게 구성했다. 하지만 예고편만 봐도 대략적인 전개와 결말이 예측 가능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모든 전개와 결말을 알면서도 매년 크리스마스만 되면 챙겨 보는 나 홀로 집에 시리즈처럼.


이야기의 발단은 우정총국 총재인 아버지의 후광에 의존해 맡은 일은 내팽개친 채 빈둥거리며 지내는 우체부 제스퍼가 믿고 있던 아버지의 손에 의해 외딴 섬마을로 쫓겨나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아들의 성품을 고치기 위한 조치였다.


출처: 넷플릭스 클라우스 예고편 2
출처:넷플릭스 클라우스 예고편 2


당연히 놀고먹는 데에 온 마음을 쏟아붓는 제스퍼는 거부하려고 했으나, 1년 안에 6천 통의 편지를 배달하지 못하면 유산은 없다는 엄포에 울며 겨자 먹기로 섬마을로 떠나는 배에 오른다. 어떻게든 편지만 처리하면 다시 돌아갈 수 있으니까. 여느 이야기가 그렇듯 제스퍼는 전혀 마음을 고쳐 먹을 생각이 없고, 어떻게든 다시 돌아가 방탕한 생활을 이어나갈 마음만 그득하다. 하지만 아버지 또한 그런 아들의 속셈을 모를 리 없다. 아들을 위한 시련을 마련해 두었으니, 바로 제스퍼가 발령받은 섬마을은 앙숙인 두 가문이 오랫동안 편을 갈라 싸우느라 한 통의 편지도 오가지 않는 곳이었던 것이다.


섬을 탈출하려면 편지를 배달해야 하는데, 아무도 편지를 보내지 않는 마을이라니. 아무리 봐도 1년 안에 빠져나오긴커녕 유산은 한 푼도 못 받고 이 마을에서 평생을 보내야 할 상황이다. 아버지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다행히 게으르긴 하나 머리는 나쁘지 않았던 제스퍼는 아이들을 이용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산속에 사는 노인 클라우스에게 편지를 보내면 장난감을 배달해준다는 이야기를 퍼뜨린 것이다. 사실 클라우스 씨와는 미리 협상을 끝내 놓았다.


출처: 넷플릭스 클라우스 예고편 3


그는 제스퍼가 썩 미더워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아이들이 자신의 장난감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은 매력적이었던 모양인지, 자신과 함께 밤에 몰래 장난감 배달을 한다는 조건으로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다분히 이기적인 이유로 시작한 이 행동이 마을을 바꾸게 된다. 아이들 편지를 쓰기 위해 글자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학생들이 오지 않아 생선을 팔며 마을을 떠날 돈을 모으고 있던 선생님은 다시 교실 문을 열었다. 마을을 휘저으며 심술궂은 행동만 하던 아이들은 편지를 보내도 말썽쟁이 리스트에 실리면 선물을 받지 못한다고 하자 장난감을 받고 싶어 나쁜 태도를 고치기 시작했다.


출처: 넷플릭스 클라우스 보너스 영상 1
출처: 넷플릭스 클라우스 보너스 영상 1


'나쁜 행동을 하면 선물을 안 준대.'


어른들을 따라 편을 가르던 아이들은 싸우는 것을 그만두었다. 앙숙이었던 두 가문의 아이들이 사이좋게 지내기 시작했다. 따스한 햇볕이 마을에 스며들었다. 한평생 그늘진 마음으로 싸우던 어른들 또한 아이들이 전해준 온기에 천천히 물들었다. 그들은 서로의 집 사이에 쳐놓았던 철조망을 치우고, 드높은 담을 조금씩 허물기 시작했다. 일 년 내내 눈으로 뒤덮인 마을에 온기가 감돈다.


마을은 평화로워지고, 당초 목표였던 편지 6000통은 일찌감치 달성했다. 그러나 제스퍼는 아버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이유야 수많은 콘텐츠에서 수도 없이 클리셰로 이용한 그것이리라. 그럼에도 제스퍼의 변화가 반갑다.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싶다. 클리셰가 클리셰로 살아남아 두고두고 쓰이는 이유일 터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갈등 또한 클리셰에 충실하다.


출처: 넷플릭스 클라우스 예고편
출처: 넷플릭스 클라우스 예고편


마을의 변화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나타나 주인공의 행보를 방해하고, 숨겨 놨던 진실은 폭로된다. 하지만 그 전개가 식상하다기보다는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난다는 느낌이다. 충분한 개연성을 확보한 클리셰는 맛깔스럽게 이야기를 움직인다. 이미 아는 맛이기에 더 맛있는 맛이다.


엔딩 스크롤이 올라올 때에는 결말의 여운에 젖어 줄줄이 올라오는 이름들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이 영화에는 세상을 위협하는 거대한 악도 없고, 특별한 능력을 지닌 주인공도 없으며, 깜짝 놀라 뒤로 나동그라질 만한 반전도 없다. 아니다, 우체부 제스퍼와 함께 또 다른 주인공인 클라우스는 많은 장난감을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장인이니 특별한 능력을 지니긴 했다. 하지만 제스퍼가 그를 이용하기 위해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영영 발휘되지 않았을 능력이었다. 그리고 그가 시작한 행동이 한 사람, 또 한 사람, 그리고 또 한 사람····불씨가 옮겨 붙듯 번지면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거대한 들불이 되었다.


그러나 가장 처음 그 불씨를 밝힌 재료는 한 사람의 속물적인 욕망이었다. 애당초 제스퍼는 마을 사람들의 사이를 화목하게 바꾸어 놓는다든가,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게 한다든가, 장난감을 받고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 행동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어떻게든 6000통의 편지를 처리해서 부유한 생활로 돌아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목적이야 어찌 됐든 결과는 선한 행동으로 이어졌고, 이는 오랫동안 미움과 다툼으로만 이루어졌던 마을을 변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리고 제스퍼의 마음까지도.


흔히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들 한다. 아무리 애써봤자 사람은 결국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맞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처음과 변하지 않았다. 클라우스가 만든 수많은 장난감은 처음부터 아이를 생각하며 만든 것들이었고, 생선을 팔던 선생님은 원래 학생들을 가르치는 미래를 그리며 부푼 마음을 안고 마을에 온 사람이었다. 세대를 거듭하며 반목을 거듭한 어른들은 갑자기 마음이 착해져서 이웃의 손을 잡은 것이 아니다. 그저 관성적으로 학습된 미움과 다툼을 잠시 멈추었을 뿐이다.


그들의 마음은 제스퍼가 마을에 오기 전과 똑같다. 자신의 아이들을 아끼고, 가족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행동을 바꾸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몸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마음도 함께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저 '척'이었던 행동에 마음이 깃들기 시작한다.


출처: 넷플릭스 클라우스 예고편 2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다. 변화는 일조일석에 찾아오지 않는다. 오랜 시간을 들여 꾸준하게 노력을 거듭해야만 비로소 한 발짝, 한 발짝 더디게 찾아온다. 당장 한 걸음을 뗄 때는 얼마나 바뀌었는지 알아채기 어렵고, 백여 걸음을 걸은 후에야 조금 바뀌었나 싶어 고개가 갸웃거려지고, 천 걸음은 걸어야 조금은 바뀌었구나 싶고, 이젠 뒤를 돌아보는 것도 잊을 만큼 멀리 걸은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족적을 확인하며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이야기는 사람이 긴 시간에 걸쳐 얻을 경험과 지혜를 함축적으로 알려준다. 농축된 시간 안에 급격하게 과장된 감정과 갈등이 흐른다. 클라우스는 그 이야기의 본질을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따뜻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였다. 덕분에 마지막 영화를 감상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자려던 나는 예정에 없던 따끈한 코코아 한 잔을 더 추가해야 했다. 소화시키고 자야 하니 취침 시간이 조금 늦어진 셈이지만 후회는 없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시간을 보냈으니까.


앞으로 일주일이면 또 크리스마스가 찾아온다. 올해의 리스트 역시 이미 정해놓았으며, 처음과 마지막에 볼 영화는 작년에 정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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